부처님의 가르침

아미타불 염불과 길이 단위 미터(meter)

우암(雨庵) 2015. 10. 20. 08:34

불교의 정토신앙에서는

서방 극락세계에 계시는 아미타불에 의존해서

아미타불을 염송함으로써 서방정토 세상에 태어나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염불한다.

나무란 귀의하다란 뜻이다.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에 귀의하겠다는 뜻이다.

 

namo : [ind.] be my adoration to, 南無, 禮拜, 頂禮

nama :, namo n. [Sk. namas] 南無, 礼拝, 頂礼

amitābha : [adj.] of boundless luster, boundless or immeasurable splendour

amita : [adj.] boundless; immeasurable, 無量的, 無限的

mita : [pp. of miāti] measured; weighed; balanced, れる, 節量

Bhā , 【阴】 光,光彩壮丽

 

그런데 아미타불의 미타(mita)는 위에서 보듯이 측정한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아미타(amita)란 미타에 부정 접두어 아(a)가 붙은 것으로

그 의미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많이'란 뜻이다.

그리고 우리가 불이라고 번역한 bha는 빛(光)을 뜻한다.

그래서 아미타불(amitābha)이란 무량한 빛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어원을 분석하다보니 우리가 현대에 길이의 측정단위로 사용하는 미터(meter, metre)가

아미타불의 미타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발음이 너무 비슷하고 측정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meter의 기원이 이 '미타'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중국영화를 보면 아미타불을 '오미터훠'처럼 발음을 하던데

그런 측면에서는 meter와 미터로 두 발음이 동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영어 meter가 어디에서 나왔나 찾아보았다.

영어의 meter는 그리스어의 μετρέω (metreo; to measure, count or compare) 또는 명사인 μέτρον (metron; a measure)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이런 추적을 해 보니 고대에 인도와 그리스에서 측정하다란 단어의 발음이 거의 같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제 추론이 정말이라면 참으로 놀라운 연관성이 아닐 수 없다!!!

 

아미타불의 미타가 미터라니...!!!^^
 

 

 

아미타불이란 무량광이다.

그런데 사실 아미타불이란 존재는 초기경전인 니까야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짚고 넘어가야 할 의문점은

왜 동아시아에서는 amitābha를 아미타불(佛)이라 했는가 하는 점이다.

즉 동아시아 지방에서는 amitābha를 서방정토를 관장하시는 부처님(buddha)이라 칭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아마도 아미타불에 대한 철저한 믿음에 기반해서 염불을 한다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광을 불(佛)이라 붙였다???

 

아미타불 염불신앙은 얼핏 보면 타력신앙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수행방법의 개요는 초기 불교에서 나타나는 자등명 법등명이 사라진

후기에 변형된 타력신앙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염불을 꼭 타력신앙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아미타불 염불, 혹은 주력 수행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왜 원효스님은 대중들에게 염불을 가르쳐 주셨을까요?

 

저는 그 이유가
식이 오온에서 풀려나게 하는데 있다고 이해합니다. (마음이 나라는 잘못된 관념에서 풀려남.)
염불에 마음이 집중되니 탐욕이 일어나지 않고(제거되고)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게 되는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식이 오온에서 풀려나는 수행으로 선정을 통한 사마타 수행을 할 수도 있지만
그 요체는 심일경성(ekaggatā)이 아닐까 합니다.


심일경성의 해석은 두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과정에 의미를 두는 '집중'이란 의미와
결과에 의미를 두는 '하나됨(둘 아님)' 이라고 저는 이해 합니다.

 

그리고 원효스님께서 대중들에게 염불을 권하는 이유는
저희처럼 정보가 많지 않고 책도 흔치 않았던 그 시대에
대중들이 경전 공부를 통해서 그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보시고
스님께서 이해하신 부처님 말씀의 요체를 구현하는 방법으로
(마음이 탐욕에서 풀려나 의식이 확립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쉽게 대중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 방법이 염불 수행이 아닐까요?
즉 염불 수행이란 염불에 몰두해서 나에게서 풀려나는 심일경성(삼매)을 닦아나가는 수행이 아닐까요?

 

보살님들이 남편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우리 편'의 감각적인 만족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염불을 하는 것은
(오온이 내가 아니라는) 정견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수행자라도 처음은 이 '나의 이익'에 기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내가 괴롭지 않다면' 과연 누가 종교를 가질려 하겠습니까?
내가 괴롭지 않은데 누가 부처님 법을 배우려하겠습니까?

 

그런데 그 감각적인 만족을 얻는 방법이
살도음등의 악업을 일으키는 것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선정이면 최상이겠으나 염불이면 어떻고 주력이면 어떻겠습니까?
그 결과물이 삼매이고 심일경성이라면 결국 나에게서 풀려나게 하는 방법이 아닐까요?
(원각경의 두 나무를 비벼서 불이 나면 결국 둘 다 없어진다는 것이 이것을 비유한 것 아닐까요?)

 

누군가 염불을 통해서 식이 오온에서 풀려나는 것을 경험하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닐까요?


물론 경전 공부를 통해서 그 경지를 부처님 말씀으로 다시 이해하고해서
완벽해지면 좋겠지만
그렇게 하기 어려웠던 당시 대중들에게 염불을 가르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또 현대에도 배움이 깊지 못해 그저 부처님 말씀이 좋아서 수행하려 해도
염불 밖에 마땅한 것이 없는 분들이 있으시다면
염불을 하면 될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게 빛에 대한 경전으로 기억에 남는 것이 M80. 베카낫싸의 경이라서 첨부해 봅니다.

 

M80. 베카낫싸의 경 (Vekhanass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싸밧티 시의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그 때 유행자 베카낫싸 깟짜나는 세존께서 계신 곳을 찾아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한 쪽으로 물러섰다. 한 쪽으로 물러선 유행자 베카낫싸 깟짜나는 세존의 앞에서 시를 읊었다.
“이것이 최상의 빛입니다. 이것이 최상의 빛(vaṇṇo)입니다.”

 

vaṇṇa : [m.] colour; appearance; colour of the skin; sort; caste; a letter; quality, 色, 色沢, 顕色, 容色, 美貌, 称讃; 種類; 階級, 姓; 音節, 字 ; aṇṇa가 붙어서 마치 지혜를 뜻하는 듯 하다.

 

3. “깟짜나여, 그대는 ‘이것이 최상의 빛이다. 이것이 최상의 빛이다.’라고 하는데, 그 최상의 빛이란 무엇입니까?”
“존자여, 그 빛보다도 더욱 탁월한 빛, 또는 더욱 우월한 빛이 달리 없는 그것이 바로 최상의 빛입니다.”
“깟짜나여, 그 빛보다도 더욱 탁월한 빛, 또는 더욱 우월한 빛이 달리 없는 그 빛은 어떠한 것입니까?”
“존자여, 그 빛보다도 더욱 탁월한 빛, 또는 더욱 우월한 빛이 달리 없는 그것이 바로 최상의 빛입니다.”

 

4. “깟짜나여, 그대가 이런 식으로 한다면 오래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그대는 ‘세존이시여, 그 빛보다도 더욱 탁월한 빛, 또는 더욱 우월한 빛이 달리 없는 그것이 바로 최상의 빛이다.’라고 말했지만, 그 빛이 어떠한 것인지 설하지 않았습니다.

깟짜나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나는 이 나라에서 제일의 미녀를 원하고 사랑한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사람들이 그에게 와서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사랑하는 제일의 미녀가 왕족계급의 여인인지 바라문 계급의 여인인지 평민 계급의 여인인지 노예 계급의 여인인지를 그대는 아는가?’라고 묻는데, 이와 같이 질문을 받고 그가 ‘아니오.’라고 답변한다고 합시다.

사람들이 또한 이와 같이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사랑하는 제일의 미녀가 이와 같은 이름, 이와 같은 성을 지고 있는 것을 아는가?’라고 묻는데, 이와 같이 질문을 받고 그가 ‘아니오.’라고 답변했다고 합시다.

사람들이 또한 이와 같이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사랑하는 제일의  미녀가 키가 큰지 작은지 또는 중간인지를 그대는 아는가?’라고 묻는데, 이와 같이 질문을 받고 그가 ‘아니오.’라고 답변했다고 합시다.

사람들이 또한 이와 같이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사랑하는 제일의 미녀가 그 피부가 검은 색인지 갈색인지 황색인지를 그대는 아는가?’라고 묻는데, 이와 같이 질문을 받고 그가 ‘아니오.’라고 답변했다고 합시다.

사람들이 또한 이와 같이 ‘이 사람아, 그대가 원하고 사랑하는 제일의 미녀가 어떠한 마을, 어떠한 부락, 어떠한 도시에 살고 있는지 그대는 아는가?’라고 묻는데, 이와 같이 질문을 받고 그가 ‘아니오.’라고 답변했다고 합시다.

사람들이 또한 그에게 이와 같이 ‘이 사람아, 자네는 알지 못하고 또한 보지 못하는 자를 원하고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묻는데, 이와 같이 질문을 받고 그가 ‘그렇소.’라고 답변한다고 합시다.

 

5. 깟짜나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이 말한 것은 무의미한 것이 아닙니까?”
“세존이시여, 그렇다면, 참으로 그 사람이 말한 것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깟짜나여, 그대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 빛보다도 더욱 탁월한 빛, 또는 더욱 우월한 빛이 달리 없는 그것이 바로 최상의 빛이다.’라고 말했으나 그 빛에 대하여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6. “세존이시여, 예를 들어 에메랄드가 아름답고 품질이 좋고 팔면으로 잘 깎여 있는데, 그것을 갈색의 모포 위에 두면 광채를 띠고 빛을 내고 비추듯, 자아는 죽은 후에 영원히 이와 같이 빛날 것입니다.”
“깟짜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에메랄드가 아름답고 품질이 좋고 팔면으로 잘 깎여 있는데, 그것을 붉은 색의 모포 위에 두면 광채를 내고 빛을 내고 비추고, 어두운 밤의 암흑 가운데 반딧불도 광채를 내고 빛을 내고 비추는데, 이러한 두 가지 빛 가운데 어느 빛이 더욱 탁월하고 더욱 우월합니까?”
“세존이시여, 어두운 밤의 암흑에 있는 반딧불이 두 가지 빛 가운데 더욱 탁월하고 더욱 우월합니다.”

 

7. “깟짜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두운 밤의 암흑 가운데 반딧불이 있고, 어두운 밤의 암흑 가운데 등잔불이 있는데, 이러한 두 가지 빛 가운데 어느 빛이 더욱 탁월하고 더욱 우월합니까?”
“세존이시여, 어두운 밤의 암흑 가운데 있는 등잔불이 두 가지 빛 가운데 더욱 탁월하고 더욱 우월합니다.”

 

8. “깟짜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두운 밤의 암흑 가운데 등잔불이 있고, 어두운 밤의 암흑 가운데 큰 모닥불이 있는데, 이러한 두 가지 빛 가운데 어느 빛이 더욱 탁월하고 더욱 우월합니까?”
“세존이시여, 어두운 밤의 암흑 가운데 있는 큰 모닥불이 두 가지 빛 가운데 더욱 탁월하고 더욱 우월합니다.”

 

9. “깟짜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두운 밤의 암흑 가운데 큰 모닥불이 있고, 밤의 새벽에 청명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새벽 별이 있는데, 이러한 두 가지 빛 가운데 어느 빛이 더욱 탁월하고 더욱 우월합니까?”
“세존이시여, 어두운 밤의 암흑 가운데 밤의 새벽에 청명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있는 새벽 별이 두 가지 빛 가운데 더욱 탁월하고 더욱 우월합니다.”

 

10. “깟짜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밤의 새벽에 청명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새벽 별이 있고, 보름날 포살일 한밤중에 청명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둥근 달이 있는데, 이러한 두 가지 빛 가운데 어느 빛이 더욱 탁월하고 더욱 우월합니까?
“세존이시여, 보름날 포살일 한 밤중에 청명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있는 둥근 달이 두 가지 빛 가운데 더욱 탁월하고 더욱 우월합니다.”

 

11. “깟짜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 보름날 포살일 한밤중에 청명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보름달이 있고, 우기의 마지막 달 가을에 청명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정오의 둥근 태양이 있는데, 이러한 두 가지 빛 가운데 어느 빛이 더욱 탁월하고 더욱 우월합니까?”
“세존이시여, 우기의 마지막 달 가을에 청명하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있는 정오의 둥근 태양이 두 가지 빛 가운데 더욱 탁월하고 더욱 우월합니다.”

 

12. “깟짜나여, 또한 이러한 달이나 태양의 빛이 미치지 못하는 많고 많은 신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에 관하여 분명히 압니다.

Ato kho te, kaccāna, bahū hi bahutarā devā ye imesaṃ can­dima­sūriyā­naṃ ābhā nānubhonti, tyāhaṃ pajānāmi.

 

anubhonta : [pr.p. of anubhoti] experiencing of; undergoing; eating

anubhoti :To feel, to enjoy; to partake of; to obtain, receive

can­dima­sūriyā­naṃ ābhā nānubhonti 달과 태양의 빛이 없어 경험하지 못하는데

 

그러나 나는 ‘이것보다 탁월한 빛은 없다. 이것보다 우월한 빛은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깟짜나여, 반딧불보다 더 열악하고 반딧불보다 더 열등한 것을 두고 ‘이것이 최상의 빛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 빛에 관하여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13. 깟짜나여, 이와 같은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kāmaguṇā)이 있습니다. 다섯 가지란 어떠한 것입니까?

1) 시각에 의해서 인식되는(viññeyyā), 원하는 것이고(kanta) 사랑스럽고(manāpā)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piyarūpā)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kāmūpasaṃhitā) 탐욕을 야기하는(rajanīyā), 형상이 있습니다.

Cakkhuviññeyyā rūpā iṭṭhā kantā manāpā piyarūpā kāmūpasaṃhitā rajanīyā

눈에 의해서 판단되는 형상이 있는데 사랑할만하고, 마음를 낼만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다우며, 감각적인 욕망을 일으키고 흥분시키는 것입니다.

 

guṇa: [m.] virtue; quality; a cord or string; a bow-string, 徳, 功徳, 重, 種, 種類

guṇī : [adj.] possessed of good qualities

kanta : [adj.] pleasant; lovely; agreeable, 可愛的, 可樂的, 所愛的

manāpa : [adj.] pleasing; charming 可意の, 適意の

rajanīya : [adj.] enticing; apt to rouse excitement, 染まるべき, 貪染の, 染心をあおる

rajanī : [f.] night

raja : [m.; nt.] (mano-group), dust; dirt; pollen; defilement; impurity, 塵, 塵垢, 不浄


2) 청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원하는 것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탐욕을 야기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3) 후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원하는 것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탐욕을 야기하는, 냄새가 있습니다.
4) 미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원하는 것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탐욕을 야기하는, 맛이 있습니다.
5) 촉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원하는 것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탐욕을 야기하는, 감촉이 있습니다.

 

깟짜나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은 이와 같습니다.

 

14. 깟짜나여, 이러한 감각적 쾌락(kāmasukhaṃ)이라고 부르는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을 조건으로 즐거움(sukhaṃ)과 쾌락(somanassaṃ)이 생겨납니다.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idaṃ)에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즐거움이(kāmasukhaṃ),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즐거움에서(Iti)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뛰어넘는 최상의 즐거움(kāmaggasukhaṃ)이 생겨납니다. 이것을 그 가운데 최상이라고 합니다(aggamakkhāyatī).”

 

Yaṃ kho, kaccāna, ime pañca kāmaguṇe paṭicca uppajjati sukhaṃ somanassaṃ idaṃ vuccati kāmasukhaṃ. Iti kāmehi kāmasukhaṃ, kāmasukhā kāmaggasukhaṃ tattha aggamakkhāyatī

깟짜나여, 다섯 가지 감각적인 욕망의 종류는(guṇe) 행복감과 정신적인 안락감에서 일어나며 이것을 일러 감각적인 욕망의 행복이라 한다. 몸을 이용해서 감각적인 욕망의 행복을 느끼고, 감각적인 욕망의 행복은 감각적인 욕망의 최고 행복감이 되고 그래서 그것이 최고처럼 보입니다. (마치 최고의 빛이라는 개념처럼!)

 

vuccati : [vac + ya] to be said or called

kāmehi = ( kāma + ehi ) 字尾: a<>ehi 陽性%复数%具格,離格

khāyati : [khā + ya] seems to be; appears like

 

전재성 박사님이 잘 못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kāmaggasukhaṃ을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뛰어넘는 최상의 즐거움'이라 했는데 그게 아니라 감각적인 쾌락의 정수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게 소위 말하는 최고의 빛이라는 말이 아닐까합니다.

 

15.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유행자 베카낫싸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존자 고따마여,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존자 고따마여, 예전에 없었던 일입니다. 존자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즐거움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즐거움에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뛰어넘는 최상의 즐거움이 생겨납니다. 이것을 그 가운데 최상이라고 합니다.’라고 잘 말씀하셨습니다.”

 

16. “깟짜나여, 다른 견해를 가진 자, 다른 믿음을 가진 자, 다른 경향을 가진 자, 다른 수행을 하는 자, 다른 스승을 따르는 자가 이러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즐거움이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뛰어넘는 최상의 즐거움에 관하여 알기가 어렵습니다. 깟짜나여, 수행승으로서 번뇌를 부수고 청정한 삶을 성취하고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이상을 실현하고 존재의 결박을 끊고 올바른 궁극의 앎으로 해탈한 거룩한 님이 있는데, 그는 이러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kāmā)이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즐거움(kāmasukhaṃ)이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뛰어넘는 최상의 즐거움(kāmaggasukhaṃ)에 관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17.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유행자 베카낫싸는 분노하고 불쾌해하며 그야말로 세존을 매도하고 그야말로 세존께 욕설하며 세존께 말했다.
“그렇다면 수행자 고따마는 악인일 것입니다.”
그는 이처럼 말하며, 세존께 이와 같이 덧붙여 말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보지 못하면서 ‘태어남은 부수어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의 이러한 말은 웃음거리이고, 이름뿐인 것이고, 공허한 것이고, 허망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18. “깟짜나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보지 못하면서 ‘태어남은 부수어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한 것이라면, 그것은 정당한 비난입니다.

그러나 깟짜나여, 과거도 제쳐두고 미래도 제쳐둡시다. 솔직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현명한 사람을 오게 하십시오. 가르친 대로 행하는 자가 오래지 않아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도록 나는 그를 가르치고 그에게 진리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그는 속박 즉, 무명의 속박(avijjā bandhanā)에서 바르게 해탈합니다. (sammā bandhanā vippamokkho)

깟짜나여, 예를 들어 어리고 연약하여 누워있는 어린아이가 단단한 끈으로 사지가 묶이고 다섯 번째 끈으로 목이 묶여있다고 합시다. 나중에 그 어린아이가 자라서 그의 감각 능력이 성숙함에 따라 그 묶인 것이 풀리고, ‘나는 벗어났다.’라고 알 것이고 따라서 그에게 묶인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깟짜나여, 솔직하고 성실하고 정직하고 현명한 사람을 오게 하십시오. 가르친 대로 행하는 자는 오래지 않아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도록 나는 그를 가르치고 그에게 진리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면, 그는 속박 즉, 무명의 속박에서 바르게 해탈합니다.

 

19. 이처럼 말씀하시자 유행자 베카낫싸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신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 눈 있는 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재가신자로서 저를 받아 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