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성도절; 역류문을 가르쳐 주신 부처님

우암(雨庵) 2016. 1. 16. 23:24

내일이 성도재일입니다. (음력 12월 8일)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날입니다.

인생 55년을 살아오면서 제가 마주친 존경할 만한 유일한 분이 제게는 부처님 밖에는 없습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 보아도 역사적으로 보아도 세존에 비견될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신 후에 가르침을 펼지 말지를 고민하셨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부처님의 시에서 잘 드러나 있습니다.


바로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잘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십니다.


사실 저도 부처님 가르침을 제 나름 대로 이해해서 글을 쓰고 있지만

주변 분들을 설득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제가 부족해서 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이 가르침은 흐름을 거슬러 가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逆流門 Paṭisotagāmi)


사람들은 내가 있어서 그 나를 위해서 모든 행동을 하는데

그래서 탐욕도 내고 성냄도 있는데 또 어리석은 행동도 하는데

그런 모든 마음을 내려 놓으라는 가르침이니 참으로 설득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분들도 그 연기와 윤회의 구조를 환히 보았다면 결코 탐욕과 성냄의 길을 가지 않으련만,

무명에 휩쌓여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탐내고 성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원인 없이 조건 없이 이루어 지는 것은 없는데

이 나라는 존재가 원인 없이 존재한다고 믿고

이 몸이 나라는 유신견(有身見, sakkāya-diṭṭhi)을 갖고 있는 분들을

참으로 안타깝게 바라볼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렇게 큰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조차

가르침을 펴시기를 주저할 만큼 우리들은 무명에 휩쌓여서

세상이 삼계화택인줄도 모르고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으니

이 윤회를 언제 끝낼 수 있을까요?





M85. 왕자 보디의 경 (Bodhirājakumārasutta)


54. 그런데 왕자여, 나에게 이와 같이 경탄할 만한 예전에 없었던 훌륭한 시들이 떠올랐습니다.

‘참으로 힘들게 성취한 진리를

왜 내가 지금 설해야 하나.

탐욕과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은

이 진리를 잘 이해하기 힘드네.

흐름을 거슬러가고 오묘하고

심오하고 미세한 진리는 보기 어렵네.

어둠의 덩어리에 뒤덮인

탐욕에 물든 자들은 보지 못하네.’

왕자여, 이와 같이 나는 숙고해서 주저하며 진리를 설하지 않기로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55. 왕자여, 그 때 하느님 싸함빠띠(범천의 이름 brahmuno sahampatissa)가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바를 알아차리고 이와 같이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오신 님, 고귀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서 주저하며 진리를 설하지 않기로 마음을 기울이신다면 참으로 세계는 멸망한다. 참으로 세계는 파멸한다.’

56. 왕자여, 그래서 하느님 싸함빠띠는 마치 힘센 사람이 굽혀진 팔을 펴고 펴진 팔을 굽히는 듯한 사이에, 하느님의 세계에서 모습을 감추고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57. 왕자여, 그리고 하느님 싸함빠띠는 왼쪽 어깨에 가사를 걸치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은 채 내가 있는 곳을 향해 합장하고 나에게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상에서 존경받는 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께서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태어날 때부터 거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뭇삶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못하면 쇠망합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58. 왕자여, 이와 같이 하느님 싸함빠띠는 말했다. 말하고 나서 이와 같은 시를 읊었습니다.


‘번뇌에 물든 자들이 생각해낸

오염된 가르침이 일찍이 마가다 국에 나타났으니

불사의 문을 열어주소서

청정한 분께서 깨달은 진리를 듣게 하소서.


산꼭대기의 바위 위에 서서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는 것처럼

현자여, 모든 것을 보는 눈을 지닌 이여

진리의 전당에 올라

태어남과 늙음에 정복된 슬픔에 빠진 뭇삶을

슬픔을 여읜 자께서 살피소서.


일어서소서. 영웅이여, 전쟁의 승리자여,

세상을 거니소서. 허물없는 캐러밴의 지도자여,

세존께서는 진리를 설하소서.

알아듣는 자가 있을 것입니다.’



59. 왕자여, 그러자 나는 하느님의 요청을 알고는 뭇삶(sattesu 중생)에 대한 자비심(kāruññata 연민) 때문에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Atha khvāhaṃ, rājakumāra, brahmuno ca ajjhesanaṃ viditvā sattesu ca kāruññataṃ paṭicca buddhacakkhunā lokaṃ volokesiṃ.


voloketi : [vi 분리되어 + ava 아래에 놓고+ lok 세상+ e] examines; scrutinizes

oloketi: [ava + lok + e] looks at; inspects 注視, 眺望, 調查, 檢查,


60. 그 때 왕자여, 나는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조금밖에 오염되지 않은 뭇삶, 많이 오염된 뭇삶, 예리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둔한 감각능력을 지닌 뭇삶, 아름다운 모습의 뭇삶, 추한 모습의 뭇삶, 가르치기 쉬운 뭇삶, 가르치기 어려운 뭇삶, 그리고 내세와 죄악을 두려워하는 무리의 뭇삶들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