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S1:38 돌조각 경 - 동물 이름의 중의적 표현

우암(雨庵) 2016. 2. 23. 16:40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돌조각 경을 이 글을 쓰며 본격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저는 이 경이 이리도 심오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이 문단은 경의 분석이 다 끝난 후에 쓰는 분석 후기 같은 것입니다.) 

저는 부처님의 치밀하시고 철저하신 논리와 언어의 구사에 말그대로 놀라 자빠져 버렸습니다.

단어 하나하나씩이 다 의미를 갖고 있고 비유와 일치한다는 점

어떻게 이렇게 짧은 하나의 경에 몇개의 비유로 가르침을 모두 담으실 수 있으셨는지

부처님의 지혜에는 정말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부처님께 최상의 존경을 드릴 수 밖에는 없더군요.


나모 따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부따사 _()_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시며 아라한이시며 완전한 깨달음을 얻으신 분께 귀의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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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니까야를 빨리어로 공부하면서

부처님께서 비유에 나타내시는 다양한 동물의 비유에서

동물의 이름이 깨우친 자의 특징을 중의적으로 담고있다는 것이 제게 보이더군요

앞서 보여드린 사자(siha), 거북이 (kachapo), 말 (hatthi)등이 그랬고

그 외에도 다양한 예가 있습니다.


S1:38돌조각 경(Sakalika-sutta)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 경에서는 세존께서 데바닷다가 일부러 굴린 돌에 발을 다쳐서 상처를 입으시는데

그 느낌이 고통스러우셨지만 세존께서는 정념정지로 그것을 인내하십니다.


이 모습을 본 천신들이 세존을 칭송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암의 생각으로는 각 동물은 각 괴로움의 종류에 대해서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Naga (용, 큰 뱀, 코끼리)- dukkhā (괴로움; 안 좋다는 것) - 가지 않음으로 대응함.

Siha (사자)- tibbā (찌르는 듯 함; 나쁘다는 것) - 나를 내려 놓음으로 대응함.

ājānīyo (혈통 좋은 말)- kharā (괴로움; (내게 이익이 되게)계교하는 것) - 모름으로 대응함.

nisabho (황소)- kaṭukā (고통스러움; 허무하다는 것) - 지혜로써 대응 함.

dhorayho (힘센소)- asātā (고통스러움; 동의할 수 없는) - 멍에에서 풀려남 (만족함?)으로 대응함

danto (코끼리)- amanāpā (유쾌하지 않은; 뜻한 바가 아닌 것) - 잘 제어함으로 대응함


경전을 보면 볼수록 부처님께서는 언어와 논리의 대마술사이십니다. ^^


그러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인과를 잘 보아서 세상일이 왜 이렇게 진행되는지를 알려는 것도 아니고

그걸 알아서 내인생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알려주십니다.

그 경지(당처 當處)는 생각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고 가르쳐주십니다.


1. Naga(나가)의 비유 :

“존자들이여,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나가 (nāgo)이십니다. 그분에게 생겨난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만 그분은 힘센 코끼리(나가)와 같은 태도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正念正知]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십니다.”


nāgo vata, bho, samaṇo gotamo; nāgavatā ca samuppannā sārīrikā vedanā dukkhā tibbā kharā kaṭukā asātā amanāpā sato sampajāno adhivāseti avihaññamāno


sārīrika : [adj.] connected with the body <sarīra] 舎利の, 身体の; 舎利. -dukkha 身の苦

sarīrī :An animal, man

sarīra : [nt.] the body, 身, 身体; 舎利, 遺身 사리

tibba : [adj.] sharp; piercing; acute, 重的, (程度上)很(甚,極)~的, 激烈(強烈,猛烈)的, = tippa

khara : [adj.] rough; hard; sharp; painful

kaṭuka : [adj.] sharp; severe, painful; pungent, 辛(から)き, 苦渋の

asāta : [adj.] disagreeable. (nt.) pain; suffering, 痛苦,苦楚

amanāpa : [adj.] detesful, 不可意的, 不適意的

manāpa : [adj.] pleasing; charming

adhivāseti : [adhivasati 的 caus] endures; waits for

vāseti : [vas + e] establish; makes dwell; perfumes

vasati : [vas + a] lives; abides; dwells; stays, spend time, 居住,遵守,停留

avihaññamāna: [na+vihaññamāna] vihaññamāna : [pr.p. of vihaññati] suffering hardship

vihaññati : [vi + han + ya] to be vexed or grieved; suffers hardship, 焦急,悲伤,  다쳐서 슬픔

haññati : [han + ya] is killed or destroyed [hanati 的 pass.] 被害, 被殺


Nāga 란 힘센 코끼리나 용을 뜻한다고 합니다. 각묵스님께서는 힘센 코끼리로 번역하셨지만 저는 그냥 나가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뒤에 나오는 danto라는 것이 상아(tusk)를 뜻하므로 이게 코끼리가 아닐까 합니다.


nāga , (m.), a cobra, an elephant; the iron-wood tree; a noble person, 龍, 象


Naga의 의미: Nāga 란 ‘가지(ga) 않는(na)’이란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간다는 것(gacchati)은 '행위를 한다' 혹은 보다 구체적으로는 중생의 삶을 산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Naga란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나쁜 것 dukkhā에 대해서) 나를 일으키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dukkhā는 (duh-ka) 나쁜 (duh) 것(ka)


2. Siha(사자)의 비유

존자들이여,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사자(sīho)이십니다. 그분에게 생겨난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만 그분은 사자와 같은 태도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십니다.


앞글에서 말씀 드린대로 Siha의 의미는 '나를(si) 내려 놓은(ha) 자' 입니다.


si , (梵si)﹐【字根I.、V.】黏附於、坚持(to cling to),依赖(to depend upon), 绑(to bind)
si :[=asi] atthi の 2sg,
Atthi ,[Sk. asti, 1st sg. asmi; Gr. ei]mi/--e]sti/; Lat. sum-est; Goth. im-ist; Ags. eom-is E. am-is] to be, to exist
ha :adv. 一定, 當然, 確實. na ha nūna 一定…沒有樣嗎?. iti ha臆説, 這様. itihītiha [iti ha iti ha] 傳聞
hā, ﹐【字根III.】减少(to decrease)。
hā, ﹐【字根I.】放弃(to give up)。
hāna :n. [〃<hā] 退, 退失, 捨棄


따라서 Siha란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나쁘다고 하는 것 tibba에 대해서 )나를 내려 놓는 것입니다.


tibba = tippa : [adj.] sharp; piercing; acute

나쁘다고 (papi) + 하는 것 (ti)


3. ājānīyo (혈통 좋은 말)의 비유

존자들이여,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혈통 좋은 말(ājānīyo)이십니다. 그분에게 생겨난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만 그분은 혈통 좋은 말과 같은 태도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십니다.


ajāniya란 '오직 모를 뿐'으로 선을 하는 자(Ājānīyajhāyitaṃ)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ajāniya : [abs.] not knowing; being unaware of 오직 모를 뿐!!!
ājānīya , (adj.), of good breed

jāni: [f.] loss; deprivation; the wife. (aor. of jānāti), knew; found out :[jānātiのaor.]知つた

jānāti : [ñā + nā] knows; finds out; to be aware, (出)生, 産生


저는 이 ajāniya의 비유가 중국의 선 불교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고려시대 보조국사의 단지불회( 오직 모를 뿐; 但知不會 是卽見性)도 여기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따라서 ajāniya란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손익을 따짐 khara에 대해서) 오직 모를 뿐으로 선정에 드는 자입니다.


saṅkhā , (f.) enumeration; calculation; a number; definition





4. nisabho (황소)의 비유

존자들이여,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황소(nisabho)이십니다. 그분에게 생겨난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만 그분은 황소와 같은 태도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십니다.


황소(nisabha)의 경우도 한밤중(nisā)의 빛 (bha)을 의미합니다.


nisabha: [m.] a leading ox; the best of men, 人牛王, 人主, 雄者, 牛王.
sabhā :f. [〃]會堂, 集會所, 集會.
nisā : [f.] night 夜晚


따라서 nisabho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허무한 것 kaṭuka에 대해서) 지혜로 대처하는 것을 뜻합니다.


tuccha :a. [〃] 空虛的, 虛偽的

허무한 (tuka) + 것 (ka)


5. dhorayho (힘 센 소)의 비유

존자들이여,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힘센 소(dhorayho)이십니다. 그분에게 생겨난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만 그분은 힘센 소와 같은 태도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십니다.


힘센 소(dhorayho)의 경우에는 멍에에서(dhura) 풀려난 자(rayha = raya)를 뜻합니다.


dhorayha : [adj.] able to bear a burden or to carry the yoke [cf. dhura-vaha] 忍耐強的牛, (能)馱軛的牛. dhura-dhorayha 馱運貨物的牛(a yoked ox with carrying burden).
dhura: [nt.] 1. an office; responsibility; a charge; 2. a yoke; 3. the shaft of a carriage; 4. the forepart. (adj.) foremost; near
Raya ,[fr. ri, riṇāti to let loose or flow, which is taken as ray


따라서 dhorayho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동의할 수 없는 것 asāta에 대해서) 멍에에서 풀려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멍에에서 풀려나는 것인지 멍에를 이고 가는 것에서 풀려나는 것인지가 우암도 현재로선 헷갈립니다.

만약 멍에를 이고 가는 것에서 풀려난다면 만족함 혹은 동의함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힘센 소(dhorayha)의 뜻은 '짐을 옮기는 멍에를 한 황소'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임'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6. danto (코끼리)의 비유

존자들이여,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잘 제어하시는 분(danto)이십니다. 그분에게 생겨난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만 그분은 잘 제어된 모습으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십니다.


코끼리(danto)는 잘 제어하시는 분(danto)을 뜻합니다.


danta: [pp. of dameti] tamed; trained; mastered; converted. (nt.), a tooth; tusk; fang. (pp. of dameti), tamed, controlled, 象牙,  코끼리???

dhanta :a. [Sk. dhvānta. cf. dhamita]blown; sounded; kindled, 吹ける, ひびく불다, 소리를 내다

dhameti : [dham + e] blows; sounds

dhā , (梵dhā, dadh)﹐【字根I.】放(to put),忍受(to bear)


앞에서는 모두 동물로 비유했는데 이것만 ' 잘 제어된 분'으로 각묵스님 처럼 번역하는 것은 좀 이상해 보입니다. danta에 상아 (tusk)가 있으니 코끼리로 번역하여도 될 것입니다.


따라서 danta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뜻한 바가 아닌 것 amanāpa에 대해서) 잘 제어하신다는 것입니다.


7. 종합

“잘 닦은 삼매와 잘 해탈한 그분의 마음을 보십시오. 그분의 마음은 앞으로도 기울지 않고 뒤로도 기울지 않았으며 그분의 삼매는 억지로 노력하여 억압하고 억누른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인간 가운데 힘센 코끼리(나가)요, 인간 가운데 사자요, 인간 가운데 혈통 좋은 말이요, 인간 가운데 황소요, 인간 가운데 힘센 소요, 인간 가운데 잘 제어된 분에게 해를 끼치려고 생각하는 자는 실로 눈이 먼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passa samādhiṃ subhāvitaṃ cittañca suvimuttaṃ, na cābhinataṃ na cāpanataṃ na ca sasaṅkhāraniggayhavāritagataṃ.

Yo evarūpaṃ purisanāgaṃ purisasīhaṃ purisaājānīyaṃ purisanisabhaṃ purisadhorayhaṃ purisadantaṃ atikkamitabbaṃ maññeyya kimaññatra adassanā


abhinata : [pp. of abhinamati] bent; bowed down to
paṇata : [pp. of paṇamati] bowed down; adored; worshiped

namati : [nam + a] bends; bows down
ñāta , (pp. of jānāti), known; well-known; realised
niggayha : [abs. of niggaṇhāti] having rebuked; having censured; having restrained
niggaṇhāti : [ni + gah + ṇhā] rebukes; censures; restrains, 抑止, 折伏, 論破, 叱責
gaṇhāti : [gah + ṇhā] takes; holds of; seizes
vārita : [aor. of vāreti] prevented; obstructed; hindered
vāreti : [var + e] prevents; obstructs; hinders
atikkamati : [ati + kam + a] goes beyond; passes over; overcomes; surpasses
aññatra :① adv. [añña-tra] 在他處, 在別的地方


이 부분은 sato sampajāno adhivāseti avihaññamāno에 대응하는 부분으로 보입니다.

즉 휩쓸리지 않고 (sato) 모든 것을 알아서 (sampajāno) 머무는 것을 넘어 (adhivāseti) 명백하게 의도를 제거하신다(avihaññamāno).


이 번역에서도 avihaññamāno를 제 마음대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avi(명백히) + hañña(제거하다) + māno (의도, 意, 주의 기울임)

āvi : [ind.] openly; before one's eyes, clear, manifest, evident

haññamāna : [pr.p. of haññati] killing


haññamāna의 경우 그 말 자체로 죽이다, 제거하다의 의미가 있지만

뒤의 māna를 따로 분리해서 mano(意)로 보았습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이 문장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우암의 번역

삼매가 잘 닦여져서 마음이 잘 해탈한다는 것은 앎에 대한 것도 (cābhinataṃ) 아니고 앎으로 향하는 것도(cāpanataṃ) 아니고 행위에 따라오는 것을 (sasaṅkhāra) 분석하려는 것도 방지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가같은 분이요 사자같은 분이요 말같은 분이요 황소같은 분이요 힘센 소같은 분이요 코끼리같은 분께서는 색(형상; 개념)을 극복하셨다.
생각으로는 이러한 곳이 있는 장소는(진리의 장소) 보이지 않는다.


역시 기존 번역과는 무척 다른 번역이 나와버렸습니다.

우암은 '명백하게 의도를 제거하신다(avihaññamāno)'를

'앎에 대한 것도 (cābhinataṃ) 아니고 앎으로 향하는 것도(cāpanataṃ) 아니고 행위에 따라오는 것을 (sasaṅkhāra) 분석하려는 것도 방지하려는 것도 아니다.'로 읽었습니다.


우암은 아직 sasaṅkhāra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전(전생)의 행위때문에 동반되어 나타나는 행위 예를 들어 이 경의 경우에는 데와닷따의 행위일까요 ?
아니면 데와닷따의 행위에서 수반되는 두번째 화살들일까요?
저는 일반적인 행위에 수반되는 것으로 읽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우암은 cābhinataṃ와 niggayha가 대응하고 cāpanataṃ이 vāritagataṃ에 대응한다고 보았습니다.
아는 것에 대한 것(cābhinataṃ)이 (알아서 그 일에 대해) 비판(논파 論破)하려는 이유이고
앎으로 향하는 것(cāpanataṃ)이 (알아서 그 일에 대해) 방지하는 이유입니다.
그런 의도들을 모두 제거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은 인생의 큰 어려움을 만나서 부처님 법을 배워 그 문제를 풀어보려고 하지만
부처님의 깨달음이란 인과관계를 명확히 보기 위함도 아니고 인과관계를 명확히 보아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삼명을 갖고 계셔서
데와닷따가 부처님을 해치려 하는 것을 다 아셨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님께서는 그 길을 가십니다.
이러한 부처님의 '행위'에 대한 설명이
사건을 보기 위함도 아니고 방지하기 위함도 아니다 라는 설명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부처님께서는 나가(naga)이시고 시하(siha)이시고 ...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의 이익을 계교하는) 생각으로는 이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_()_


영어 번역
“See his concentration well developed and his mind well liberated—not bent forward and not bent back, and not blocked and checked by forceful suppression! If anyone would think such a one could be violated—such a naga of a man, such a lion of a man, such a thoroughbred of a man, such a chief bull of a man, such a beast of burden of a man, such a tamed man—what is that due to apart from lack of 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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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이 끝나고 남들은 어떻게 번역했나 살펴보니

진흙 속의 연꽃 님께서 올리신 글이 있던데 (http://blog.daum.net/bolee591/16155802)

보디 스님도 이 경의 번역이 난해하다고 하셨다네요.^^

그리고 게송에 대한 전재성 박사님과 각묵스님의 번역이 다르다는 지적이 있으시더군요.


아참! 저는 게송은 쳐다 보지도 않았는데....


그래서 게송도 번역해 보겠습니다.


“Pañcavedā sataṃ samaṃ,
Tapassī brāhmaṇā caraṃ;
Cittañca nesaṃ na sammā vimuttaṃ,
Hīnattharūpā na pāraṅgamā te.


Vedeti , (vid + e), 感受,感觉,感知, senses; knows
tapassī : [adj.] devoted to religious austerities. (m.), a hermit, 隐士,苦行僧

다섯 베다 (다섯 감각; 안이비설신?)으로 백년간 완전히 깨끗한 삶을 살더라도
마음은 완전하게 해탈하지 못하며
작은 나라는 몸으로는 저 언덕으로 가지 못한다네.

Pañcavedā를 다섯 개의(panca) 느낀(veda) 것(ca)이라고 풀고 싶군요. 안이비설신!^^

sataṃ을 저는 백년으로 보았습니다. 인간의 수명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즉 평생을의 뜻으로 본 것입니다.

저는 Hīnattharūpā를 작은(hina) 나라는(atta) 몸으로(rupa)라고 보았습니다.

저 언덕으로 가다 번역한 pāraṅgamā은 '내가 남이 되어보는'이라고도 우암에게는 읽힙니다.

즉 삼명의 경지를 말씀하신다고 보면 너무 나간 번역일까요?


제 나름의 이해를 기준으로 다시 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평생을 깨끗하게 산다하여도

마음은 완전히 해탈하지 못한다네.

이 몸이 나인줄 알고 산다면 평화를 얻지 못하리!


Taṇhādhipannā vatasīlabaddhā,
Lūkhaṃ tapaṃ vassasataṃ carantā;
Cittañca nesaṃ na sammā vimuttaṃ,
Hīnattharūpā na pāraṅgamā te.


adhipanna : [adj.] afflicted with; gone into, 到达, 痛苦于…,进入
Adhipajjati ,[adhi + pajjati] to come to, reach
sīlavata : 戒禁 계와 금하는 것
lūkha : [adj.] rough; coarse; miserable
tapa: [m.; nt.] (mano-group) penance; religious austerity; morality, 苦行
vassasata 백년


갈애를 완전히 이해하여 지켜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묶여서

어려운 고행으로 평생을 살아도

마음은 완전히 해탈하지 못한다네.

이 몸이 나인 줄 알고 산다면 평화를 얻지 못하리!


Na mānakāmassa damo idhatthi,
Na monamatthi asamāhitassa;
Eko araññe viharaṃ pamatto,
Na maccudheyyassa tareyya pāran”ti.


dama : [m.] taming; subjugation; restraint; mastery, 調御, 調伏, 訓練
samāhita : [samādahati 的 pp.] settled; composed; collected of mind
mona : [nt.] wisdom; self-possession; silence
dahati : [dah + a] burns; accepts, (燃)燒, 苦(煩)惱, 放置(put, place)
pamatta : [pp. of pamajjati] become intoxicated; was clearless, slothful or negligent, 放逸的, 放縱的, 任性的
maccudheyya: [maccu+dheyya]
maccu : [m.] death; the Death, 死, 死神, 悪魔
Dheyya ,(-°) [see dahati1] 1. in the realm of, under the sway or power of, 領域
tara : [adj.] (in cpds.), crossing; passing

길들여 진 자에게는 계교하는 욕망이 없고
모두 불을 태워버리지 못한 자에게는 고요함은 없다네.
홀로 숲에 거주하지만 방일하다면
죽음의 영역을 건너 저 곳으로 가지 못하리!


“Mānaṃ pahāya susamāhitatto,
Sucetaso sabbadhi vippamutto;
Eko araññe vihara­mappa­matto,
Sa maccudheyyassa tareyya pāran”ti.


나라는 마음 버려져서 모두 불태워버린 자는
좋은 마음으로 어디에서나 해탈로 향합니다.
홀로 숲에 거주하며 방일하지 않으면
죽음의 영역을 건너 저 곳으로 가리!




각묵 스님 번역입니다.

붓다의 옛길에서 모셔왔습니다. (http://blog.daum.net/_blog/BlogTypeMain.do?blogid=06jgp)


S1:38 돌조각 경(Sakalik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맛다꿋치의 사슴동산에 머무셨다. 그 무렵 세존께서는 돌조각에 부딪혀 발에 상처를 입으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심한 고통을 느끼셨는데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正念正知]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셨다.


註) 데와닷따가 세존을 해하려고 독수리봉 산에서 굴러 내린 바위의 파편에 발이 상하신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 [자리를] 만들게 하신 뒤 발로써 발을 포개고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우셨다.


그때 칠백 명의 사뚤라빠 무리의 천신들이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맛다꾸치를 환하게 밝히면서 세존께 다가갔다. 다가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선 어떤 천신은 세존의 면전에서 이 감흥어를 읊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힘센 코끼리(나가)이십니다. 그분에게 생겨난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만 그분은 힘센 코끼리(나가)와 같은 태도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正念正知]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십니다.”


그러자 다른 천신이 세존의 면전에서 이 감흥어를 읊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사자이십니다. 그분에게 생겨난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만 그분은 사자와 같은 태도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십니다.”


그러자 또 다른 천신이 세존의 면전에서 이 감흥어를 읊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혈통 좋은 말이십니다. 그분에게 생겨난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만 그분은 혈통 좋은 말과 같은 태도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십니다.”


그러자 또 다른 천신이 세존의 면전에서 이 감흥어를 읊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황소이십니다. 그분에게 생겨난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만 그분은 황소와 같은 태도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십니다.”


그러자 또 다른 천신이 세존의 면전에서 이 감흥어를 읊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힘센 소이십니다. 그분에게 생겨난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만 그분은 힘센 소와 같은 태도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십니다.”


그러자 또 다른 천신이 세존의 면전에서 이 감흥어를 읊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잘 제어된 분이십니다. 그분에게 생겨난 그 육체적인 느낌은 고통스럽고 격심하고 쓰라리고 신랄하고 참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만 그분은 잘 제어된 모습으로 마음 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흔들림 없이 그것을 감내하십니다.”


그러자 또 다른 천신이 세존의 면전에서 이 감흥어를 읊었다.

“잘 닦음 삼매와 잘 해탈한 그분의 마음을 보십시오. 그분의 마음은 앞으로도 기울지 않고 뒤로도 기울지 않았으며 그분의 삼매는 억지로 노력하여 억압하고 억누른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인간 가운데 힘센 코끼리(나가)요, 인간 가운데 사자요, 인간 가운데 혈통 좋은 말이요, 인간 가운데 황소요, 인간 가운데 힘센 소요, 인간 가운데 잘 제어된 분에게 해를 끼치려고 생각하는 자는 실로 눈이 먼 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세존]

“다섯 베다를 잘 배운 바라문들이 있어

백 년 동안 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들 마음 바르게 해탈하지 못하나니

저열한 성품으로는 저 언덕에 이르지 못합니다.


갈애에 빠져들고 서계와 계율에 묶여서

힘든 고행 백 년간 행한다 하더라도

그들 마음 바르게 해탈하지 못하나니

저열한 성품으로는 저 언덕에 이르지 못합니다.”


[천신]

“자만에 빠진 자에게 길들임이란 없고

마음이 집중되지 않은 사람에게 성자의 삶이란 없으니

홀로 숲에 거주하나 방일하여 지내면

죽음의 영역에서 저 언덕으로

결코 그는 건너지 못하옵니다.”


[세존]

“자만을 제거하고 바르게 잘 삼매에 드는 자는

고결한 마음으로 어디서든 해탈 합니다.

그는 홀로 숲에 거주하면서 방일하지 않아

죽음의 영역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 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