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인생

인과와 양자역학

우암(雨庵) 2016. 3. 15. 11:00

양자역학 (Quantum Mechanics)이란

분자, 원자, 전자와 같은 작은 크기를 갖는 계의 물리학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위키 백과)


물리학도도 아닌 우암이 양자역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양자역학과 불교의 인과론 사이에는 비슷한 특성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즉 불교의 인과론을 양자역학에 빗대어 설명해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암이 재료과 대학원 시절에 미시간 대학교 학부 4학년 양자역학 수업을 들었는데 1등을 했었죠! 그래봐야 학부 4학년 코스긴 합니다만^^)


먼저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였던 상보성 원리(相補性原理, complementarity principle)에 대한 우암의 의견은

이 원리가 인과에 대한 원리가 아닐까하는 점입니다.

상보성 원리란 우리가 물질이라고 생각하던 빛, 전자 등의 입자가 동시에 파동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우리는 질량을 갖고 있는 물질은 직진 운동을 하고 질량이 없는 에너지는 파동처럼 이동을 한다고 보았는데 전자, 빛 등에서는 동시에 입자성(질량)과 파동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상보성이라고 합니다.

또한 물질이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E = mC^2)도 한 몫을 합니다.


이 전에 많은 분들이 상보성 원리를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유사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 구절의 의미를 물질이 에너지가 되고 에너지가 곧 물질이다라는 개념으로 읽은 것이죠.

그래서 2600년 전에 이런 개념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 많은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물질이 에너지가 되는 과정은 우라늄 등의 붕괴에서 발견되었지만

에너지가 물질이 되는 과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죠?

어쩌면 에너지가 물질로 드러나는 현상이 바로 우리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암은 상보성이 인과라는 연기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파동이란 원인이 되겠습니다. 파동의 특성은 간섭이 가능합니다. 즉 다른 파동을 만나면 증폭되기도 하고 혹은 상쇄되기도 합니다.

한편 입자란 결과가 되겠습니다. 양자 역학의 이중 슬릿 실험을 생각해 보면 우암이 뜻하는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아래 동영상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전자를 슬릿을 향해서 쏜다는 의미는 어떤 하나의 사건이 과거에 있었음을 뜻합니다.
즉 전자를 쏜다는 것은 과거의 하나의 사건이고 슬릿이란 현재 나의 감각기관입니다. (이중 슬릿이란 두 사람이 관계된 경우일 것입니다.)
과거에 쏘아진 전자는(어떤 사건; 미래 사건의 원인) 파동처럼 시간을 따라서 흘러갑니다.
이것이 슬릿(우리 감각기관; 개인)을 통과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에 주의를 주지 않는다면 (mano 의근(意根)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파동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스크린에서 간섭무늬만을 만들게 됩니다. 어떠한 일이 발생할 수 있는 확률만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중 슬릿을 통과한 '입자(원인)'들은 여전히 파동적인 특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어떠한 결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가능태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것은 입자를 하나씩 발사해도 동일한 결과를 나타냅니다. 마치 하나의 입자(사건의 원인)가 나누어져서 통과하는 것과 같겠지요.

이 이중 슬릿 현상에서 만약 우리가 어느 쪽으로 입자가 통과하는지를 '관찰'하게 되면(의도하게 되면) 그 결과가 바뀌게 됩니다.
즉 우리가 과거로 부터 오던 가능태를 확인하는 순간 (의도를 가지고 개입하는 순간)
그 가능태는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고 하나의 현실이 됩니다. 이것이 확률의 붕괴인 것입니다.
즉 우리가 사물을 구분하여 관찰자와 관찰대상으로 갈라지는 순간
'나라는 관찰자'가 존재하게 되고, 과거의 원인은 하나의 결과로서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 본다면
1억년 전에 하나의 은하에서 지구를 향해 날라오게 된 빛의 경우
지구에 도달하는 경로에 놓여있는 특정 은하(예를 들어 5000만 광년에 위치한 은하)의 위 혹은 아래로 통과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빛 입자가 특정 은하의 중력에 의해서 휘어지게 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
만약 우리가 그 빛의 경로를 추적하지 않는다면
이미 그 빛 입자는 5000만년 전에 그 특정 은하의 위 혹은 아래를 통과했는데도
이 빛은 확률로 분포하게 됩니다. 위 혹은 아래로 통과할 확률이 반반인 셈이죠.
그러나 우리가 그 경로를 추적하는 순간 이 확률은 붕괴됩니다.
(사실 이 비유는 실험실에서 진행된 이중 슬릿 실험과 동일한 실험입니다. 단지 일반인이 더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시간을 더 길게 잡은 것이 불과합니다.)

이 현상의 의미는 과거에 어떤 일이 발생하여도 그건 가능성으로만 존재하게되며,
그것을 지금 이 순간에 확인하려 할 때 비로서 현상으로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이게 우리가 인과를 받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천상 - 인간 - 축생 - 아귀 - 지옥 을 윤회하면서 다양한 마음, 말, 행위(신구의 삼업)를 통해서 업을 쌓아온 존재입니다. 다시 말해서 수없이 긴 세월 동안 다양한 과거의 사건을 갖고 있는 존재란 말입니다. 즉 상상할 수 없으리만치 다양한 원인의 씨앗을 갖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현재란 엄청나게 복잡한 원인의 파동이 진행되고 있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현생에서 드러나는 여러 사건들은 우리가 선택적으로  어떤 사건에 주의를 기울이는 지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가족, 학교, 내가 선택한 배우자, 자녀, 직장...)
그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따라서 (예를 들어서 인연이 있는 사람과의 만남 및 그 사람과 얽히고 섥킴) 그 인연에 따른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행히도 어떤 인연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슬릿 실험으로 비유해 보자면 다양한 소립자가 다양한 슬릿으로 통과하는 것이죠. 인간이 예측하기는 정말로 어려운 경우겠지요.

점쟁이들도 이 일부를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인이 될 수 있는 파동이 워낙 많고 또한 상대방과 주변 인물의 파동이 너무 많아서 즉 변수가 너무 많아서 미래를 내다 본다는 것은 섯부른 시도가 되겠지요. 과거에 대해서는 명확히 볼 수 있는 사람은 꽤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미래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점쟁이가 과거(확정되어 있는 것)를 맞춘다고 해서 미래(확정되지 않은 것의 결과)를 맞출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을 통해서 바로 이런 원인과 결과가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훤히 보신 분이십니다. 그 법칙이 연기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 가르침을 우암(雨庵)과 같은 어리석고 어두운(愚暗) 윤회하는 중생을 위해서 설해주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윤회하는 세상에서 잘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신 것은 아닙니다.

아니 원리상으로는 잘 사는 법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지만 현생을 잘 사는 것만으로는 윤회라는 괴로움을 벗어날 수 없다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윤회란 수레 바퀴입니다. 높은 순간이 있다면 낮은 순간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계적인 회전이 아닙니다. 우리의 의도(생각)가 굴리는 바퀴입니다.

자비희사 사무량심의 삶을 살아서 천상의 존재로 태어날 수도 있겠지만

그 복이 다 하면 (福盡하면) 여전히 남아있는 윤회의 씨앗들이 발아해서 윤회를 하면서 무엇이 될 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알려주신' 알려지지 않는 진리의 자리를 찾아가고,

그 자리의 고요함 속에서 번뇌를 소멸시켜야 합니다.  (누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되어야 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