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A4:45 로히땃사 경 1에 나타나는 게송을 우암 나름대로 번역해 봅니다.
기존에 초불련의 번역과는 그 맛이 많이 다릅니다.
빨리어 원문
Gamanena na pattabbo,
lokassanto kudācanaṃ;
Na ca appatvā lokantaṃ,
dukkhā atthi pamocanaṃ.
Tasmā have lokavidū sumedho,
Lokantagū vusitabrahmacariyo;
Lokassa antaṃ samitāvi ñatvā,
Nāsīsatī lokamimaṃ parañcā”ti.
우암의 번역
감(행위, 추구)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나니
세상이 평안해짐을 언제 얻겠는가?
청정할 수 없다네 세상의 극단으로는
괴로움에서 풀려남도 없다네
진실로 세상의 지혜를 잘 안다면
세상의 극단에서도 청정하게 머문다네.
세상의 극단에서 고요함을 찾는다면
주목하지 않는다네 이 세상 즉 다른 것에 대해
초불련의 번역
걸어서는 결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남도 없다네.
그러므로 세상을 알고 슬기롭고
세상의 끝에 도달했고 청정범행을 완성했고
모든 악을 가라앉힌 자는 이 세상의 끝을 알아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네.”
제가 이 게송에 주목한 이유는 어느 법우가 이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우주의 끝에 대해 언급하셨다고 주장을 하셔서 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끝이 무엇이라고 빨리어로 표현되어 있는 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초불련에서 세상의 끝이라고 번역한 빨리어는 Lokassa anta이더군요. 문자적으로만 번역한다면 세상의 끝(극단) 입니다.
그런데 우암이 바라다 본 이 게송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단어의 의미가 물리적인 세상의 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견해의 극단을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극단의 견해란 '있다' 혹은 '없다'라는 것이 되겠지요.
물론 로히땃사는 진리를 찾아서 세상의 끝까지 가 보려 했던 것은 맞구요. (다른 말로 하자면 '밖에서 찾았다.'는 것이 되겠죠.)
초불련에서는 로히땃사의 질문에 맞추어 Gamanena를 걸어가다로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우암이 보기에는 걸어가다 보다는 추구한다는 의미가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합니다. (유위 有爲)
따라서 이 말씀은(Gamanena na pattabbo) 선불교에서 무념(無念)이라고 표현하시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보았습니다.
두 번역에서 결정적인 큰 차이는 Lokantagū vusitabrahmacariyo의 번역입니다.
우암은 '세상의 극단에서도 청정하게 머문다네'로 번역한 반면에
초불련은 '세상의 끝에 도달했고 청정범행을 완성했고'로 번역했습니다.
제가 초불련 번역을 이상하게 본 이유는 세상의 끝에 도달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또 그게 왜 청정범행의 완성일까요?
오히려 부처님 가르침에서 극단(anta)이란 표현을 사용하실 때에는 언제나 견해의 극단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있다에 사로잡히거나 없다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세상의 끝이 아닐까요?
그게 중생들의 세상에 대한 견해이구요. 그래서 유물론자도 되고 허무주의자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일을 잘아는 지혜를 가진다면 이 두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고 세간사는 청정범행으로 대처하고 수행으로는 적정(고요함)으로 대처한다는 말씀이 아니시냔 말이죠. 그래서 고요함으로 대처해서 Nāsīsatī lokamimaṃ parañcā 즉 주목하지 않는다네 세상 즉 (고요와는) 다른 것에 대해서... 라고 보았습니다.
한편 A4:45 로히땃사 경 1에서 나타나는 문장 중 번역이 어려웠던 부분은
"도반이여, 나는 인식과 마음을 더불은 이 한 길 몸뚱이 안에서
세상과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소멸과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천명하노라.” 라고 초불련에서 번역한 부분입니다.
빨리어 원문
Api cāhaṃ, āvuso, imasmiṃyeva byāmamatte kaḷevare sasaññimhi samanake lokañca paññāpemi lokasamudayañca lokanirodhañca lokanirodhagāminiñca paṭipadanti.
이 부분에 대한 우암의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껏 헤아려야 사람 키 밖에 안되는 몸에서 sañña(습 習)와 함께 mano (주의 기울임)와 함께 세상의 진리를 추구하여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소멸과 세상의 소멸로 이르는 길을 알았노라."
우암은 이 문장의 의미가 진리란 먼 길을 떠나 찾아 헤매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이 몸에서 그 진리를 알 수 있노라.'하는 가르침이라고 보았습니다.
A4:45 로히땃사 경 1 (Rohutassa-sutta)
1.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때 신의 아들 로히땃사가 밤이 아주 깊었을 때 아주 멋진 모습을 하고 온 제따 숲을 환하게 밝히고서 세존께 다가왔다. 다가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신의 아들 로히땃사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습니까?”
“도반이여, 참으로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2. “세존께서는 ‘도반이여, 참으로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라고 이러한 금언을 말씀하시니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저는 옛날 로히땃사라고 불리는 선인(仙人)이었습니다. 저는 보자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신통을 가져서 하늘을 날아다녔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빨라서 마치 능숙한 궁수가 훈련을 통해서 능숙하고 숙련되어 가벼운 화살로 힘들이지 않고 야자나무의 그늘을 가로질러 신속하게 쏘는 것과 같았으며, 저는 걸음걸이가 커서 동쪽의 바다에서 서쪽의 바다를 한 걸음으로 걷는 것과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속력을 갖추었고 이러한 큰 걸음걸이를 가졌기에 제게는 ‘나는 걸어서 세상의 끝에 도달하리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때 제겐 아직 백년의 수명이 남아있어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보는 것을 제외하고 대소변보는 것을 제외하고 수면과 피로를 제거하는 것을 제외하고 백년을 살면서 [계속해서] 걸었지만 세상의 끝에는 이르지 못하고 도중에 죽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제게] 세존께서는 ‘도반이여, 참으로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라고 이러한 금언을 말씀하시니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3. “도반이여, 참으로 태어남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떨어짐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 그런 세상의 끝을 발로 걸어가서 알고 보고 도달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도반이여, 그러나 나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을 끝낸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도반이여, 나는 인식과 마음을 더불은 이 한 길 몸뚱이 안에서 세상과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소멸과 세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을 천명하노라.”
Api cāhaṃ, āvuso, imasmiṃyeva byāmamatte kaḷevare sasaññimhi samanake lokañca paññāpemi lokasamudayañca lokanirodhañca lokanirodhagāminiñca paṭipadanti.
byāmamattā: [byāma+mattā]
byāma : [m.] a fathom, 一寻, 헤아리다[가늠하다]
mattā , (f.), a measure; quantity; moderation
kaḷevara: [kaḷa+vara] = kaḷebara : [nt.] the body, ① 死屍, 死體. ② 身體
sāmaṇaka : [adj.] worthy or needful for a monk
sāmaṇaka: [sa+mana+ka] endowed with mind, 有意的, 有意識的
pema : [nt.] love; affecting
번역 어렵다!
기껏 헤아려야 사람 키 밖에 안되는 몸에서 sañña와 함께 mano와 함께 세상의 진리를 추구하여 세상의 일어남과 세상의 소멸과 세상의 소멸로 이르는 길을 알았노라.
(즉 먼 길을 가지 않고 이 몸에서 진리를 깨달으셨다는 말이다?)
4. “걸어서는 결코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세상의 끝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남도 없다네.
Gamanena na pattabbo,
lokassanto kudācanaṃ;
Na ca appatvā lokantaṃ,
dukkhā atthi pamocanaṃ.
gamana: [nt.] going; walk; journey; pursuit. (adj.), leading to; conducive to, 行去的事, 歩行, 旅行
pattabbo :and (pattabbako)Attainable
santo :Being; good; wise
santo:Wearied, tired。
santo:tranquilled calmed; see sammati
sammati : [v.] ceases; is appeased, 安抚,平息,停止,休息,居住,厌倦
Kudācana , kudācanaṁ,【无】有时,随时
kudā :adv. = kadā 何時(什麼時候). kudācanaṃ (在)什麼時候也~
appatvā: [na+patvā]
patvā : [abs. of pāpuṇāti] having reached; attained or obtained
pāpuṇāti : [pa + ap + uṇā] reaches; attains; arrives at, 得る, 達す, 到達す
puṇāti : [pu + ṇā] cleans; sifts, To purify, 清理,筛出
pamocana : [fr. pa+muc] setting free; loosening; deliverance, 令脱, 解放
mocana : [nt.] setting free; discharging, 释放
우암번역
감(행위, 추구)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나니
세상이 평안해짐을 언제 얻겠는가?
청정할 수 없다네 세상의 극단으로는
괴로움에서 풀려남도 없다네
그러므로 세상을 알고 슬기롭고
세상의 끝에 도달했고 청정범행을 완성했고
모든 악을 가라앉힌 자는 이 세상의 끝을 알아
이 세상도 저 세상도 바라지 않네.”
Tasmā have lokavidū sumedho,
Lokantagū vusitabrahmacariyo;
Lokassa antaṃ samitāvi ñatvā,
Nāsīsatī lokamimaṃ parañcā”ti.
have : [ha+ve] [ind.] surely; indeed, 当然,的确
vidū : [adj.] wise; skilled in. (m.) a wise man
sumedha: [adj.] wise, 賢良的, 善慧の, 賢き
medha : [m.] a religious sacrifice.。 宗教性的牺牲
medhā , (f.) wisdom, 智能
Vusita ,[Kern, Toev. s. v. vasati takes it as vi+uṣita (of vas2), against which speaks meaning of vivasati “to live from home.
vasati : [vas + a] lives; abides; dwells; stays
samitāvi : [m.] one who has quieted himself, 自己已冷静
samita : [pp. of sameti] calmed; appeased, [sameti 的 pp.] 集合, 同等的, 同量的, 静止
sameti : [saṃ + i + a] comes together; meets; agrees with; compares; makes even; appeases, 集合, 結交, 會面, 認知, 同意.
ñatvā : [abs. of jānāti] having known; having found out
Nāsīsatī: Na + asi + sati 즉 그는 주목하지 않는다로 해석
imaṃ :see ayaṃ 這(是), 這個(是), 此(是).
ayaṃ : [(nom. sing. of ima), m.; f.] this person
진실로 세상의 지혜를 잘 안다면
세상의 극단에서도 청정하게 머문다.
세상의 극단에서 고요함을 찾는다면
주목하지 않는다네 이 세상 즉 다른 것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