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 그리고 안과 밖
한 인터넷 카페에서 어느 법우님께서 pacchāpuresaññī를 전후상(前後想)을 가진 자라는 (pacchā後 + pure前 + saññī想) 번역을 하셨습니다.
각묵스님 번역에서는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암은 이 말의 의미를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한번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암이 이해한 바로는 pacchāpuresaññī란 원인과 결과(연기)를 인식하는 자입니다.
pacchā : [ind.] afterwards, 後, 背後(back); 西方, 朝西向西(westward).
pure : [adv.] before; formerly; earlier, 前に, 過去に. -java 先行者. -jāta 前生の.
purā : (ind.) formerly; in the past. pūra (adj.) full; full of
pūr , (梵pr / prṇ/ pūr)充满(full)。【字根I.】全部、充满(to be full)。
pacchā란 후에 나타난 일이므로 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육입처(chā)가 향하는 곳(pa)도 됩니다. 그게 현재 벌어지는 현상(=결과)인 것입니다!?
pura는 앞서 있었던 일이니 원인을 뜻합니다.
혹은 pūr가 전체를 뜻하니 pure란 전체 있었던 (과거의) 일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pacchāpuresaññī란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인식(saññā)을 가진 자로 머물라는 말이 됩니다.
즉 연기법을 이해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적 외적으로 번역되는 단어들도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안이란 ajjhatta로 오늘(ajjha)의 나(atta) 입니다. 즉 현재 내 모습입니다.
밖이란 bahiddhā로 많은 (bahu) + 모아 놓은 것(재산) (iddha) 입니다. 즉 전생 경험의 축적(업)을 의미한다고 우암은 생각합니다.
Iddha ,1 [pp. of iddhe to idh or indh, cp. indhana & idhuma] in flames, burning, flaming bright
iddha:a. [ijjhati 的 pp.] 已富的, 富有的, 已成功的
이런 내용을 염두해 두고 상윳다 니까야의 S51:20 분석 경 (Vibhaṅga-sutta) 을 보겠습니다.
이 경의 내용은 금강경에서 수보리가 부처님께 질문한 내용에 해당한다고 우암은 생각합니다.
發阿樓多羅三邈三菩提心(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고는
云何應住(운하응주) : 어떻게 머무르고
云何降伏其心(운하항복기심) : 어떻게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이 경의 대의에 대한 우암의 이해는
연기법에 대한 이해를 하여 (전후에 대한 이해)
수행하는 방법으로서 부정관 (위, 아래)을 하고 (한국 불교 개념으로는 꿈이라고 인식하고)
그걸 항상 (밤낮) 유지하며
그래서 alokasanna(광명상) 즉 항상 지혜롭게 (세속적이지 않게; 내(atta) 이익에 함몰되지 않게) 인식하라는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divasanna(주상 晝想) 혹은 alokasanna(광명상 光明想)란 결국 vijja (명지)의 지혜(반야 pañña)를 뜻한다는 겁니다.
공부를 하다보니 한가지 더 중요한 개념이 잡힙니다. dha (다) 즉 놓다(放)의 의미입니다.
adha는 놓지 못하다인데 아래란 뜻이고
uddha란 놓음을 일으킴이란 뜻인데 위란 뜻 입니다.
그리고 금강경에서 나오는 위없는 깨달음이라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아뇩다라란 위 없는 즉 anuttara인데 우다(uddha; 위)와 발음과 의미가 거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uddha : [adj.] upper; upward
uttara: [adj.] higher; further; northern; over. (nt.), an answer; reply
Anuttara ,(adj.) [an + uttara] “nothing higher”, without a superior, incomparable
그래서 아래란 의미의 adha란 놓지 못한 것이고
위란 의미의 uddha란 놓는 것을 일으키는 것인데, 이 단계의 문제는 그 놓음의 대상이 있다는 것이고
위없는 이란 의미의 annuttara는 그 대상 조차 놓아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우암의 번역입니다. 각묵스님 번역을 바탕으로 했으며 제 견해를 더한 내용입니다.
S51:20 분석 경 (Vibhaṅga-sutta)
1.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에 세존께서는 사밧띠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 이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학습하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어떻게 많이 학습하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는가?”
4. 비구여, 여기 비구는 열의를 통해서 삼매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행위로 구성된 성취수단을 닦는다.
나의 열의는
(현생의 일로) 너무 축소되게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전생의 일로) 너무 확대되게 수행하는 것도 아니다.
내적으로 (오늘의 나의 일로) 국한 시키는 것도 아니고
외적으로 (전생의 모든 인연으로) 문제를 복잡하게 보는 것도 아니다.
그는 원인(전)과 결과(후)를 인식하며 머문다.
이 원인이 저 결과이고, 이 결과가 저 원인이다.
이 아래가 저 위이고, 이 위가 저 아래이다. (이 놓지 못함이 저 놓음이 되고, 이 놓음이 저 놓지 못함이 된다.)
이 낮(밝음)이 저 밤(어두움)이며 이 밤이 저 낮이다.
열린 마음으로 장애를 벗어나 함께 빛으로 향하는 마음으로 수행한다.
5. 비구들이여, 무엇이 너무 축소된 열의인가?
열의가 너무 안이한 (현생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에만 끌리고 관계된 것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축소된 열의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너무 확대된 열의인가?
열의가 놓는 것을 일으키는(들뜸; 전생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에만 끌리고 관계된 것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확대된 열의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내적으로 (오늘의 나의 일로) 국한된 열의인가?
열의만 있고 (원인을) 알지 못하고 (혼침) 무기력한 (해태) 것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적으로 (오늘의 나의 일로) 국한된 열의이다.
비구들이여, 무엇이 외적으로 혼란스러운 열의인가?
열의가 전생(밖)의 다섯 감각적인 욕망과 관련해서 그걸 따라서 혼란스럽고 그걸 따라서 퍼져나가는 것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외적으로 (전생의 일로) 혼란스러운 열의이다.
6. 비구여 비구가 원인과 결과를 알고 머무른다는 것 즉 앞일이 뒷일이고 뒷일이 앞일이 되는 것이란?
비구여, 비구는 원인과 결과를 잘 인식하여 잡는다. 즉 잘 주의 기울이고, 잘 이해하고, 잘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비구여, 비구는 원인과 결과를 잘 인식하는 자로 머문다. 저 앞일이 이 뒤의 일이고 이 뒤의 일이 저 앞의 일이라고 하면서…
7. 비구들이여, 무엇이 비구가 이 아래가 저 위이고, 이 위가 저 아래라 하면서 머무는 것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몸을 위로 즉 발바닥 아래로부터 머리카락까지 피부를 경계로 하는 모든 각각의 종류의 부정한 것들을 관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빨,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장간막, 위,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피부의] 기름기, 침, 콧물, 관절활액, 오줌 등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가 이 아래가 저 위이고, 이 위가 저 아래라 하면서 머무는 것이다.
8. 초불련과 대동소이...
아래는 우암이 공부한 내용입니다. 각묵스님 번역과 우암의 번역을 비교한 것입니다. 빨리어 원문 및 찾아 본 단어도 함께 실어 놓았습니다. 이탤릭 체는 우암의 의견입니다.
이 번역을 하다가 해태와 혼침이 무엇인지를 보다 잘 알게 되었습니다.
해태와 혼침이란 (전생의) 원인을 잘 몰라서 (무명) 무기력한 상태를 뜻한다고 우암은 이해를 했습니다. 우리가 졸려하거나 엉뚱한 생각을 하는 이유는 문제의식 (원인)에 대해서 막연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S51:20 분석 경 (Vibhaṅga-sutta)
1.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에 세존께서는 사밧띠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2.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라고. 그러자 비구들도 받들었다. '존귀하신 이여'라고.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많이 학습하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네 가지 성취수단을 닦고 어떻게 많이 학습하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는가?”
“Cattārome, bhikkhave, iddhipādā bhāvitā bahulīkatā mahapphalā honti mahānisaṃsā”. Kathaṃ bhāvitā ca, bhikkhave, cattāro iddhipādā kathaṃ bahulīkatā mahapphalā honti mahānisaṃsā?
4. 각묵 스님
“여기 비구는 ‘이처럼 나의 열의는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않을 것이다. 안으로 수축되지도 않을 것이고 밖으로 흩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라고 하면서 열의에 바탕을 둔 삼매와 그 의도적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성취수단을 닦는다.
Idha, bhikkhave, bhikkhu chand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iti me
chando na ca atilīno bhavissati, (너무 현생의 일(결과)에만 집착을 하지 않고)
na ca atippaggahito bhavissati, (너무 전생의 영역(원인들)으로만 넓혀서 보지 않고)
na ca ajjhattaṃ saṅkhitto bhavissati, (현생 만의 문제로 축소시켜서 보지 않고)
na ca bahiddhā vikkhitto bhavissati. (전생 만의 문제로 복잡하게 보지 않는다)
우암의 번역
비구여, 여기 비구는 열의를 통해서 삼매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행위로 구성된 성취수단을 닦는다.
나의 열의는
(현생의 일로) 너무 축소되게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전생의 일로) 너무 확대되게 수행하는 것도 아니다.
내적으로 (오늘의 나의 일로) 국한 시키는 것도 아니고
외적으로 (전생의 모든 인연으로) 문제를 복잡하게 보는 것도 아니다.
먼저 chand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의 번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각묵스님께서는 '열의에 바탕을 둔 삼매와 그 의도적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성취수단'라고 번역을 하셨습니다.
우암은 '열의를 통해서 삼매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행위로 구성된 성취수단'이라고 번역하고 싶군요.
삼매란 열의가 가라 앉은 상태이기 때문에 '열의에 바탕을 둔 삼매'란 말이 우암에겐 이상해 보이더군요.^^
더구나 saṅkhāra (행위)가 나오는 것도 이상합니다. 그래서 삼매를 얻기 위한 노력과 행위라는 개념으로 보았습니다.
ati :① adv. 極~. ② pref. 過頭, 過於, 超(出)過~; 極~; 很, 頗, up to, over, gone beyond, excess
līna : [pp. of līyati] shrunk; shy; reserved, 退縮の, 下劣の, 愛着せる
līyati : [li + ya] shrinks; withers; clings to
paggahita: [pp. of paggaṇhāti] held up; stretch out, 已伸出的, 已策勵
paggaṇhāti : [pa + gah + ṇhā] holds up; takes up; supports; favours; stretches forth, 伸出(stretch forth, hold out), 攝受, 策勵(努力盡力, exert oneself)
gaṇhāti : [gah + ṇhā] takes; holds of; seizes
saṅkhitta: [pp. of saṅkhipati] contracted; abridged; shortened; folded, ① 簡略の, 略
khipati : [khip + a] casts; throws out; sneezes, 投擲, 捨棄, 使混亂
vikkhitta: [pp. of vikkhipati] upset; perplexed, 混乱せる, 散乱せる
각묵 스님
그는 ‘앞에 처럼 뒤에도 뒤에 처럼 앞에도,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도, 밤에 처럼 낮에도 낮에 처럼 밤에도’라고 하면서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가 되어 머문다. 이와 같이 그는 열려있는 마음과 방해받지 않은 마음으로 마음을 밝게 만든다.”
Pacchāpuresaññī ca viharati – 원인(전)과 결과(후)를 인식하며 머문다.
yathā pure tathā pacchā, 이 원인이 저 결과이고
yathā pacchā tathā pure; 이 결과가 저 원인이다
yathā adho tathā uddhaṃ, 이 아래가 저 위이고
yathā uddhaṃ tathā adho; 이 위가 저 아래이다
yathā divā tathā rattiṃ 이 낮이 저 밤이며
yathā rattiṃ tathā divā. 이 밤이 저 낮이다.
Iti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열린 마음으로 장애를 벗어나 함께 빛으로 향하는 마음으로 수행한다.
우암의 번역
그는 원인(전)과 결과(후)를 인식하며 머문다.
이 원인이 저 결과이고, 이 결과가 저 원인이다.
이 아래가 저 위이고, 이 위가 저 아래이다. (이 놓지 못함이 저 놓음이 되고, 이 놓음이 저 놓지 못함이 된다.)
이 낮(밝음)이 저 밤(어두움)이며 이 밤이 저 낮이다.
열린 마음으로 장애를 벗어나 함께 빛으로 향하는 마음으로 수행한다.
adho : [ind.] under; below 下, 놓지 못함 (a+dha; 放)
uddhaṃ : [adv.] high up; above; ahead; hence; zenith, 上に, 後に, 高く, 上方に, 놓음을 일으킴. (ud + dha)
diva : [m.] heaven, By day, 在白天, 日, 昼
ratti : [f.] night
vivaṭa: [pp. of vivarati] opened; laid bare; unveiled; made clear, 開いた, 蔽いなき
apariyonaddha: [na+pariyonaddha]
pariyonaddha : [pp. of pariyonandhati] tied down; enveloped; covered up, 已被覆蓋的, 已被包圍的
pariyonāha : [m.] covering; enveloping
sappabhāsa:a. [sa-pabhāsa] 有光輝的, 美麗的 함께 빛으로 향하다란 뜻?
5. 각묵스님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나치게 느슨한 열의(의욕)인가?
비구들이여, 게으름과 함께하고 게으름과 결합된 열의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지나치게 느슨한 열의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atilīno chando? Yo, bhikkhave, chando kosajjasahagato kosajjasampayuttoayaṃ vuccati, bhikkhave, atilīno chando.
우암 번역
비구들이여, 무엇이 너무 축소된 열의인가?
열의가 너무 안이한 (현생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에만 끌리고 관계된 것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축소된 열의이다.
kosajjasahagata: [kosajja+sahagata]
kosajja : [nt.] idleness; indolence
kusīta : [adj.] indolent; lazy, 懈怠的, 怠惰的
kosa : [m.] store-room; treasury; a sheath; a cocoon; a measure of length
kosajja란 오늘의 보물창고란 개념일 수도 있다. 즉 현생만 관심 있게 보는 것!
sahagata : [adj.] connected or endowed with, 倶行の, 倶なる, 함께 가는
saha : [conjunctive particle] with; together; accompanied by. (adj.), enduring
이번 생만 있다고 보는 것이 게으름을 일으킨다? (풀어야 될 일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각묵스님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나치게 팽팽한 열의인가?
비구들이여, 들뜸과 함께하고 들뜸과 결합된 열의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지나치게 팽팽한 열의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atippaggahito chando? Yo, bhikkhave, chando uddhaccasahagato uddhaccasampayuttoayaṃ vuccati, bhikkhave, atippaggahito chando.
우암 번역
비구들이여, 무엇이 너무 확대된 열의인가?
열의가 놓는 것을 일으키는(들뜸; 전생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에만 끌리고 관계된 것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확대된 열의이다.
들뜸이란 놓아야 하는 대상이 있을 때 나타난다.
uddhacca : [nt.] restlessness, distraction; flurry; haughtiness, 掉舉
uddha : [adj.] upper; upward, 上, 後, 高, 上方
sampayutta : [adj.] associated; connected, 相応せる, 相応
payutta : [pp. of payuñjati] harnessed; employed; applied, 1. yoked
payuñjati : [pa + yuj + ṃ-a] harnesses; employs; applies, yoke, employ
yuñjati : [yuj + ṃ - a] joins with; engages in; endeavours
vuccati : [vac + ya] to be said or called
uddha란 위로 있었던 일이나 전생의 일이란 말도 된다???
각묵 스님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안으로 수축된 열의인가?
비구들이여, 해태와 혼침과 함께하고 해태와 혼침과 결합된 열의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안으로 수축된 열의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ajjhattaṃ saṅkhitto chando? Yo, bhikkhave, chando thinamiddhasahagato thinamiddhasampayuttoayaṃ vuccati, bhikkhave, ajjhattaṃ saṅkhitto chando.
우암 번역
비구들이여, 무엇이 내적으로 (오늘의 나의 일로) 국한된 열의인가?
열의만 있고 (원인을) 알지 못하고 (혼침) 무기력한 (해태) 것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적으로 (오늘의 나의 일로) 국한된 열의이다.
thīna : [nt.] unwieldliness; impalpability, 惛沈, 沈欝, 알기 어려움
middha : [nt.] torpor (무기력); drowsiness, 眠, 睡眠
thinamiddha 알지 못하고 무기력해져 있는 것!
알지도 못하고 무기력한 열의를 내적으로 수축되어 있다고 한다.
각묵스님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밖으로 흩어진 열의인가?
비구들이여, 밖으로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대해서 계속해서 흩어지고 방해받는 열의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밖으로 흩어진 열의라 한다.”
Katamo ca, bhikkhave, bahiddhā vikkhitto chando? Yo, bhikkhave, chando bahiddhā pañca kāmaguṇe ārabbha anuvikkhitto anuvisaṭoayaṃ vuccati, bhikkhave, bahiddhā vikkhitto chando.
우암 번역
비구들이여, 무엇이 외적으로 혼란스러운 열의인가?
열의가 전생(밖)의 다섯 감각적인 욕망과 관련해서 그걸 따라서 혼란스럽고 그걸 따라서 퍼져나가는 것을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외적으로 (전생의 일로) 혼란스러운 열의이다.
ārabbha : [ind.] beginning with; referring to; about, concerning
vikkhitta: [pp. of vikkhipati] upset; perplexed 혼란스럽고
visaṭa , (pp. of visarati) spread; diffused, 広布せる, 広き, 拡がる
6. 각묵 스님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비구가 ‘앞에처럼 뒤에도 뒤에처럼 앞에도’라고 하면서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가 되어 머무는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잘 파악하고 잘 마음에 잡도리하고 잘 호지하고 통찰지로 잘 꿰뚫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가 ‘앞에 처럼 뒤에도 뒤에 처럼 앞에도’라고 하면서 앞과 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자가 되어 머무는 것이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pacchāpuresaññī ca viharati—
yathā pure tathā pacchā, yathā pacchā tathā pure?
Idha, bhikkhave, bhikkhuno pacchāpuresaññā suggahitā hoti sumanasikatā sūpadhāritā suppaṭividdhā paññāya.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pacchāpuresaññī ca viharati—
yathā pure tathā pacchā, yathā pacchā tathā pure.
우암 번역
비구여 비구가 원인과 결과를 알고 머무른다는 것 즉 앞일이 뒷일이고 뒷일이 앞일이 되는 것이란?
비구여, 비구는 원인과 결과를 잘 인식하여 잡는다. 즉 잘 주의 기울이고, 잘 이해하고, 잘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비구여, 비구는 원인과 결과를 잘 인식하는 자로 머문다. 저 앞일이 이 뒤의 일이고 이 뒤의 일이 저 앞의 일이라고 하면서…
gahita : [pp. of gaṇhāti] taken; seized; grasped. (nt.), grip
padhārita in meaning of “considered, understood”
dhārita : [pp. of dhāreti] borne; held; worn
paṭividdha : [pp. of paṭivijjhati] penetrated; comprehended
7. 각묵 스님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비구가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도’라고 하면서 머무는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빨,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장간막, 위,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피부의] 기름기, 침, 콧물, 관절활액, 오줌 등이 있다.’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가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에도’라고 하면서 머무는 것이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yathā adho tathā uddhaṃ, yathā uddhaṃ tathā adho viharati?
Idha, bhikkhave, bhikkhu imameva kāyaṃ uddhaṃ pādatalā adho kesamatthakā tacapariyantaṃ pūraṃ nānappakārassa asucino paccavekkhati: ‘atthi imasmiṃ kāye kesā lomā nakhā dantā taco maṃsaṃ nhāru aṭṭhi aṭṭhimiñjaṃ vakkaṃ hadayaṃ yakanaṃ kilomakaṃ pihakaṃ papphāsaṃ antaṃ antaguṇaṃ udariyaṃ karīsaṃ pittaṃ semhaṃ pubbo lohitaṃ sedo medo assu vasā kheḷo siṅghāṇikā lasikā muttan’ti.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yathā adho tathā uddhaṃ, yathā uddhaṃ tathā adho viharati.
비구들이여, 무엇이 비구가 이 아래가 저 위이고, 이 위가 저 아래라 하면서 머무는 것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몸을 위로 즉 발바닥 아래로부터 머리카락까지 피부를 경계로 하는 모든 각각의 종류의 부정한 것들을 관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빨,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늑막, 지라, 허파, 창자, 장간막, 위,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피부의] 기름기, 침, 콧물, 관절활액, 오줌 등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가 이 아래가 저 위이고, 이 위가 저 아래라 하면서 머무는 것이다.
pādatala : [nt.] the sole of the foot, 脚底(각저)
tala : [nt.] a flat surface; level ground; a base; a flat roof; a stage; the blade of a weapon; the palm or sole, 平面(flat surface); 手掌, 手掌的平面
kesamatthaka [kesa+matthaka]
kesa : [m.] hair of the head
matthaka : [m.] the head; top; summit
tacapariyanta [taca+pariyanta]
taca : [m.] skin; bark; hide, 皮, 皮膚, 深皮, 樹皮, 皮材. -gandha 樹皮香
pariyanta : [m.] the end; limit; climax; border
Pūra ,(adj.) [cp. Class. Sk. pūra; fr. pṛ, see pūreti] full; full of, 이전, 도시도 된다.
pakāra: [m.] mode; method; manner; way. 種類, 品類, 方法, 準備
asuci: [m.] dirt; excrement; dung; semen. (adj.) impure; unclean, 不淨的
suci: [adj.] pure; clean. (nt.), goodness; a pure thing
paccavekkhati : [pati + ava + ikkh + a] considers; reviews; contemplates
avekkhati : [ava-ikkhati, BSk. avīkṣate] 觀察, 見
ikkhati : [ikkh +a] looks at, 看着
왜 부정관을 아래를 위처럼 위를 아래처럼이라고 하셨을까? 아래 위를 신체의 각 부위로 인식할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이런 신체 장기들을 놓아야(dha) 할 대상에 대한 가르침으로 보는 것은 어떤가? adha (아래) 및 uddha (위)란 dha(放 놓다)에 대한 가르침이란 말이다. 놓지 않을 것이냐 아니면 놓는 것을 일으킬 것이냐의 문제란 말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서 부정관이 나타나는 이유도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부정관이란 움켜쥐려는 것에 대해 놓여나라는 가르침이다. 움켜 쥐려는 대상이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는 방법인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adha (아래; 내려 놓지 못함) 및 uddha (위; 내려 놓음을 일으킴)의 문제이기 때문에 위와 아래라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은 아닐까?
8. 각묵스님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비구가 ‘밤에처럼 낮에도 낮에처럼 밤에도’라고 하면서 머무는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을 통해서 낮에 열의에 바탕을 둔 삼매와 그 의도적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성취수단을 닦았던 그대로 그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을 통해서 밤에도 열의에 바탕을 둔 삼매와 그 의도적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성취수단을 닦는다. 그는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을 통해서 밤에 열의에 바탕을 둔 삼매와 그 의도적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성취수단을 닦았던 그대로 그 각각의 성질들이나 특징들이나 표상들을 통해서 낮에도 열의에 바탕을 둔 삼매와 그 의도적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성취수단을 닦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가 ‘밤에처럼 낮에도 낮에처럼 밤에도’라고 하면서 머무는 것이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yathā divā tathā rattiṃ, yathā rattiṃ tathā divā viharati?
Idha, bhikkhave, bhikkhu
yehi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divā chand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so tehi ākārehi tehi liṅgehi tehi nimittehi rattiṃ chand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yehi vā pana ākārehi yehi liṅgehi yehi nimittehi rattiṃ chand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so tehi ākārehi tehi liṅgehi tehi nimittehi divā chandasamādhip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aṃ iddhipādaṃ bhāveti.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yathā divā tathā rattiṃ, yathā rattiṃ tathā divā viharati.
ākāra, (m.), manner; condition; state; appearance. 行相, 相, 相貌, 様相
liṅga: [nt.] sign; mark; attribute; feature; the generative organ, 相, 相形, 根, 性, 徴標, 標相, 特相
yehi ,关系代名词 ya(who,what,which)
tehi ,人称代名词第三人称(或为指示代名词)ta(he / it/ she;that远称:彼)
밤과 낮에 대한 가르침은 일관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읽힌다. ākāra, liṅga, nimitta에 대해서 낮에 본 것을 밤에도 그렇게 보고 밤에 본 것을 낮에도 그렇게 본다는 것이다. 이는 앞서 부정관에 대해 그 보는 시각의 유지라고 판단된다. 즉 부정관은 어떤 생각을 일으킨 것이라면 그 부정관을 밤 낮으로 유지하심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밤 낮이란 시간적인 개념도 될 수 있지만 또한 밝고 어두움을 뜻할 수도 있다.
9.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열려 있는 마음과 방해받지 않은 마음으로 마음을 밝게 만드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광명의 인식[光明想]을 잘 파악하고 대낮의 인식을 확고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열려 있는 마음과 방해받지 않은 마음으로 마음을 밝게 만든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Idha, bhikkhave, bhikkhuno ālokasaññā suggahitā hoti divāsaññā svādhiṭṭhitā.
Evaṃ kho, bhikkhave, bhikkhu vivaṭena cetasā apariyonaddhena sappabhāsaṃ cittaṃ bhāveti.
이 가르침에서 광명상에 대한 개념이 정립될 수 있다. 광명상이란 명지에서 드러난 생각(인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명지(vijja)에서 드러난 모습은 세속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aloka 즉 loka가 아닌 이란 의미가 되고 그래서 divāsaññā 즉 낮의 인식이 되는 것이다. 수행 도중 빛을 보는 것이 광명상이 아닌 듯하다. 만약 수행 도중 빛이 보인다면 그건 saññā가 아니라 nimmita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