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윤회란 무엇일까?

우암(雨庵) 2015. 2. 21. 11:59

윤회란

한 생각이 일어났을 때 법륜이 돌아가는 이치가 아닌가 합니다.

 

즉 우리가 나를 " '내'가 겪은 인생 경험의 오온"으로 착각하는 생각을 하면

그 생각과 그 생각이 일으킨 행동(sankhara)에 따라서

나는 그러한 생각과 행동에 걸맞는 세상에 그 과보로서 태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천상에 걸맞는 생각과 행동을 하였다면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천상의 존재도 윤회의 굴레는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복이 다하면 다시 육도를 떠돌게 됩니다.

또 다른 예로 뭔가를 하고 싶은 내가 있는데 이때 감각적 즐거움이나 화를 제어 못한다면

결국은 축생이나 지옥에 태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축생이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의 비극은

그 굴레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윤회의 구체적인 내용을 설해 주신 것이 M120 형성의 생겨남에 대한 경(Sa?kh?rarupapattisutta) 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처음에 이 경을 접했을 때는 이 경을 참 재미 없게 읽었었는데,^^

그 이유는 '뭐 이런 말씀을 다해 주시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열반을 말씀해 주시다가 말고 왜 좋은 존재로 태어나는 이야기를 해 주시지?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재가 신자들 좋은 곳에 태어나라는 말씀이신가?'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그 내용은

우리가 어떻게 윤회하는지를 자세히 보여주시는 경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이해가 있고 나자, 제 지금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되는 계기가 되더군요.

 

일단 경전을 소개드리기 전에 제목의 번역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전재성 박사 번역은 직관적이지 않아서 잘 이해가 안되더군요.^^

patti란 얻는다는 뜻이니 rupapatti는 물질을 얻는 것이고

저는 rupapatti가 Sa?kh?ra를 수식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물질을 획득하는 Sa?kh?ra에 대한 경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저는 Pali어 문법에 문외한입니다. 그저 경의 내용에 걸맞는 제목을 찾다보니

물질을 획득하는 행위에 대한 경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patti : obtaining, acquiring, getting, entering into 得達, 獲得, 利得

 

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M120 형성의 생겨남에 대한 경 (Sa?kh?rarupapattisutta)

 

내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부유한 왕족)의 일족으로 태어났으면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마음을 정하고(citta? dahati) 그것에 마음을 집중하고(citta? adhi??h?ti) 그것에 마음을 계발한다(citta? bh?veti).

그의 소망과 계발은 이와 같이 닦여지고 이와 같이 익혀져서 그곳에 태어남으로 이끈다.

이것이 그곳에 다시 태어남으로 이끄는 길이고 방도이다.

 

Tassa te sa?kh?r? ca vih?r? ca eva? bh?vit? eva? bahul?kat? tatrupapattiy? sa?vattanti. Aya?, bhikkhave, maggo aya? pa?ipad?tatrupapattiy? sa?vattati.

 

Bhikkhus, the bhikkhu is endowed with faith, virtues, learning, benevolence and wisdom. It occurs to the bhikkhu, O! I should be born with(the high warriors) at the breakup of the body, after death. He bears it in the mind, directs thoughts to it, develops that thought. Those intentions and that abiding, developed and made much, conduces to be born there. This is the path and method to be born there.

 

부유한 왕족 등 원하는 존재의 형태만 바뀔 뿐 계속 동일한 내용이 '모든 존재'에 대해 반복됩니다.

 

이 경이 뜻하는 바란,

이미 앞서 설명드린대로

홀연히 한 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을 따라서 행동(sankhara)이 일어나서

나는 그러한 생각과 행동에 걸맞는 세상에 그 과보로서 태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즉 한 생각의 파워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의도했고 혹은 의도하지 않았고와 무관하게, 한 생각을 일으킨다는 것이

윤회의 원동력이란 것입니다.

 

생각이 왜 윤회의 원동력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현상은 우주의 법칙으로 존재하며

그 게임을 할것이냐 말것이냐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존재의 게임은 그 결과가 언제나 괴로움이라는 것입니다.

괴로움인 이유는 존재의 기반인 세상이란 것이 항상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상정한 어떤 존재가

세상이서 '행복'이라 생각되는 것을 추구하는 행동을 하지만

결국 그 대상은 변화해서

내가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괴롭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게임에서 벗어나 괴로움, 불만족스러움을 여의려면

'나'라는 혹은 존재라는 생각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의 불을 끄는 것입니다.

 

세존께서

나라는 생각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알려주신 것이 소위 '무아의 상태'가 아닐까요?

 

무아가 되면 나라는 존재의 흔적과 자취가 없어져서 무위가 되며

나라는 생각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즉 '생각이 끊어졌으므로 이제는 더 이상 윤회하지 않게 된다.'

는 말씀이 아닐까요?

 

예전에 저는 일체유심조를

'우리가 느끼는 느낌(괴로움)을 발생시키고 소멸시키는 기준이 한 생각에 있다'는 가르침으로 보았지만

위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결국 윤회란 것은 모두 문득 일어난 한 생각에서 기인한다는 말이 되겠네요.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해 본다면

생각이란 것이 매우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존재의 기반이라는 것입니다.

한 생각을 일으키고, 그 생각에 따라서 신구의로 행동하고, 그래서 과보로 윤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환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세존께서 알려주신 팔정도로 생각의 불을 끄면

내 생각의 세계를 알게되고

다른 이의 생각의 세계도 알게되어서

생각의 세계인 번뇌를 벗어나게 된다는 말씀이 아닐까요?

 

윤회란 한 생각으로 일어난 '나'이며
그 '나'는 한 생각 멈추면 사라진다.

 

생야 일편부운기 사야 일편부운멸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