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의성신(意成身) - 마음으로 만든 몸???

우암(雨庵) 2017. 5. 3. 23:47

우암이 D2. 사문과경(沙門果經. Samannaphala sutta)을 읽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구절이 있어서 새롭게 번역을 해 보았습니다.


바로 마음으로 만든 몸(意成身 manomayaṃ kāyaṃ)이란 번역이었습니다.

우암은 이 구절에 대해서 기존 번역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내 수준이 안되니 제껴버리자!"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인연이 닿아 새롭게 사문과경을 읽다가

다시 의성신 구절을 접하고는 한번 빨리어를 직접 번역을 해 보고자 마음을 냈고

그 결과 기존 번역과는 완전히 다른 번역이 나왔습니다.


의성신이란 별 의미가 아니며 '몸을 나라고 본 것'입니다.

마노(意근)가 나라고 생각한 것이 바로 이 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내 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만약 죽는다면 이 몸은 썪어버리고 마니까요. 그렇지만 나라는 것은 계속 있어왔으니까요.

그래서 마노가 환(幻想 maya)으로, 혹은 착각해서 '이게 나다.'라고 생각한 게 이 몸이란 의미입니다.

즉 의성신이란 별게 아니라 '이 몸을 나라고 생각한 것' 혹은 유신견( sakkāya-diṭṭhi)입니다.

오온이란 색수상행식의 쌓여있음입니다.

오온이란 물질, 느낌, 판단 기준, 행동, 판단의 총 집합체입니다.

그리고 우린 이 오온을 나라고 보고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은 식(識 viññāṇa)이 경험한 과거 전생 및 현생의 모든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암이 이 경전 구절을 중요하다고 본 이유는 업장에서 풀려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다는 점입니다.

부동(不動; āneñja)의 상태에 들어가면 과거 전생의 업장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는다고 부처님께서는 상세히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업장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에도 관심이 없고 모든 것에 만족한 상태가 되어서 (행복한 상태) 좌선을 할 때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게 우암이 이해한 부동입니다.


우암 번역은 기존 번역과 너무나 다른데, 우암 번역의 정당성은 뒤에 나타나는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확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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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암의 번역입니다.


85.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어서 마음이 완전히 청정해지고 완전히 맑아지면 마음이 지말(세간의 일)로 가지 않고 (육처의) 오염으로 가는 것에서 분리되므로 업이 존재에 나쁘다는 것을 알고 머물러 (지금의 나에게로만 향하는 것에 대해) 부동(不動; āneñja)이 성취되므로 마노가 만든 몸이 나라는 자만이 극복되고(유신견 sakkāya-diṭṭhi의 극복) 마노가 만든 마음도 제거되는 방향으로 가서 개념(nāma 名 개념)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이 몸이 다른 몸이라 하던(오온이 나라고 하던) ‘나’라는 빚(부채)을 극복하고, 형상 즉 마노가 만든 것이며, 모든 사건의 업연(sabbaṅga) 및 분리된 하나의 업연(paccaṅgi)은 무해한 요소(indriya)가 되게 된다.


86. 비유하자면 대왕이시여 어떤 사람이 나라는 태어난 자(muñjamhā)와 그 관찰자(īsika)를 구분하여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태어난 자이고 이것은 관찰자이다. 나라는 태어난 자는 따라서 관찰자에게서 뽑혀져 나왔다.


비유하자면 대왕이시여, 어떤 사람이 ‘나 아닌 것(asi)’과 ‘나라는 것(kosi)’을 구분하여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 아닌 것이고, 이것은 나이다. ‘나 아닌 자’는 따라서 나라는 것에게서 뽑혀져 나왔다.


비유하자면 대왕이시여, 어떤 사람이 ‘나라는 것(ahi)’에서 ‘괴롭히는 것(다시 태어나는 것)(karaṇḍ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이고, 이것은 괴롭히는 것(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괴롭히는 것(다시 태어나는 것)은 따라서 나라는 것에게서 뽑혀져 나왔다.


대왕이시여,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어서 마음이 완전히 청정해지고 완전히 맑아지면 마음이 지말(세간의 일)로 가지 않고 (육처의) 오염으로 가는 것에서 분리되므로 업이 존재에 나쁘다는 것을 알고 머물러 (지금의 나에게로만 향하는 것에 대해) 부동이 성취되므로 마노가 만든 몸이 나라는 자만이 극복되고(유신견 sakkāya-diṭṭhi의 극복) 마노가 만든 마음도 제거되는 방향으로 가서 개념(nāma 名 개념)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이 몸이 다른 몸이라 하던(오온이 나라고 하던) ‘나’라는 빚(부채)을 극복하고, 형상(색 rupa) 즉 마노가 만든 것이며, 모든 사건의 업연(sabbaṅga) 및 분리된 하나의 업연(paccaṅgi)은 무해한 요소(indriya)가 되게 된다.


대왕이여, 이것 역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이니, 전생을 떠나고(ehi),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을 떠나고, 출가생활의 결실을 떠나 계교하는 것을 극복하여 건너게 하는 것이며 도피안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각묵스님 번역


85.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형상을 가지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다른 몸을 만들어 냅니다."


86. "대왕이여, 예를 들면 사람이 문자 풀로부터 갈대를 골라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것은 문자 풀이고 이것은 갈대이다. 문자 풀과 갈대는 다르다. 문자 풀로부터 갈대는 제거되었다.'라고.


대왕이여, 다시 예를 들면 사람이 칼을 칼집에서 끄집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칼과 칼집은 다르다. 칼집으로부터 칼은 끄집어내졌다."라고.


대왕이여, 다시 예를 들면사람이 뱀을 개미집으로부터 끄집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것은 뱀이고 이것은 개미집이다. 뱀과 개미집은 다르다. 개미집으로부터 뱀은 끄집어내졌다.'라고.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형상을 가지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다른 몸을 만들어 냅니다.

대왕이여, 이것 역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이니 앞에서 설명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생활의 결실들보다 더 뛰어나고 수승한 것입니다."


빨리어 원문입니다.


85. So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manomayaṃ kāyaṃ abhinimmā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So imamhā kāyā aññaṃ kāyaṃ abhinimmināti rūpiṃ manomayaṃ sabbaṅgapaccaṅgiṃ ahīnindriyaṃ.


86. Seyyathāpi, mahārāja, puriso muñjamhā īsikaṃ pavāheyya. Tassa evamassa: ‘ayaṃ muñjo, ayaṃ īsikā, añño muñjo, aññā īsikā, muñjamhā tveva īsikā pavāḷhā’ti.


Seyyathā vā pana, mahārāja, puriso asiṃ kosiyā pavāheyya. Tassa evamassa: ‘ayaṃ asi, ayaṃ kosi, añño asi, aññā kosi, kosiyā tveva asi pavāḷho’ti.


Seyyathā vā pana, mahārāja, puriso ahiṃ karaṇḍā uddhareyya. Tassa evamassa: ‘ayaṃ ahi, ayaṃ karaṇḍo. Añño ahi, añño karaṇḍo, karaṇḍā tveva ahi ubbhato’ti.


Evameva kho, mahārāja, bhikkhu evaṃ samāhite citte parisuddhe pariyodāte anaṅgaṇe vigatūpakkilese mudubhūte kammaniye ṭhite āneñjappatte manomayaṃ kāyaṃ abhinimmān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So imamhā kāyā aññaṃ kāyaṃ abhinimmināti rūpiṃ manomayaṃ sabbaṅgapaccaṅgiṃ ahīnindriyaṃ.


Idampi kho, mahārāja, sandiṭṭhikaṃ sāmaññaphalaṃ purimehi sandiṭṭhikehi sāmaññaphalehi abhikkantatarañca paṇītatarañ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