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 내려놓기- 사무량심
방하착(放下着)
종용록(從容錄) 제57칙 엄양의 한 물건(嚴陽一物)에
조주(趙州 779-897)스님과 엄양존자(嚴陽尊者) 간의 대화가 다음과 같이 나온다고 합니다.
趙州因嚴陽尊者問 一物不將來時如何 師云放下着 嚴云 一物不將來 放下箇甚麽 師云 伊麽則擔取去 尊者大悟
엄양존자(嚴陽尊者)가 조주(趙州)스님에게 물었다. (趙州因嚴陽尊者問)
“한 물건도 가져오지 않았다하면 어떻습니까?” (一物不將來時如何)
조주스님이 대답하기를 “내려 놓아라” (師云放下着)
이 말을 듣고 엄양존자는 “어떤 물건도 가져 오지 않았거늘 무엇을 내려놓으라는 말입니까?” (嚴云 一物不將來 放下箇甚麽)
그러자 조주스님은 “그렇다면 짊어지고 가게”라고 하였다. (師云 伊麽則擔取去)
이에 엄양존자는 크게 깨우쳤다. (尊者大悟)
放 (놓을 방), 下 (아래 하), 着 (붙을 착)
방하착이란 집착(執着)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말입니다.
우암은 착(着)을 집착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着의 의미에는 '놓다'라는 뜻도 있다니 '내려 놓고 놓아라!'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어떤 분은 着이 명령형인 放下를 강조하기 위한 어조사라고도 합니다.
복잡하게 말씀드렸지만 결론은 하나! '마음을 비우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번뇌(생각)를 멈추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번뇌를 '어떻게' 멈춰야 하느냐 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냥 "탁" 내려 놓으라! 말은 참 쉽지요?^^
그러나 우암(愚暗)같은 무명 중생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참선한다고 앉아 있으면 번뇌만 가득합니다!ㅠㅠ
그러던 중 우암이 고해(苦海)를 헤쳐나가며 부처님 공부를 하다보니
'번뇌를 내려 놓는 구체적인 방법이 사무량심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이 전에 사무량심에 대해서 한번 살펴 본 바가 있었지만
(http://blog.daum.net/jinkyungsung/28)
이번에 더 새롭게 확인한 사항이 있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무량심은 번뇌를 잠재우는 방법인 것 같습니다.
번뇌란 인생을 살아가면서 뜻한대로 세상이 살아지지 않아서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이리저리 궁리하는 모습입니다.
그 궁리의 대상은 권력, 돈, 이성... 오욕락이 되겠죠.
번뇌를 잠재우는 단계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세상을 자애(慈愛)의 마음으로 바라다 봅니다. (마치 어머니가 외아들을 생각하듯이!)
특히 번뇌를 일으키게 한 상대방을 나로 생각하여, 상대방을 이해하려 해야합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며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만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자신을 합리화 시킵니다.
내가 나에게 그러하듯이 남도 내게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허물을 가진 내가 나를 언제나 사랑하듯이
내가 그 상대방도 사랑할 수 있으므로
내가 나를 사랑하듯 상대방에게도 자애의 마음을 보내줍니다.
그리고 나서 번뇌를 일으키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일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내가 원망하는 상대방 그리고 그 일에 얽힌 나에 대해서 연민(悲)의 마음을 냅니다.
과연 나와 상대방이 모두 꼭 그렇게 행동해야 했을까?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하면서
모든 일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다 봅니다.
(연민 이전에 자애의 마음이 필요한 이유는 자애가 없으면 연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내 마음을 사로잡아 끊임없이 번뇌(생각)를 일으키는 일의 실체는 알고보면
나와 남 모두를 '사람답게' 만들어 주기 위한 일임을 알아챕니다.
이러한 이해가 혹은 믿음이 있어야 비로서
'무명에 휩쌓여서 억울한 일을 만든' 나 혹은 남의 모습에 대해서
내가 참회를 할 수도 있게되고 악역을 맡아준 상대방에 대해 감사드릴 수 있게되어
이 모든 일들에 대해(일대사인연) 기뻐하게(喜)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번뇌를 내려놓을 수 있게(捨) 됩니다.
그래서 마음이 쉴 수 있게 됩니다.
우암은 위 해석이 비교적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경전과 비교해 보니
비교적 그럴듯하게 맥락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M62 라훌라에 대한 가르침의 큰 경
사무량심(慈悲喜捨)의 명상
자애(慈)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성냄(byāpāda)이 끊어진다.
연민(悲)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적의(vihesā)가 끊어진다.
즐거움(喜)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불쾌(arati)가 끊어진다.
평정(捨)에 대한 명상을 닦으면 혐오(paṭigha)가 끊어진다.
우암은 위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번뇌를 일으키는 상대방에게 자애를 일으킴으로써 그에 대한 미워함이 사라지게 됩니다.
자애를 일으킨 마음에서 역지사지를 함으로써
(비록 일이 잘못된 것일 지라도) 그러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통해서 상대방을 해치려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더 나아가 내게 번뇌를 일으킨 그 일이
사실은 나를 공부시키는 부처님 일이라는 것을 알아채니
감사할 따름이고 두려움이 없어지고
그 일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비워지니(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니) 더 이상 번뇌를 일으킬 대상이 없습니다.
捨-upekkhā 란 '툭' 일어나버린 불만에 대해서 그 불만을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경전 원문
Mett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Mett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o byāpādo so pahīyissati. Karuṇ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Karuṇ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ā vihesā sā pahīyissati.
Mudit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Mudit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ā arati sā pahīyissati.
Upekkh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Upekkh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o paṭigho so pahīyissati.
Asubh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Asubh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o rāgo so pahīyissati.
Aniccasaññaṃ, rāhula, bhāvanaṃ bhāvehi. Aniccasaññañhi te, rāhula, bhāvanaṃ bhāvayato yo asmimāno so pahīyissati.
번역
"라훌라여, 자애의 법을 닦아라. 라훌라여, 네가 자애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악의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라훌라여, 연민의 법을 닦아라. 라훌라여, 네가 연민의 법을 닦으면 어떤 잔인함이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라훌라여, 더불어 기뻐함을 닦아라. 라훌라여, 네가 더불어 기뻐함의 법을 닦으면 어떤 싫어함이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라훌라여, 평정의 법을 닦아라. 라훌라여, 네가 평정의 법을 닦으면 어떤 적의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라훌라여, 부정하다고 인식하는[不淨想] 법을 닦아라. 라훌라여, 네가 부정하다고 인식하는 법을 닦으면 어떤 탐욕이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라훌라여, 무상을 인식하는[無常想] 법을 닦아라. 라훌라여, 네가 무상을 인식하는 수행을 닦으면 나라는 자만은 모두 제거될 것이다."
byāpāda: [m.] malevolence 瞋恚、恶意
vihesā: [f.] vexation; annoyance; injury [=vihiṃsā] 害, 悩害 恼怒,烦恼,受伤
arati:f. [a-rati] non-attachment; aversion 不楽, 不快 rati: [f.] attachment; love; liking for 楽, 喜楽
paṭigha: [m.] anger; repulsion; collision 瞋恚, 怒, 障礙, 對礙, 有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