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섭법- 부모가 자식을 대하듯 다른 사람을 대하라!
오늘 제가 다니는 선원에서 주지스님의 법문 중에 사섭법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섭법(四攝法)이란 보시, 애어, 이행, 동사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씀일까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다가 보니
우암에게 든 생각은
사섭법이란 부모가 자기 자식을 대하듯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가르침이라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경전의 내용에 따르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부심을 갖고 자식들에게 공경을 받는 이유가
바로 보시, 애어, 이행, 동사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십니다.
즉 우리가 자식에게
필요한 것을 다 해주고,
도움을 주는 자애스러운 말을 해 주고,
어떻게든 자식에게 이득이 되는 행위를 해주며,
내 일처럼 자식일을 도와주는데,
이렇게 자기 자식을 대하듯 남을 대하는 것 그것이 사섭법(四攝法)이며
이렇게 사는 것이 안락한 삶이란 것을 설해주셨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일단 사섭법이란 말 부터가 너무 어렵습니다.
섭(攝)이란 무엇일까요? 포섭 끌어 안는다란 말일까요?
攝 다스릴 섭,잡을 섭 1. 다스리다 2. 잡다 3. 가지다 4. 걷다 5. 돕다 6. 거느리다
우암은 이렇게 불경에 나오는 단어의 뜻이 어려워서 이해하기가 힘든 경우
팔리어 니까야에서 그 근본 의미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니까야에서 사섭법이 나오는 경 2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A4:32 섭수 경(Saṅgaha-sutta ), A8:24 핫타까 경2 (Dutiyahatthakasutta) 이었습니다.
먼저 섭(攝)이라고 번역한 빨리어 단어는 Saṅgaha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의미는 모으다 쌓아두다란 뜻으로 '포섭한다'라는 뜻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모으다 쌓아두다란 말은 '원인'에 해당하고 포섭한다는 것은 '결과'에 해당합니다.
saṅgaha: [m.] collecting, gathering, accumulation, 摂, 摂取, 愛護, 聚会, 結集
gaha: [m.] 1. one who catches or take possession of. 2. a planet. (nt.), house.。占有者 家, 家居
gāha, (m.), 1. seizure; grip; 2. obsession; 3. an idea; a view.。執(잡을 집), 執見
따라서 섭(saṅgaha)이란 '덕이 쌓이는 모양'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섭은 빨리어로 어떻게 나와있을까요?
보시[布施], Dāna
자애로운 말[愛語], peyyavajja
이로운 행위[利行], atthacariyā
함께 함[同事]이다. samānattatā
보시, 애어, 이행은 말 그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문제는 함께함(同事)이라고 번역한 samānattatā의 의미입니다.
우암은 빨리어 문법도 잘 모르면서 (자랑할 바는 아닙니다만...^^)
무식하게 혹은 매우 열심히 빨리어 사전을 뒤적이면서
세존께서 설하신 내용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궁리합니다.
우암은 문득 동사(同事)로 번역된 samānattatā를 대하자 무릎을 탁 쳤습니다.
모든 것(sam)을 무아의 관점(ānatta)에서 대하라는 것(tā)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즉 내것 네것을 가려서 이익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내 일 대하듯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함께함(同事)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다른 의견들이 보이더군요.
진흙 속의 연꽃님의 의견에 따르면
빠알리어 사마낫따(samānattā)에서 ‘사(sa)’는 ‘함께’를 의미하고, ‘마나(māna)’는 ‘마음’을 뜻하고 ‘앗따(attā)’는 추상명사의 어미이고, 따라서 ‘함께 하는 마음’이 된다는 뜻이랍니다.
(http://blog.daum.net/bolee591/16159478)
우암은 우암 의견이 더 그럴듯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암이 그렇게 생각한 데에는 나름 근거가 있습니다.
먼저 대림스님의 번역을 소개합니다.
저와 의견이 다른 부분을 빨간 색으로 표시했습니다.
A4:32 섭수 경(Saṅgaha-sutta)-대림스님 번역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섭수하는 행위[四攝事]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보시[布施], 자애로운 말[愛語], 이로운 행위[利行], 함께 함[同事]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에 네 가지 섭수하는 행위이다."
2. “보시, 자애로운 말, 이로운 행위, 모든 곳에서 적절하게 제법(諸法)과 함께 하는 것 -
이 세상에서 이러한 네 가지 섭수는
움직이는 바퀴의 비녀장과도 같다.
이러한 섭수들이 없다면 아들을 낳은 어머니와
아들을 양육한 아버지도 자부심과 공경 얻지 못하리.
현자들은 이러한 섭수들을 바르게 검증했기 때문에
위대함 얻게 되고 칭송받게 되리.”
우암의 번역
2. “보시, 자애로운 말, 이로운 행위, 모두 무아라는 것으로
세상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내 일 같이 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에 (덕을) 쌓음으로써 그는 즐거움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이러한 (덕의) 쌓임이 그의 것이 아니라면
어머니가 자식을 양육하며 얻는 자부심과 공경도 없으며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자들은 이러한 섭수들을 바르게 검증했기 때문에
위대함 얻게 되고 칭송받게 되리.”
Aṅguttara Nikāya 4. Cakkavagga 32. Saṅgahasutta
“Cattārimāni, bhikkhave, saṅgahavatthūni. Katamāni cattāri?
Dānaṃ, peyyavajjaṃ, atthacariyā, samānattatā—imāni kho, bhikkhave, cattāri saṅgahavatthūnīti.
Dānañca peyyavajjañca,
atthacariyā ca yā idha;
Samānattatā ca dhammesu, tattha tattha yathārahaṃ;
Ete kho saṅgahā loke,
rathassāṇīva yāyato.
Ete ca saṅgahā nāssu,
na mātā puttakāraṇā;
Labhetha mānaṃ pūjaṃ vā,
pitā vā puttakāraṇā.
Yasmā ca saṅgahā ete,
samavekkhanti paṇḍitā;
Tasmā mahattaṃ papponti,
pāsaṃsā ca bhavanti te”ti.
Samānattatā ca dhammesu, tattha tattha yathārahaṃ;
우암의 분석
모두 무아라는 것으로 세상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내 일 같이 대하는 것이다.
atthacariyā ca yā idha; 이로운 행위
Samānattatā ca dhammesu, tattha tattha yathārahaṃ; '모두 무아라는 것'으로 세상에서 벌어진 모든 일(dhammesu)을 저렇고 저런 일이 내 일 같다는(yathār+ahaṃ) 것이다.
yathā: [adv.] as; like; in relation to; according to; in whatever way; just as …の如くに, …の如し
yathārahaṃ: According to worth or station; properly, satisfactorily, correctly, appropriately, duly
2. 움직이는 바퀴의 비녀장과도 같다.
우암의 분석
그렇게 세상에 (덕을) 쌓음으로써 그는 즐거움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완전히 다른 번역~!^^)
Ete kho saṅgahā loke, 이렇게 세상에 쌓음으로
rathassāṇīva yāyato. 그는(assā) 즐거움(ratha)으로 세상을 살아간다(yāyato)
ratha: [m.] a carriage; chariot.。pleasure, joy, delight
yāyati:= yāti 行く, 駆る
yāti, (yā + a), goes on; proceeds 继续,著手进行,乘(车)(to go, go on, to proceed, to go away) 出家人
assa:Of him, his; to him, to it, etc.。
assā: see ayaṃ。 ayaṃ: [(nom. sing. of ima), m.; f.] this person
3. 이러한 섭수들이 없다면 아들을 낳은 어머니와 아들을 양육한 아버지도 자부심과 공경 얻지 못하리.
Ete ca saṅgahā nāssu, na mātā puttakāraṇā; Labhetha mānaṃ pūjaṃ vā, pitā vā puttakāraṇā.
우암의 분석
이러한 (덕의) 쌓임이 그의 것이 아니라면
어머니가 자식을 양육하며 얻는 자부심과 공경도 (덕의 쌓임이) 아니며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Ete ca saṅgahā nāssu, 이러한 쌓임이 그의 것이 아니라면
na mātā puttakāraṇā; 어머니가 자식을 양육하며
Labhetha mānaṃ pūjaṃ vā, 얻는 자부심과 공경도 (덕의 쌓임이) 아니며
pitā vā puttakāraṇā. 아버지가 자식을 양육한 것도 마찬가지다.
우암은 위 내용을 통해 비로서 동사섭의 의미를 확실히 이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식에게 자부심을 갖고 자식들에게 공경을 받는 이유가
바로 보시, 애어, 이행, 동사 때문이란 것을 세존께서 분명하게 설명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동을 남에게도 함으로써 덕을 쌓게 됨을 A8:24 핫타까 경2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십니다.
A8:24 핫타까 경2 (Dutiyahattha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알라위에서 악갈라와 탑묘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알라위의 핫타까는 오백 명의 재가 신도들에 둘러싸여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알라위의 핫타까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핫타까여, 그대의 회중은 크구나. 그런데 그대는 어떻게 이 큰 회중을 섭수하는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네 가지 섭수하는 행위[四攝事.cattari sangahavatthuni]를 설해주셨는데 저는 이것을 통해서 이 큰 회중을 섭수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사람은 보시로써 섭수해야 한다.’라고 알게 되면 저는 보시로써 그를 섭수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사람은 사랑스런 말[愛語]로써 섭수해야 한다.’라고 알게 되면 저는 사랑스런 말로써 그를 섭수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사람은 이로운 행위[利行]로써 섭수해야 한다.’라고 알게 되면 저는 이로운 행위로써 그를 섭수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 사람은 함께 함[同事]으로써 섭수해야 한다.’라고 알게 되면 저는 함께 함으로써 그를 섭수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리고 저의 집안에는 재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는 그러한 소문이 없음을 그들은 압니다.”
3. “장하고 장하구나, 핫타까여. 그것이야말로 큰 회중을 섭수하는 토대이다.
핫타까여, 과거세에 큰 회중을 섭수한 자들은 모두 이러한 네 가지 섭수하는 행위로 큰 회중을 섭수했다.
핫타까여, 미래세에 큰 회중을 섭수할 자들도 모두 이러한 네 가지 섭수하는 행위로 큰 회중을 섭수할 것이다.
핫타까여, 지금에 큰 회중을 섭수하는 자들도 모두 이러한 네 가지 섭수하는 행위로 큰 회중을 섭수한다.”
4. 세존께서는 알라위의 핫타까에게 법을 설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셨다. 그러자 알라위의 핫타까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세존께서는 알라위의 핫타까가 물러간지 오래되지 않아서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5.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알아야 한다. 무엇이 여덟인가?”
6.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믿음이 있다.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계를 잘 지킨다.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양심이 있다.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수치심이 있다.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많이 배웠다.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잘 베푼다.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통찰지가 있다.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바라는 바가 적다.
비구들이여, 알라위의 핫타까는 이러한 여덟 가지 경이롭고 놀랄만한 법을 갖추었다고 알아야 한다.”
Atha kho hatthako āḷavako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o samādapito samuttejito sampahaṃsito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āmi. Atha kho bhagavā acirapakkante hatthake āḷavake bhikkhū āmantesi: “aṭṭhahi, bhikkhave, acchariyehi abbhutehi dhammehi samannāgataṃ hatthakaṃ āḷavakaṃ dhāretha. Katamehi aṭṭhahi? Saddho, bhikkhave, hatthako āḷavako; sīlavā, bhikkhave … pe … hirīmā … ottappī … bahussuto … cāgavā … paññavā, bhikkhave, hatthako āḷavako; appiccho, bhikkhave, hatthako āḷavako. Imehi kho, bhikkhave, aṭṭhahi acchariyehi abbhutehi dhammehi samannāgataṃ hatthakaṃ āḷavakaṃ dhārethā”ti.
Ekaṃ samayaṃ bhagavā āḷaviyaṃ viharati aggāḷave cetiye. Atha kho hatthako āḷavako pañcamattehi upāsakasatehi parivut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aṃ kho hatthakaṃ āḷavakaṃ bhagavā etadavoca: “mahatī kho tyāyaṃ, hatthaka, parisā. Kathaṃ pana tvaṃ, hatthaka, imaṃ mahatiṃ parisaṃ saṅgaṇhāsī”ti? “ Yānimāni, bhante, bhagavatā desitāni cattāri saṅgahavatthūni, tehāhaṃ
imaṃ mahatiṃ parisaṃ saṅgaṇhāmi. Ahaṃ, bhante, yaṃ jānāmi: ‘ayaṃ dānena saṅgahetabbo’ti, taṃ dānena saṅgaṇhāmi; yaṃ jānāmi: ‘ayaṃ peyyavajjena saṅgahetabbo’ti, taṃ peyyavajjena saṅgaṇhāmi; yaṃ jānāmi: ‘ayaṃ atthacariyāya saṅgahetabbo’ti, taṃ atthacariyāya saṅgaṇhāmi; yaṃ jānāmi: ‘ayaṃ samānattatāya saṅgahetabbo’ti, taṃ samānattatāya saṅgaṇhāmi. Saṃvijjanti kho pana me, bhante, kule bhogā. Daliddassa kho no tathā sotabbaṃ maññantī”ti. “Sādhu sādhu, hatthaka. Yoni kho tyāyaṃ, hatthaka, mahatiṃ parisaṃ saṅgahetuṃ. Ye hi keci, hatthaka, atītamaddhānaṃ mahatiṃ parisaṃ saṅgahesuṃ, sabbe te imeheva catūhi saṅgahavatthūhi mahatiṃ parisaṃ saṅgahesuṃ. Yepi hi keci, hatthaka, anāgatamaddhānaṃ mahatiṃ parisaṃ saṅgaṇhissanti, sabbe te imeheva catūhi saṅgahavatthūhi mahatiṃ parisaṃ saṅgaṇhissanti. Yepi hi keci, hatthaka, etarahi mahatiṃ parisaṃ saṅgaṇhanti, sabbe te imeheva catūhi saṅgahavatthūhi mahatiṃ parisaṃ saṅgaṇhantī”ti.
Atha kho hatthako āḷavako bhagavatā dhammiyā kathāya sandassito samādapito samuttejito sampahaṃsito uṭṭhāyāsan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padakkhiṇaṃ katvā pakkāmi. Atha kho bhagavā acirapakkante hatthake āḷavake bhikkhū āmantesi: “aṭṭhahi, bhikkhave, acchariyehi abbhutehi dhammehi samannāgataṃ hatthakaṃ āḷavakaṃ dhāretha. Katamehi aṭṭhahi? Saddho, bhikkhave, hatthako āḷavako; sīlavā, bhikkhave … pe … hirīmā … ottappī … bahussuto … cāgavā … paññavā, bhikkhave, hatthako āḷavako; appiccho, bhikkhave, hatthako āḷavako. Imehi kho, bhikkhave, aṭṭhahi acchariyehi abbhutehi dhammehi samannāgataṃ hatthakaṃ āḷavakaṃ dhārethā”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