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아리랑 - 불교의 가르침이 아닐까?

우암(雨庵) 2021. 2. 21. 10:10

아리랑은 불교의 가르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우암에게 던져졌습니다.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려시대 한글 발음을 한문으로 옮긴 것(이두문자?)을 찾다보니 아래와 같이 나오더군요.

우암은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니 이 글의 원전은 모르겠습니다.

(조용호 박사; blog.naver.com/cyh1164/222134829002)

 

阿女郞 阿女郞 阿那裏呦

阿女郞 勾勾兒著 南無我感戴

那兒 把我立刻 告訴

告訴我 把話柄亂道!

 

그래서 우암이 인터넷을 찾아 여러 자료를 비교했더니

아리랑을 아래와 같이 번역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원을 원함은, 무원을 원함은, 무원을 원하는 것을 안다는 것이니
무원을 원함에 고개 숙여 염불하지만 쉬지 못해 감이 없다에 묶인다.
나를 버리고(집착하고) 가는 너는,
너는 누구냐?로 가는 내게는 잡기 어려운 도(亂道)라 한다."

 

그 이야길 해 보려 합니다.

우암이 불교의 노래로 본 이유는

한문으로 표시한 아리랑 가사에는 불교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제목입니다.

아리랑(我離) 나를 떠나는 사람

아라리(我難離) 나를 떠나기 어려움

물론 이 외에도 많은 다른 아리랑 표기가 있습니다.

우암이 자신의 번역에 맞는 예만을 보여드린 것이란 말입니다.^^

 

참고로 우암은 아직 아무에게도 확인 받은 바 없는 방법으로 빨리어를 번역해 보고 있습니다.

우암이 이렇게 번역을 하게 된 이유는 기존의 나까야 번역을 읽어 보면서

번역에 무엇인가 문제가 크게 있다고 느껴서

앞뒤 맥락을 맞추어 보게 되면서

어원을 파고들다 보니

많은 예를 통해서 감이 생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암은 ra를 원한다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아리랑을 ariraṁ 원함이 없게 되기를 원한다로 번역해 보았습니다.

 

아리랑을 불교와 관련 지을 수 있는 단어를 우암은 4개 있다고 봅니다.

 

勾勾兒著: 고개; (절간에서 기도할 때 불상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나무(아미타불)을 소리내어 염불하는이라는 뜻 (조용호 박사)

南無我: 나에게 귀의한다. 자등명(自燈明)

麽: 시니마(스니마; 스님아) 혹은 '너는 누구인가?' 참고; 시심마(是甚麽): 이 뭣꼬?

柄亂道: 도(道)를 말하는 노래 아닌가? 병난다로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병난다하고 하려면 病 [병 병]을 쓰지 왜 자루병자()를 썼겠는가?

柄 자루 병 1. 자루 2. 근본 3. 권세 4. 거리 5. 손잡이

또한 앞선 넘어간다(南無我感戴)의 '다'가 戴(대)로 표기되는데

그렇다면 여기에서 다른 한자인 道를 사용할 이유가 없다.

 

더 나아가 버리고로 번역한 把我立刻의 한문 내용은 '나를 잡고 세워 새긴다'는 것이니 중생의 모습이다.

把 잡을 파, 我 나 아, 立 설 립, 刻 새길 각

재미있는 점은 빨리어에서 발음이 유사하며 동일한 내용 단어가 있다는 것이다.

pariggaha: [m.] taking up; possession; acquirement; grasping; belonging; a wife 遍取, 執持, 執着, , 所有物, 財産, 발음: 파릭가하

나를 버리겠다는 것 또한 나에 대한 집착에 불과하다.^^

把話: '말하기'를 언급하는 원나라의 구어

 

위 이두문(?)을 조용호 박사님은 아래와 같이 옮겼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곡애- 나마 간다

날 바아리곡 가시- 니믄

시니이 마까서 발화병난다.

 

조용호 박사님께서 이렇게 번역하신 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랑(아래)과 일맥 상통하게 하시려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우암은 생각합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