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감각적 즐거움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우암(雨庵) 2015. 2. 21. 12:24

감각적 즐거움이란

우리의 감각 기관인 눈, 귀, 코, 혀, 몸(안이비설신)에 의해 인식되는

즐거움을 주는 색, 소리, 향기, 맛, 몸의 느낌(색성향미촉)입니다.

 

우리는 즐거운 감각적인 느낌을 추구하느라고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투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죄'라는 것도

이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 들입니다.

 

아름다운 배우자, 훌륭한 집, 맛있는 음식, 멋진 풍경, 안락하고 좋은 차, 예쁜 옷....

물론 이 감각적인 즐거움의 뿌리에는 '나'라는 자아관념이 자리잡고 있고요.

 

그런데 세존께서는 우리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과연 그것들은 인생을 걸고 추구할 만한 것인가?

세존께서는 감각적인 즐거움에 대해

'감각적 즐거움은 괴로움이 많고 근심이 많고 위험이 많다.'고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감각적 즐거움의 가치에 대해 일곱가지 비유를 들어 주십니다. (M54 뽀딸리야의 경)

 

이득이 없으며, 분쟁의 씨앗이고, 자신을 망치며, 저항할 수 없게 강력하며, 허망하고, 내것이 아니며, 위험한 것이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존께서는 선정을 통해서 즐거움이 추구되고 증장되고 계발되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선정의 즐거움은 감각적인 즐거움과 다르게 배타적이지 않습니다.

 

그 즐거움을 4가지로 설명하십니다. (M139. 평화에 대한 분석의 경)

욕망을 여읨의 즐거움 (nekkhammasukha)

멀리 여읨의 즐거움 (pavivekasukhaz)

적멸의 즐거움 (upasamasukha)

올바른 깨달음의 즐거움 (sambodhasukha)

 

upasama : [m.] calmness; appeasement ?, 寂止, 休息, 止息

sambodha ,[sa?+bodha] enlightenment, highest wisdom, awakening ?, ?

 

이것을 수행하면 더 좋은 점은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을 얻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소위 삼명이란 것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삼명을 얻으면 12연기를 보시게 되는 것 같습니다.

숙명통이란 나의 전생을 보게되는 것입니다.

천안통이란 사람들이 왜 이런 상황에 도달해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서 인간이란 존재가 무엇인지 왜 이렇게 살고있는지를 모르던 상태에서(치, 무명)

그것을 아는 상태가 되시며

따라서 인간의 행로를 이해하시니 더이상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으시게 되고 (탐의 사라짐)

그래서 배타적인 마음이 없어져서 성내는 마음이 사라지고(진의 사라짐)

결국 탐진치의 번뇌에서 벗어나시게 됩니다. (누진통)

즉 열반을 성취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선명하게 깨달음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지도자란 분들 아니 세계의 지도자란 분들

혹은 역사적으로 위대하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위인(?)들 조차도

인생에서의 의미를 감각적 즐거움에서만 찾았을 뿐

그것을 뛰어넘는 가치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식을 많이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 조차 (정치인, 변호사, 의사, 교수, 박사....)

그 전문 지식에 근거한 사회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부당하게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다가 망신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됩니다.

 

저 역시도 부처님 가르침을 이해하기 전에는 감각적 즐거움의 추구 밖엔 알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니 더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연봉, 화려한 이력에 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가 보니 어이없는 일도 당하고, 배신감도 느끼게 되고....

세존께서 세상이 괴롭다고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되더군요.

그래서 불교를 열심히 공부하다가 보니

제가 기반으로 갖고 있던 생각이 (혹은 세상에 회자되는 가치관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자는 제가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다 갖지 못하게 되자

'저건 신포도야!'라고 하면서 제 입장을 방어하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진리인 빛을 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군요.

정견을 갖게 된 것이죠.

제겐 인생의 곤란함이 오히려 제 존재의 축복이 된 경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M139. 평화에 대한 분석의 경 (Ara?avibha?gasutta)

11. 수행승들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이 있다. 다섯 가지란 어떠한 것인가?

1) 시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원하는 것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탐욕을 야기하는, 형상이 있다.

2) 청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원하는 것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탐욕을 야기하는, 소리가 있다.

3) 후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원하는 것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탐욕을 야기하는, 냄새가 있다.

4) 미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원하는 것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탐욕을 야기하는, 맛이 있다.

5) 촉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원하는 것이고 사랑스럽고 마음에 들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유발하고 탐욕을 야기하는, 감촉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이 있다.

 

12. 수행승들이여,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에 의존해서 일어나는 즐거움과 쾌락을 두고 감각적 즐거움, 추잡한 즐거움, 천한 즐거움, 세속의 즐거움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종류의 즐거움은 추구되어서는 안 되고, 증가되어서도 안 되고, 계발되어서도 안 되며, 단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13. 수행승들이여, 세상에서 어떤 수행승은

1)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나서, 사유를 갖추고 숙고를 갖추어, 멀리 여읨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으로 가득한 첫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

2) 사유와 숙고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를 뛰어넘고 숙고를 뛰어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이 가득한 두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

3) 희열이 사라진 뒤,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고 평정하게 지내고,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 평정하고 새김 있는 행복한 삶이라고 부르는 세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

4) 즐거움과 괴로움이 버려진 뒤, 만족과 불만도 사라진 뒤, 괴로움을 뛰어넘고 즐거움을 뛰어넘어, 평정하고 새김 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을 성취한다.

수행승들이여, ‘이것은 욕망을 여읨의 즐거움, 멀리 여읨의 즐거움, 적멸의 즐거움, 올바른 깨달음의 즐거움이라고 불리며, 이러한 종류의 즐거움은 추구되어야 하고 증가되어야 하고 계발되어야 하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나는 말한다.

 

14. 수행승들이여, ‘즐거움에 대한 정의를 알아야 하고 즐거움에 대한 정의를 알고 나서,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해야 한다.’라고 가르친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다.

 

 

M54 뽀딸리야의 경 (Potaliyasutta)

§20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뼈다귀의 비유를 하심. 욕망은 굶주린 개가 고기한 점 없는 뼈다귀를 씹는다. 그러나 굶주림과 허기에 지친 것을 채울 수 없다.

즉 감각적 즐거움은 아무 이득이 없다는 것이다.

 

§21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 고기덩어리 비유를 하심. 즉 고기덩어리를 물고 나르는 새가 다른 새의 공격을 받으면 고기덩어리를 놓아야 한다는 것으로 설명하심.

즉 감각적인 즐거움은 분쟁의 씨앗이며 빨리 놓아 버려야 할 것이라고 알려 주신다.

 

§22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 건초 횃불에 비유를 하심. 건초 횃불을 가지고 갈 때 건초가 다 타면 버려야 하지만 버리지 않아서 신체 부위를 태운다.

즉 감각적인 즐거움은 나를 태우기 전에 버려야 한다고 알려 주신다.

 

§23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 숯불 구덩이 비유를 하심. 불이 이글거리는 숯불 구덩이 속으로 힘센 두 사람이 붙잡아 끌고 간다.

즉 감각적인 즐거움은 그만큼 강력하다고 알려 주신다.

 

§24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 꿈으로 비유를 하심. 꿈 깨면 꿈 속의 것은 볼 수 없음.

즉 감각적인 즐거움은 그만큼 허망하다고 알려 주신다.

 

§25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 빌린 재물로 비유를 하심. 빌린 재물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주인이 찾아가면 낙심할 수 밖에 없음.

즉 감각적인 즐거움은 내 것이 아니라고 알려 주신다.

 

§26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에 대해서 과일나무에 비유를 하심. 과일을 따려고 과일 나무에 올라갔는데 밑에서 과일을 따려고 나무를 잘라버려서 신체가 망가져 고통에 시달림.

즉 감각적인 즐거움은 위험한 것이라고 알려 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