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욕(khanta)에 대해서
인욕을 한다는 것은
힘없는 자에게 참아주는 것
상대방이 화를 낼 때 분노로 대응하지 않는 것
인욕이란 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것이다.
인욕의 공덕이란
자기와 남, 둘 다에게 이익이 되며
자기와 남, 둘 다를 치유하는 것이다.
인욕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 배우지 못한 범부는 육체적으로 괴로운 느낌을 겪을 때,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그래서 이중으로 느낌을 겪는다. 즉 육체적 느낌과 정신적 느낌이다.
- 괴로운 느낌을 접하면 그것에 적의를 품는다.
- 그래서 적의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는다. (진심)
- 괴로운 느낌에 닿으면 이제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
-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면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게 된다. (탐심)
- 그러면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 그러면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게 된다. (치심)
(adukkhamasukh?ya vedan?ya avijj?nusayo, so anuseti.)
- 그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인 채로 그것을 느낀다. 괴로운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인 채로 그것을 느낀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인 채로 그것을 느낀다.
- 이러한 사람을 일러 배우지 못한 범부라고 하나니, 그는 태어남과 늙음, 죽음과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에 매여 있으며 그는 괴로움에 매여 있다고 나는 말한다.
이러한 과정을 앙굿따라 니까야에서는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
인욕을 하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기꺼워하지 않으며 (Bahuno janassa appiyo hoti aman?po)
그래서 (나와 남 모두) 분노에 가득차게 되며 (verabahulo ca hoti)
그래서 잘못이 만연하게 되며 (vajjabahulo ca)
그래서 잘못된 판단에 미혹되어 죽음을 맞게되며 (samm??ho k?la? karoti)
그 결과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k?yassa bhed? para? mara?? ap?ya? duggati? vinip?ta? niraya? upapajjati)
인욕이란 그냥 참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용서도 아니다.
용서도 일종의 참는 것이다. 용서할 일과 용서를 받을 자와 용서할 자가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인욕) 길은 열반(니르바나, 불 꺼짐)이다.
자비희사의 실천이다.
비란 과거, 현재, 미래의 삼계에서 펼쳐지는 인연을 이해하고
현재 내게 잘못하는 사람에게 그 잘못만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세세생생 그러했을 인연을 돌아봄으로서
동체대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비심이 일어나더라도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다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 만족(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비로서 평정(사; 얽힌 마음을 버림)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용서할 일과 용서를 받을 자와 용서할 자가 사라지는 것이다.
존재의 불이 꺼지는 것이다. 열반에 도달하는 것이다.
인욕이란 적의를 품지 않고 연민을 하며 불평하지 않고 만족함을 이루어서
세상의 일에 흔들림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참선을 할 때
마음이 과거, 미래로 가지 않고
또한 마음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지 않게 된다.
그래서 선정에 이르러 열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khant? parama? tapo titikkh? 인욕이 최고의 참아 내는 고행이며
nibb?na? parama? vadanti Buddh? 열반이 최고라고 부처님들께서 말씀하신다.
Dh.184=D.II,49=Vism.295
세존께서는 알려주신 바에 따르면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괴로운 느낌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으로
감각적 즐거움을 누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알고 있다고 알려 주신다.
세간의 일을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세상의 논리로 풀어버린다면,
(세상의 상식대로 해결하려 한다면; 인욕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것이며,
따라서 윤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괴로운 느낌을 접하더라도 적의를 품지 않는다.
그래서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괴로움의 틀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더 이상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는다.
(탐진치에서 풀려남)
그는 괴로움에 매어 있지 않게 된다.
인욕의 길을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은 길이라고 말한다고 알려주신다.
그러나 이는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들은 모두 윤회를 염두해 두시고 알려주신 말씀이다.
현생의 인연이 과거의 조건에서 온 것이라면
미래의 일은 현재(+과거의 일 등)가 조건이 된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 그 생각의 에너지를 끊어버리는 인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인욕하지 않는다면
그 괴로움의 굴레 속에서 쳇바퀴를 돌게 될 것이란 말씀을 해 주시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은 별로 의미가 없다.
그 어떤 일 자체를 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그 어떤 일을 꼬옥 붙잡고
시비를 따지느라 인생을 보내고 있다.
조건에 따라 일어난 것은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진다.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오온(내 경험) 조차도 이러한 조건에 따른 일어남과 사라짐이다.
무상한 것에 집착하는 것이 바로 괴로움이다!
S11:5 금언(金言)의 승리(잘 말해진 조언의 승리) 경 (Subh?sitajaya-sutta)
(시를 제가 번역해 본 내용입니다. 팔리어 원문, 영어, 전재성 박사님 번역은 맨 아래에 있습니다.)
확실히 이렇게 저렇게 상상해서
공포를 갖고 참는다고 해도
스스로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이익은
인욕보다 뛰어난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네.
진실로 용맹한 자라면
힘 없는 자에게 참아내네.
그것이 최고의 인욕이라네.
언제나 참는다네 힘 없는 자는.
힘없는 자의 힘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자의 힘이라네
진리를 수호하는 힘있는 자에게는
되돌이킴(화를 냄?)이란 없다네.
사람이 더욱 망가지는 것은
분노를 분노로 받기 때문이라네.
분노를 분노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전쟁을 제압하여 어려운 정복을 하는 것이라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
나와 남에게 이익이 되는 길은
남이 화내는 것을 알고도
그것에 마음 챙겨 고요함을 유지하는 것이라네
모두를 치료하는 길
나와 남이 치유되는 길을
사람들은 어리석다고 상상하지만
이는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네.
M92 셀라의 경 (Selasutta)
가르침의 수레바퀴 부처님 굴리셨네.
시간을 뛰어넘어 청정한 삶 설해졌네
알아야 할 것 닦아야 할 것
버려야 할 것 모두 알려 주셨네
올바로 깨달은 님 만나보기 어렵네
화살 뽑아 두려움 없으니 기쁨이 함께하네.
S36:6 화살 경(Sall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다.
2.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은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도 즐거운 느낌을 느끼며, 괴로운 느낌을 느끼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도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 그러면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 사이에는 어떤 구별이 있으며 어떤 다른 점이 있으며, 어떤 차이가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방금 말씀하신 이 뜻을 직접 밝혀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세존으로부터 듣고 비구들은 그것을 잘 호지할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이제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했다.
4.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육체적인 괴로움을 겪게 되면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결국 그는 이중으로 느낌을 겪고 있는 것이다. 즉 육체적 느낌과 정신적 느낌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화살에 꿰찔리고 연이어 두 번째 화살에 또다시 꿰찔리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 사람은 두 화살 때문에 오는 괴로움을 모두 다 겪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배우지 못한 범부는 육체적으로 괴로운 느낌을 겪을 때, 근심하고 상심하고 슬퍼하고 가슴을 치고 울부짖고 광란한다. 그래서 이중으로 느낌을 겪는다. 즉 육체적 느낌과 정신적 느낌이다.
5. “괴로운 느낌을 접하게 되면, 그는 그것에 적의를 품는다. 그처럼 괴로운 느낌에 적의를 품는 그에게는 그 괴로운 느낌에 대한 적의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게 된다. 그가 괴로운 느낌에 닿으면 이제 그는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쪽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배우지 못한 범부는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말고는 그 괴로운 느낌으로부터 벗어나는 다른 출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게 된다. 그는 그러한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처럼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게 된다.
그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인 채로 그것을 느낀다. 괴로운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인 채로 그것을 느낀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인 채로 그것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사람을 일러 배우지 못한 범부라고 하나니, 그는 태어남과 늙음, 죽음과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에 매여 있으며 그는 괴로움에 매여 있다고 나는 말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나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육체적으로 괴로운 느낌을 겪더라도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한 가지 느낌, 즉 육체적 느낌만을 경험할 뿐이며 결코 정신적 느낌은 겪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화살에 맞았지만 그 첫 번째 화살에 연이은 두 번째 화살에 맞지 않은 것과 같다. 그래서 그 사람은 하나의 화살로 인한 괴로움만을 겪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괴로운 느낌에 접하더라도 결코 근심하지 않고 상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가슴을 치지 않고 울부짖지 않고 광란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한 가지 느낌, 즉 육체적인 느낌만을 경험할 뿐이다.”
7. 괴로운 느낌에 접하더라도 그는 그것에 적의를 품지 않는다. 그처럼 괴로운 느낌에 적의를 품지 않으면 그 괴로운 느낌에 대한 적의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지 않는다. 그가 괴로운 느낌에 닿더라도 그는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쪽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말고 그 괴로운 느낌으로부터 벗어나는 다른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감각적 욕망의 즐거움을 누리지 않는 사람에게는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지 않는다. 그는 그러한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처럼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함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에게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한 무명의 잠재성향이 자리 잡지 않는다. (yo adukkhamasukh?ya vedan?ya avijj?nusayo, so n?nuseti.)
그는 즐거운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 괴로운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할 때도 매이지 않고 그것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사람을 일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라고 하나니, 그는 태어남과 늙음, 죽음과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에 매이지 않으며 그는 괴로움에 매어 있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8. “비구들이여, 이것이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간의 차이점이고, 특별한 점이고, 다른 점이다.”
9. “지혜 있는 이, 많이 배운 이[多聞],
[정신적인] 즐거운 느낌이나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 겪지 않나니,
현자와 범부 간에 능숙함의 차이가 이렇듯 크도다.
법을 터득한 이, 많이 들은 이,
이 세상과 피안의 세계를 올바로 보는 이,
기꺼운 법에 그 마음 설레지 않고
원하지 않은 것에 적의 가지지 않도다.
순(順), 역(逆)이 모두 흩어지고 꺼져서
이미 존재하지 않나니
때 없고 근심 없는 길을 알아 올바로 꿰뚫어 아는 자
존재의 피안에 도달했다고 이르나니.”
A5:215 인욕하지 못함 경1(Pa?hamaakkhantisutta)
1. “비구들이여, 인욕하지 못함에는 다섯 가지 위험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2.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증오심이 많고, 성냄이 많고, 매(昧)해서 죽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욕하지 못함에 이러한 다섯 가지 위험이 있다.”
3. “비구들이여, 인욕에 다섯 가지 이익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4.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마음에 들고, 증오심이 많지 않고, 성냄이 많지 않고, 우매한 사람으로 죽지 않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선처,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욕에 이러한 다섯 가지 이익이 있다.”
A5:216인욕하지 못함 경2(Dutiyaakkhantisutta)
1. “비구들이여, 인욕하지 못함에 다섯 가지 위험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2.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고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탐심이 많고, 후회하고, 우매한 사람으로 죽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욕하지 못함에 이러한 다섯 가지 위험이 있다.”
3. “비구들이여, 인욕에 다섯 가지 이로움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4.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마음에 들고, 탐심이 없고, 후회하지 않고, 우매한 사람으로 죽지 않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선처,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인욕에 이러한 다섯 가지 이로움이 있다.”
S11:5 금언(金言)의 승리(잘 말해진 조언의 승리) 경 시의
빨리어 원문입니다.
‘K?ma? ma??atu v? m? v?,
bhay? my?ya? titikkhati;
Sadatthaparam? atth?,
khanty? bhiyyo na vijjati.
k?ma? : [adv.] surely; certainly
ma??ati: imagines; is of opinion; deems.
tu : [ind.] however; but; yet; now; then
v? , pana : [ind.] or else, either- or
m? : [a prohibitive particle] do not. (m.) the moon
bhaya : [nt.] fear; fright, 怖, 怖畏, 恐怖
y?ya? ,?系代名? ya(who,what,which)
titikkhati : [tij + kha; ti is doubled and j is changed to k] endures; forebears
sadattha : [m.] one's own welfare, 善利, 妙義, 理想, 自己的福利
bhiyyo : [ind.] exceedingly; more; in a higher degree; repeatedly
vijjati : [vid + ya] exists; to be found
Yo have balav? santo,
dubbalassa titikkhati;
Tam?hu parama? khanti?,
nicca? khamati dubbalo.
have : [ind.] surely; indeed
santo :Being; good; wise, tranquilled calmed
dubbala: [adj.] feeble; weak
Tam?hu; tam+ahu
tama : [m.; nt.] (mano-group), darkness, ignorance.
nicca? : [adv.] constantly; always; perpetually
Abala? ta? bala? ?hu,
yassa b?labala? bala?;
Balassa dhammaguttassa,
pa?ivatt? na vijjati.
ta? :see tva? tva? :Thou ,人?代名?第二人??, 너
?hu : [plu. of ?ha.] they have said
yassa ,?系代名? ya(who,what,which)
bal?bala: bal?bala(na) [bala+abala]
bala : [nt.] strength; power; force; an army; military force.。
b?la , (adj.) young in years; ignorant; foolish. (m.) a child; a fool. b?l? (f.) a girl
gutta: [pp. of gopeti] guarded; protected; watchful
Pa?ivatta ,(nt.) [pp. of pa?ivattati] moving backwards, one who answers or contradicts 反? 반전
Tasseva tena p?piyo,
yo kuddha? pa?ikujjhati;
Kuddha? appa?ikujjhanto,
sa?g?ma? jeti dujjaya?.
tass? :tassa ta (so, tad, s?) の dat. gen, 人?代名?第三人?
tena : [ind.] on account of it; because of it
p?piyo :Worse; wicked
kuddha: [pp. of kujjhati] was angry
pa?ikujjhati : [pati + kudh + ya] is angry in return
sa?g?ma: [m.] fight; battle
jeti : [ji + e] conquers; subdues, ji , (梵ji)?【字根I.】?得(to win), 征服(to conquer)
jayati : [ji + a] conquers; surpasses
du : antithetic prefix implying badness, perverseness, and difficulty
jaya : [m.] victory; conquest j?y? , (f.) wife
Ubhinnamattha? carati,
attano ca parassa ca;
Para? sa?kupita? ?atv?,
yo sato upasammati.
ubha , (pron.), both, ?者
attha : [m.] welfare; gain; wealth; need; want; use; meaning; destruction, 義, 利益, 道理
carati : [car + a] walks or roams about; behaves; practises; performs, 走路,漫游,?止,??,?行
sa?kupita: [pp. of sa?kuppati] enraged 激怒せる
kupita : [pp. of kuppati] was angry; annoyed; offended, 怒れる, 瞋?の, 憤激の, 混?, 動?
?atv? : [abs. of j?n?ti] having known; having found out, j?n?ti の ger, 知道了,?了,??了
upasammati : [upa + sam + ya] calms; ceases; appeases, ?定,停息,安?
Ubhinna? tikicchant?na?,
attano ca parassa ca;
Jan? ma??anti b?loti,
ye dhammassa akovid?’ti.
tikicchanta: [pr.p. of tikicchati] treating medically
tikicchati : cures; treats medically 治?,?治
attano : ?自己、自己【atta我 的〔?〕和〔?〕】。
para: [adj.] other; another; foreign; alien; outsider
jana : [m.] a person; a man; the people
ma??an? , (f.), imagination; illusion 想像,幻影
b?lo :Young; ignorant, foolish
akovida: [na+kovida] not clever 不熟知,不?明的
kovida : [adj.] clever; well-versed; expert, 熟知的, 識知的
영어 번역입니다.
'It doesn't matter
whether he thinks,
"He's forbearing out of fear of me."
One's own true good
is the foremost good.
Nothing better than patience
is found.
Whoever, when strong,
is forbearing
to one who is weak:
that's the foremost patience.
The weak must constantly endure.
They call that strength
no strength at all:
whoever's strength
is the strength of a fool.
There's no reproach
for one who is strong,
guarding ? guarded by ? Dhamma.
You make things worse
when you flare up
at someone who's angry.
Whoever doesn't flare up
at someone who's angry
wins a battle
hard to win.
You live for the good of both
? your own, the other's ?
when, knowing the other's provoked,
you mindfully grow calm.
When you work the cure of both
? your own, the other's ?
those who think you a fool
know nothing of Dhamma.'
전재성 박사님번역
“나를 두려워하여 그것을 참는다고
임의로 생각하든 말든
참 사람이 최상의 이익을 성취하려면
인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네.
참으로 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힘 없는 자에게 인내하네.
그것을 최상의 인내라 부르네.
힘 있는 자는 항상 참아내네.
어리석은 자의 힘은
힘없는 자의 힘이네.
진리를 수호하는 힘있는 자에게
대적할 사람은 없다네.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하면,
그 때문에 그는 더욱 악해지리.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하지 않는 것이
이기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네.
다른 사람이 화내는 것을 알고
새김을 확립하여 고요히 하면
자신을 위하고 또 남을 위하고
둘 다의 이익을 위한 것이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를 치료하는 사람을
가르침을 모르는 자들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