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38 갈애 부숨에 대한 큰 경에 대한 하나의 이해
갈애 부숨에 대한 큰 경에서 어부의 아들 싸띠가 갖고 있었던 잘못된 견해는 식(viññāṇa)에 대한 견해였습니다. 식이 유전하고 윤회한다는 말을 합니다. 저는 그 말 자체가 틀렸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런 이해는 만법유식이니 일체 유심조와 같은 말일 수 있다고 봅니다. 부처님께서도 이 말을 들으시고 아예 처음부터 틀렸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처님께서는 이 싸띠의 말을 들으시고는 싸띠에게 다시 묻습니다. "싸띠여, 어떠한 것이 그 의식인가?" 그러자 싸띠는 “세존이시여, 그것은 말하고 느끼고 여기저기 선행과 악행의 결과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 대답을 들으시고는 비로서 세존께서는 "이 어리석은 자여, 누구에게 내가 그런 가르침을 설했다는 것인가?”라면서 힐난을 하십니다. 싸띠의 대답을 살펴본다면 그는 식을 인생의 체험자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체험자가 유전하고 윤회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식을 오온인 색수상행식의 주인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는 직접적인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브라만교의 변치않는 자아인 atman을 상정하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혹은 현대의 영혼과 같은 개념입니다. 즉 식을 변치않는 자아라고 상정한 것입니다. 따라서 싸띠가 주장한 '식이 유전하고 윤회한다는 말'은 결국 자아인 atta가 따로 있어서 유전하고 윤회한다는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제가 이해한 바로는
식이란 조건지워진 것으로 우리가 인생 경험 결과를 생각하고 판단해서 쌓아 놓은 것이란 말입니다.
식이 있어 인생을 경험한 것이 아니라 인생 경험이 쌓여서 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식을 기준 삼아 그 식을 가지고 또 다른 중생의 삶을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유전하고 윤회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렇게 된데에는 우리가 atta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을 나의 것, 나, 나의 자아라고 생각을 내기 때문에 윤회한다는 것입니다.
즉 먼저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서 그래서 내가 나타나고 유전하고 윤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생각 이전에는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유전하고 윤회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마도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법성자리의 능력일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싸띠의 의견은 앞과 뒤가 뒤집힌 전도된 견해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나의 것, 나, 나의 자아라고 생각을 내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의 것, 나, 나의 자아라는 식 때문에 우리는 유전하고 윤회한다는 말입니다.
싸띠의 견해대로 한다면 식이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라는 한 생각을 내니
그 식이 우리 인생의 주인공이되고
그래서 그 주인공 식이 유전하고 윤회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대로라면 그 식도 조건지워진 것이며
그 조건을 내려 놓을 때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말씀을 하신 겁니다.
식은 종속변수이지 독립변수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식을 독립변수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착각때문에 식이 독립변수인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제 의견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식이 유전하고 윤회합니다.
그런데 그 식은 조건지워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 조건을 내려 놓을 때 우리는 윤회에서 벗어납니다.
그 조건을 내려놓는 방법은 사념처 수행입니다.
경계에 부딪쳐 식이 과거의 습이란 모습으로 나타날 때
문득 알아채서 내려 놓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