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이해하라!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이해하라!
갈애 부숨의 큰 경을 처음 공부할 때
'참 이상한 말씀이다. 번역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하던 부분이 있었다.
전재성 박사님 번역으로 §56이었는데
공부가 덜 된 제게는 그 맥락을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제서야 제가 이해한 바는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이해하라!'는 말씀이시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56.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스승은 우리에게 존경받고 있다. 스승에 대하여 존경하므로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세존이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수행자가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말한다. 다른 수행자도 이와 같이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세존이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다른 스승을 인정할 수 있는가?”
“세존이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배우지 못한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의 터부나 떠들썩한 논쟁이나 복점을 진실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세존이시여, 그럴 수 없습니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그대들이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깨달은 것만을 말하는 것이 옳은가?”
“세존이시여, 그렇습니다.”
이 글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첫 문장인 '스승은 우리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를 부처님에 대한 내용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에 대해서 존경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와 같이 말한다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다.
즉 부처님 말씀이라면 일단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이란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그 존경심 때문에 모든 것을 믿지 말고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이해하라는 말씀을 해 주시고 있다.
“Nanu, bhikkhave, yadeva tumhākaṃ sāmaṃ ñātaṃ sāmaṃ diṭṭhaṃ sāmaṃ viditaṃ, tadeva tumhe vadethā”ti.
그렇지 않은가 비구들이여, 너희에게 스스로 알려지고, 너희에게 스스로 보여지고, 너희에게 스스로 이해되었을때, 그 때 너희는 말하지 않는가?
nanu : [ind.] (particle of affirmation) is it not? Certain; surely
yadā : [adv.] whenever; when
tumha : (the second personal pro.) you
sāmaṃ , (ind.), oneself; by oneself
ñāta, (pp. of jānāti), known; well-known; realised
diṭṭha : [pp. of passati] seen; found
vidita,[pp. of vindati] known, found
tadeva :Tad' eva i.e.,tadā eva, At that very time
vadetha : «vada+a+tha»
이 말을 다른 말로 한다면 '자귀의'하라는 말씀이시다.
이 의미는 육조 혜능 스님의 단경에도 나타난다.
自悟自修 卽名歸依也라
자오자수 즉명귀의야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닦음이 곧 귀의하는 것이다.
즉 자귀의란 '스스로 알고 스스로 보고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비되는 것이 덕산 스님 일화이다.
덕산스님은 주금강(周金剛 금강경의 주석)이란 불릴 만큼 금강경을 공부하신 분이셨다.
용담 스님을 찾아갔을 때 일화이다.
타귀의 하던 덕산!
덕산 선사가 용담 선사에게 가던 날 밤 용담 선사의 방에서 밤이 깊었다.
용담 선사가 말하였다.
"그대는 그만 내려가 보게나."
덕산 선사가 쉬려고 발을 걷고 나가다가 바깥을 보니 캄캄하였다. 돌아서서 말하였다.
"화상이시여, 바깥이 캄캄합니다."
용담 선사가 촛불을 켜서 건네주다가
덕산 선사가 막 촛불을 잡으려고 하는 찰나에 곧바로 촛불을 불어서 꺼버렸다.
덕산 선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지금부터는 다시는 천하의 노화상들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겠노라."라고 하고
드디어 금강경의 소초들을 가져서 법당 앞에 쌓아두고는 횃불을 높이 들고 크게 외쳤다.
"모든 현묘한 이치를 다 말하더라도 마치 터럭 하나를 저 허공에다 두는 것과 같고,
세상의 온갖 중요한 일을 다 하더라도 마치 물 한 방울을 큰 바다에 던지는 것과 같다."라고 하면서
금강경소초를 들고 말하였다.
"그림의 떡은 주린 배를 채울 수 없다."라고 하고는 곧바로 태워버렸다.
그리고 용담 선사에게 예배를 올리고 떠나버렸다.
德山在龍潭하야 入室夜深이어늘
潭曰子且下去하라
師가 珍重하고 揭簾而出이라가 見外面이 黑하고 却回曰和尙이여
外面이 黑이니다
潭이 點紙燭度與라가 師가 才接에 潭이 便吹滅하니
師가 不覺失聲云호대 我가 自今已後로 更不疑天下老和尙舌頭로다하고
遂取疎鈔하야 於法堂前에 將一炬火하야 提起云호대
窮諸玄辯이라도 若一毫를 置於太虛요
竭世樞機라도 似一滴을 投於巨壑이라하고 將疎鈔云호대
畵餠이 不可充飢라하고 便燒하고
於是에 禮辭師하니라.
이 내용은 결국 금강경이 덕산스님을 굴렸지
덕산스님이 금강경을 굴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