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혜명광(眼智慧明光)?
부처님 경전에서 깨달음이 생기는 과정을 안지혜명광(眼智慧明光)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빨리어로 cakkhuṃ- ñāṇaṃ- paññā- vijjā- āloko로 표현된다.
세존께서 사성제의 깨달음을 얻으신 후에
처음 가르침을 펴신 다섯비구에게 사성제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초전법륜)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 cakkhu]이 생겼다. 지혜[智 ñāṇa]가 생겼다. 혜[慧 paññā]가 생겼다. 밝음[明 vijjā]가 생겼다. 광명[光 āloko]이 생겼다.
tathāgatānaṃ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이때 과연 āloko로 표현되는 것을 광명(光)으로 번역하는 것은 올바른 것일까?
혹시 āloko의 뜻은 '이 세상의 것(loko)이 아닌(a)'이란 뜻으로 볼 여지는 없을까?
즉 명(明 vijjā)이 일어나자 이 세상 것이 아닌 (āloko) 것들이 보여졌다는 말씀이 아니냔 말이다.
혹은 세존께서 중의적인 표현을 하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은 이유는 처음 경전을 접하면서부터
이미 명(明 vijjā)이 있는데 또 빛(光)이 들어가니 중복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대체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만약 vijjā- āloko를 明光으로 해석을 한다면
명이란 밝아진 상태를 말씀하시고
빛이란 어디든 비출 수 있다라는 좀 더 적극적인 의미도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동어 반복이란 생각이 들었었다.
또는 논리의 순서상 빛(āloko)이 먼저 있어야 밝음(vijjā)이 있을 터인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경전을 좀 더 살펴보니 색계 사선정에 대해서는 광명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광명에 대해서는 명지에 대해 말씀하실 때 나타난다.
(물론 이런 순서는 광명이란 것이 색계사선정보다 높은 단계에서 나타나기 때문일 수도 있다.)
A3:59 자눗소니 경(Jānussoṇi-sutta)경에서는 삼명을 말씀하신 다음에 다음과 같이 설명해 주신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은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기듯이, 그에게 무명은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긴다.”
avijjā vihatā, vijjā uppannā; tamo vihato, āloko uppanno yathā taṃ appamattassa ātāpino pahitattassa viharato.
vihata : [pp. of vihanati] 1. killed; destroyed; 2. combed or carded
hanati : [han + a] kills; strikes; injures
tama : [m.; nt.] (mano-group), darkness, ignorance
pahitattassa = ( pahitatta + assa )
pahita : [pp. of padahati] sent 熱心的, 努力的
padahati : [pa + dah + a] strives; takes up; confronts, 努力, 刻苦勤勉, 精勤
dahati : [dah + a] accepts, 放置(put, place)
제 해석대로라며 다음과 같다.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가 나타났다. 어둠이 사라지자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이 드러났다.
즉 다시 말해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은 '이 세상의 것(loka)'이 아니란 말이 된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저와 같은 해석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경전도 있습니다.
사념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마음 챙김의 확립 상윳따(Satipaṭṭhāna-saṁyutta) S47:31 전에 들어보지 못함 경(Ananussuta-sutta)에서 그렇게 나타납니다.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것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Ayaṃ kāye kāyānupassanā’ti me, bhikkhave, pubbe ananussutesu dhammesu cakkhuṃ udapādi, ñāṇaṃ udapādi, paññā udapādi, vijjā udapādi, āloko udapādi.)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러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것은 닦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러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것은 닦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위 내용은 얼핏 볼 때는, 眼智慧明光이란 마치 이해가 깊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구절의 해석은 굉장히 심오한 수행의 경지를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몸에서 몸을 본다는 말씀은 무엇일까? (Ayaṃ kāye kāyānupassanā’ti)
또한 나머지 사념처인 느낌, 마음, 법 (受心法)에서 느낌, 마음, 법을 본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이 경지는 제가 '상상'해 보기에는 '내'가 몸을 관찰하는 단계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즉 주관과 객관이 있어서 보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본다의 팔리어는 anupassanā 입니다. passati는 보다인데 거기에 anu를 붙이셨습니다.
아직은 제게 anu의 의미가 불 명확합니다.
사전적으로는 along이 의미가 있고 그래서 같이가는 혹은 경향성이 있는 으로 풀어봅니다만
깨달음에 관련된 '관찰'이란 단어에서 anu가 많이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 예는 더 공부하면 모아보겠습니다. 앞글의 anuvitakketi anuvicāreti 등)
혹시 anupassanā의 뜻이 감각한 것에 대해서 따라서 일어나는 것을 sati하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즉 감각을 하고 nimitta를 인식을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anuvyañjana를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vyañjana란 특징으로 번역이 될 수도 있지만 '文, 字句' 즉 개념으로도 볼 수 있으니
인식한 대상에 대해서 그 대상의 인식을 따라서 개념으로 희론을 일으키지 말라는 말씀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즉 그렇게 되지 않도록 sati하는 것이 anupassanā?
anupassanā : [f.] 1. consideration; 2. realisation, 隨觀
anupassati : [anu + dis + a] observes; contemplates, 觀的, 隨觀, 觀察
passati : [dis + a; dis is changed to pas.] sees; finds; understands 看,见,找,明白
anu : After under, less than, for, according to, along, again, in consequence of, 隨 : 따를 수, 추종하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둘이 아닌 경지에 들어갈 때' 비로서 명지가 열리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이것 또한 명지 이후에 나타나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말씀을 드려 보려는 것입니다.
어쨌든 열린 자세로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좀 더 명확해지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행을 철저히 해야 할 것입니다.
수행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이해라야 보다 확실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S56:12 여래 경(Tathāga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사슴동산에 머무셨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다섯 명의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여래들에게는 ‘이러한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완전히 알아야 한다'고 하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완전히 알았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4. “비구들이여, 여래들에게는 ‘이러한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끊어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일어남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버려졌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5. “비구들이여, 여래들에게는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겪어 알아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거룩한 진리로서 겪어 알았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6. “비구들이여, 여래들에게는 ‘이러한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거룩한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진리로서 닦아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그것은 이와 같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진리로서 닦았다.’라는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법 안에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혜[慧]가 생겼다. 밝음[明]이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A3:59 자눗소니 경(Jānussoṇi-sutta)
1. 한때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만약 어떤 사람에게 제사를 지낼 공물이 있고, 죽은 조상에게 올릴 음식이 있고, 훌륭한 사람에게 올릴 음식이 있고, 보시할 다른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삼명을 구족한 사람에게 보시해야 합니다.”
“바라문이여, 바라문들은 어떻게 바라문들의 삼명을 정의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은 모계와 부계 양쪽 모두로부터 순수 혈통을 이어왔고 일곱 선대(조상) 동안 태생에 관한 한 의심할 여지가 없고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그는 베다를 공부하고 만뜨라를 호지하며 어휘와 제사와 음운과 어원에 이여 역사를 다섯 번째로 하는 삼베다에 통달하였고 언어와 문법에 능숙하였으며 자연의 이치와 대인상에 능통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은 이렇게 바라문들의 삼명을 정의합니다.”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바라문들이 바라문들의 삼명을 정의하는 것과 성스러운 교법에서 삼명을 정의하는 것은 다르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성스러운 교법에서는 어떻게 삼명을 정의합니까? 고따마 존자께서 성스러운 교법에서 정의하는 삼명을 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듣고 마음에 잘 새기도록 하라. 이제 설할 것이다.”
2.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떠나고) 선하지 않은 법으로부터(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를 지닌, 떠남(離)에서 생겨난 기쁨(喜)과 즐거움(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얻어 머문다.
바라문이여,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부터 고요해져,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을 얻어 머문다.
바라문이여, 여기 비구는 기쁨으로부터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念)과 알아차림(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로 그것,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고 하는 제3선(三禪)을 얻어 머문다.
바라문이여,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슬픔)이 사라진(소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제4선(四禪)을 얻어 머문다."
3. “그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하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인다. 그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한다. 예를들어 1번 태어나고 2번 태어나고 3번 태어나고 4번 태어나고 5번 태어나고 10번 태어나고 20번 태어나고 30번 태어나고 40번 태어나고 50번 태어나고 백번 태어나고 천번 태어나고 십만번 태어나고,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과 무너지는 겁을 기억하고, 수많은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거기에서 이름과 성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용모(피부색)는 이러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고. 동등한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여러 가지 삶의 형태)기억한다.
그는 첫 번째 영지[明]를 얻는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을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기듯이, 그에게 무명은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긴다.”
4. “그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하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인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그는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본다(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그들은 고귀한 분들을 비방하고, 잘못된 견해(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래서 이들은 육체가 파괴된 뒤 죽어서 괴로운 곳, 나쁜 곳, 즐거움이 없는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고귀한 분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래서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 나라에 태어난다.'고. 이와 같이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 차린다.
그는 두 번째 영지를 얻는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은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기듯이, 그에게 무명은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긴다.”
5. “그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하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인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는 세 번째 영지를 얻는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을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기듯이, 그에게 무명을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긴다.”
6. “그는 계율과 의식을 지키고 근면하고 禪을 닦고
그의 마음은 자유자재하고 일념이 되고 잘 집중되나니
그러한 성자는 전생을 기억하고 천상과 지옥을 보며
태어남이 다 했고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쳤으며
이러한 세 가지 영지로 삼명을 구족한 바라문이 되나니
그를 나는 삼명을 구족한 자라 부르리.
단지 말로만 그렇게 불리는 자를
나는 삼명을 구족한 자라 부르지 않노라.”
7.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교법에서는 삼명을 정의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의 삼명과 성스러운 교법에서 가르치는 삼명은 다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의 삼명은 성스러운 교법에서 가르치는 삼명의 십육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S47:31 전에 들어보지 못함 경(Ananussut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머무셨다.
2.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은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것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러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것은 닦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러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것은 닦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4.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러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것이 닦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러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것은 닦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5.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러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 닦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러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것은 닦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6.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것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러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것이 닦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러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것은 닦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A4:143 광명 경(Āloka-sutta)
“비구들이여, 네 가지 광명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달의 광명, 태양의 광명, 불의 광명, 지혜의 광명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광명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가운데 지혜의 광명이 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