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22:54 씨앗 경을 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온의 색(色), 수(受), 상(想)은 욕계 (나의 것), 색계 (나), 무색계 (나의 자아)에 대한 표현이 아닐까요?
그래서 오온이라는 것은
욕계에서 색에 대해 탐진치를 일으키고 (色; 나의 것)
색계에서 내 몸을 근거로 느낌을 갖게되고(受; 나)
무색계에서 무의식 적으로 쌓여있는 전생의 판단기준이 작용하는 것이고 (想; 나의 자아; 업)
그것을 근거로 행위를 하고(行)
판단을 내리는 것이(識)
'나'라고 하는 것이라는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떠 올랐던 이유는 S22:54 씨앗 경 (Bīja-sutta)에 대한 제 독특한 해석 때문입니다.
저는 씨앗 경의 다섯 씨앗이 색수상행식의 역할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색수상행식 각 씨앗이 자라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보여준다고 보았습니다.
S22:54 씨앗 경 (Bīja-sutta)
뿌리로 번식하는 씨앗, 줄기로 번식하는 씨앗, 마디로 번식하는 씨앗, 싹으로 번식하는 씨앗, 다섯 번째로 종자(씨앗)로 번식하는 씨앗이다.
이에 대한 빨리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Mūlabījaṃ, khandhabījaṃ, aggabījaṃ, phalubījaṃ, bījabījaññeva pañcamaṃ
빨리어 각묵스님 제 해석
Mūlabījaṃ 뿌리로 번식하는 씨앗 (윤회의) 원인의(탐진치) 씨앗
khandhabījaṃ 줄기로 번식하는 씨앗 오온의 씨앗
aggabījaṃ 마디로 번식하는 씨앗 (자아) 최상의 씨앗
phalubījaṃ 싹으로 번식하는 씨앗 결과(과보)의 씨앗
bījabījaññeva 종자(씨앗)로 번식하는 씨앗 씨앗으로 향하는 씨앗
mūla : 'roots', also called hetu (lobha, dosa, moha)
khandha : [m.] 1. bulk; 2. the trunk of the body or of a tree, sensorial aggregates which condition the appearance of life in any form
agga : [adj.] the highest; the top-most. (m.), the end; the top, 第一, 最高, 最上
phaḷu [phala+u. , ṭī. 6vava.], a joint or knot (of reed, etc.)
phala : lit. 'fruit'. - 1. result, effect (often together with hetu, cause ); 2. benefit
사향사과(四向四果, cattāro paṭipannā cattāro phalā)에서 과(果)가 phala이다.
bīja : [nt.] seed; germ; generating element
일단 각묵스님 해석의 문제점은 '언어의 구조'가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스님의 번역은 줄기로 번식하는 '식물'이 아니라 씨앗입니다.
줄기로 번식하는 씨앗? 이건 언어 구조상 말이 되지 않는 표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언어의 마술사이신데 이런 실수를 하셨을 리가 없습니다.^^
만약 각묵스님의 뜻으로 다시 번역을 한다해도
뿌리가 씨앗 이다(역할을 한다)?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터인데
이 마저도 이상한 표현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 본 것은 기존 번역과는 전혀 다른 해석입니다.
각 씨앗은 색수상행식인 오온이고
그 씨앗이 성장하고 증장해서 나타나는 결과를 보여준 경이
S22:54 씨앗 경 (Bīja-sutta)이라는 것입니다.
묘하게도 이 경의 후반부에 색수상행식을 설명해 주시는데
그 내용이 앞의 다섯 씨앗에 대한 단어와 연관지어 볼 수가 있더군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다섯 종류의 씨앗이란
8. "비구들이여, 알음알이는 머무는 동안에 물질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물질을 대상으로 하고 물질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원인(탐진치)의 씨앗; 색이 탐진치의 씨앗이라는 개념으로 읽었습니다. 뿌리란 원인(hetu)라고도 하며, 탐진치를 뜻한다고도 한답니다. 그러니 rūpa야 말로 탐진치의 원인이 될 것입니다.)
알음알이는 머무는 동안에 느낌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느낌을 대상으로 하고 느낌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오온의 씨앗; 느낌이 나라는 존재에 대한 환상의 씨앗이라는 개념으로 읽었습니다. 나라는 생각은 결국 느낌에서 확고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꼬집히면 나만 아픕니다. 그 느낌에서 나라는 개념이 생겨납니다. 그것이 오온입니다. 그래서 느낌이 오온의 씨앗이 됩니다.)
알음알이는 머무는 동안에 인식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인식을 대상으로 하고 인식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최상의 씨앗; sañña가 나라는 생각을 일으키는 근본(최상)이 되는 씨앗이라는 개념으로 읽었습니다. 이렇게 본 이유는 선정에서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는 것이 sañña이기 때문입니다. 비상비비상처, 상수멸정 모두 결국 나라는 것의 문제의 최 정점에 있다는 생각에서 이런 추론을 해 보았습니다. 다시 말해 sañña란 다생의 경험에 걸쳐서 쌓여있는 것(識)이 현생의 사건을 만나면서 판단 작용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으로 저는 해석해 보았습니다. 이런 각 개인의 sañña는 결국 '나라는 존재'의 가장 근원이 되는 혹은 최 정점에 서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이런 제 의견에 대해 좀더 경전적인 의견을 보태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A5:32 쭌디 경(Cundī-sutta)
Ye kho, cundi, buddhe pasannā, agge te pasannā. Agge kho pana pasannānaṃ aggo vipāko hoti.
부처님께 헌신하는 것이 최고의 헌신이다. 최고의 헌신은 최고의 과보(이숙)을 낳는다.
pasanna : [pp. of pasīdati] become bright; pleased or purified; was clear or devoted
sanna; [pp. of sandati] flown, [pp. of sīdati] sunk
vipāka : [m.] result; fruition; consequence of one's actions, 異熟, 報, 果報
pāka : [adj.] cooking; that which is cooked; ripening, 烹饪,被烹调的
pacati : [pac + a] cooks, 煮(cook, boil), 炊, 燒(roast)
pana: [(Adversative and interogative particle) ind.] and; yet; but; out the contrary; and now; more over
다시 말해 agga란 윤회에 들어있으면서 이숙을 일으키는 것에서의 최상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숙생의 내재된 가치판단으로 윤회에서 최상으로 갈 수 있는 씨앗이라는 말인 듯 합니다.)
알음알이는 머무는 동안에 심리현상(saṅkhāra 行)들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 그것은 심리현상들을 대상으로 하고 심리현상들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열매의 씨앗; 행위는 열매(과보)를 맺게하는 씨앗이라는 개념으로 읽었습니다. 앞서 뿌리의 씨앗에서 원인을 이야기 한 것이라면 행위란 색수상의 과정이 현생의 행위로 열매 맺어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행위란 원인에 따른 열매이며 과보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보란 꼭 나뿐 것 만은 아닙니다. 올바른 행위를 통해서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果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다시 말해 과보의 씨앗이란 말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말씀하시고 나서 '식'이란 색수상행을 떠나서는 존립할 수 없음을 다음과 같이 천명하십니다.
9.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물질과도 다르고 느낌과도 다르고 인식과도 다르고 형성과도 다른
의식이 오거나 가거나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자라거나 증장하거나 충만하게 되는 것을 천명하리라.’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8에서 색수상행에 대해서만 말씀하셨다는 것이겠지요.
즉 9에서는 식이 확립되어야 비로서 나가 있게 된다는 말씀이시겠지요.
그리고 10, 11에서 다시한번 식에대해 말씀해 주시는데 그 내용이 의미심장합니다.
즉 식이 확립하지 않는다면 해탈한다는 말씀이십니다.
즉 마지막 씨앗인 bījabījaññeva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식(viññāṇa)이 확립되지 않는 내용입니다.
식이 오온에 머뭄이 존재를 있게하며
오온에 대한 탐욕이 멈추면 식이 머물지 않아서 해탈하게 된다고 알려 주십니다.
따라서 식이란 씨앗으로 향하는 씨앗(bījabījaññeva)이 되게 됩니다.
(사실 이 bījabījaññeva 단어 해석이 어려웠습니다.
bījaññeva는 bīja-n-na-eva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의미는 '씨앗이 씨앗이 아닌'이란 뜻이 될 수 있다고 하네요.
반면에 bīja-m-eva로 볼 수도 있다는데 이 경우 m-eva는 '아무 뜻도 없는 것'이므로 그냥 발음상 <폼>으로 볼 수 있답니다. 그 의미는 '씨앗의 씨앗'!
같은 단어에 정 반대 의미라니...???
그런데 어느 경우든 동일한 해석이 다 가능하군요. ^^
식에서 식을 만들어 낸다. (식이 머무는 경우, 즐기는 경우; 씨앗의 씨앗)
식에서 식이 멈춘다. (식이 머물지 않는 경우; 비씨앗의 씨앗)
하지만 한 분이 결론 내려 주신 것에 의하면 씨앗의 씨앗이 맞다고 하시는 군요.
neva가 부정의 의미를 가질 경우에는 접두어로 붙지 단어의 뒤에 붙지는 않는다고 하십니다.
어떤 경우의 해석이든 제 해석에는, 이미 말씀드린대로,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어쨌든 이 bījabījaññeva 단어에 대응하는 내용이 S22:54 씨앗 경의 10, 11번에 해당한다고 보여집니다.
10의 내용은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이 확립되지 않는 씨앗에 대한 말씀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앞서 9번에서 말씀하신 것은 색수상행에서 식이 확립되는 문제임을 말씀해 주셨고
10번에서는 의식이 확립되지 않는 경우를 말씀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bījabījaññeva란 '씨앗으로 향하는 씨앗'이란 해석이 가능하지 않냐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viññāṇa는 존재로 향하거나 혹은 존재가 멈추게 되는 씨앗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10.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물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Rāgassa pahānā ) 대상이 끊어지고(vocchijjatārammaṇaṃ )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patiṭṭhā viññāṇassa na hoti).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느낌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인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형성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이런 해석을 해 놓고 보니 오온에 대한 이해가 보다 선명해 졌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식의 머뭄이란 것 그리고 식이 확립하지 않음이란 것의 개념이 중요하겠더군요.
그 내용이란 우리가 어떤 대상에 주목해서 계속 그 가치에 끌려다니는 것(생각)이 식이 머뭄이고
식이 확립하지 않느다는 것은 그러한 생각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글 서두에 이미 말씀드린대로 색수상이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군요.^^
혹은 나의 것, 나, 나의 자아라는 말씀도 더 잘 이해가 되구요.
그동안 늘 어렵게 생각하던 sañña(想)의 개념도 더 명확해 졌습니다.
물론 느낌이 '나라는 존재'라는 생각을 갖게하는 기본이 된다는 개념도 더 명확해 졌습니다. ^^
S22:54 씨앗 경(Bīj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사밧티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계셨다.
2.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은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 대답뱄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다섯 종류의 씨앗이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뿌리로 번식하는 씨앗, 줄기로 번식하는 씨앗, 마디로 번식하는 씨앗, 싹으로 번식하는 씨앗, 다섯 번째로 종자(씨앗)로 번식하는 씨앗이다.”
4.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종류의 씨앗이 훼손되지 않고 썩지 않고 바람과 햇빛에 의해서 손상되지 않고 풍작을 가져올 수 있고 잘 심어졌지만 땅도 없고 물도 없다 하자. 그러면 이러한 다섯 종류의 씨앗이 자라거나 증장하거나 충만하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5.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종류의 씨앗이 훼손되지 않고 썩지 않고 바람과 햇빛에 의해서 손상되지 않고 풍작을 가져올 수 있지만 잘 심어지지 않았으며 땅도 있고 물도 있다 하자. 그러면 이러한 다섯 종류의 씨앗이 자라거나 증장하거나 충만하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종류의 씨앗이 훼손되지 않고 썩지 않고 바람과 햇빛에 의해서 손상되지 않고 풍작을 가져올 수 있고 잘 심어졌으며 땅도 있고 물도 있다 하자. 그러면 이러한 종류의 씨앗이 자라거나 증장하거나 충만하게 되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7. “비구들이여, 여기서 땅의 요소는 네 가지 의식의 거주처들(viññāṇaṭṭhitiyo)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물의 요소는 즐김과 탐욕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다섯 종류의 씨앗은 음식과 함께 한 의식과 같다고 보아야 한다.”
8. “비구들이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물질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Rūpupayaṃ) 그것은 물질을 대상으로 하고 물질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Rūpupayaṃ, bhikkhave, viññāṇaṃ tiṭṭhamānaṃ tiṭṭheyya, rūpārammaṇaṃ rūpappatiṭṭhaṃ nandūpasecanaṃ vuddhiṃ virūḷhiṃ vepullaṃ āpajjeyya.
upaya : [m.] attachment
tiṭṭhamāna : [pr.p. of tiṭṭhati] standing; staying
upasecana : [nt.] something sprinkled to relish food, 撒布(살포), (為了美味)撒(調味物)於(食物上)
vuddhi : [f.] increase; growth; prosperity
virūḷhi : [f.] growth
rūḷhi :f. [<rūḷha<ruh. cf. Sk. rūḍhi] 伝統, 通例, 通用
rūḷha : [pp. of rūhati] grew; ascended; healed
vepulla : [nt.] full development; abundance
āpajjati: [ā + pad + ya] gets into; undergoes; meets with
비구들이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느낌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Vedanupayaṃ), 그것은 느낌을 대상으로 하고 느낌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인식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saññupayaṃ), 그것은 인식을 대상으로 하고 인식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의식은 머무는 동안에 형성에 속박되어 머물게 되나니(saṅkhārupayaṃ), 그것은 형성을 대상으로 하고 형성에 확립되고 즐김을 통해서 촉촉이 적셔져서 자라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될 것이다.”
9.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물질과도 다르고 느낌과도 다르고 인식과도 다르고 형성과도 다른 의식이 오거나 가거나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자라거나 증장하거나 충만하게 되는 것을 천명하리라.’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10.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물질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Rūpadhātuyā ceva, bhikkhave, bhikkhuno rāgo pahīno hoti. Rāgassa pahānā vocchijjatārammaṇaṃ patiṭṭhā viññāṇassa na hoti.
vocchijjati : [vi+ud+chijjati] to be cut off or stopped, 切断される, 分断
chijjati : [pass. of chindati] is cut, broken or severed
chindati : [chid + ṃ + a] cuts; severs; destroys
patiṭṭhā : [f.] help; support; resting place
tiṭṭha :a. [tasati ① 的 pp. ] 堅固的(hard), 乾涸的(dry), (語氣)粗暴(盛氣凌人)的(rough)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느낌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인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형성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의식의 요소에 대한 탐욕을 제거하면 탐욕을 제거하였기 때문에 대상이 끊어지고 의식은 확립되지 않는다.”
11. “의식이 확립되지 않고 증장하지 않으면 의도적 행위를 짓지 못하고 해탈한다. 해탈하기 때문에 평온하고 평온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갈증 내지 않고 갈증 내지 않으면 스스로 완전히 열반에 든다. ‘태어남을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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