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자유

우암(雨庵) 2017. 2. 4. 22:21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가르침입니다.

육조 스님께서는 이 한 마디를 듣고는 출가를 결심하십니다.


이 글의 의미는 식에 머물지 말라는 초기경전의 말씀과 같은 가르침입니다.

동일한 가르침을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지침으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식에 머문다.'(viññāassa hitiyā)는 것은 이미 갖고 있는 판단 기준이 작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현재를 관찰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대상을 대하고 느낀 것에 대해서 기존에 저장된 가치관이 저절로 따라 나오는(anusaya) 것입니다.
강물이 오랜 세월을 두고 흐르지만 한번도 동일한 강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생은 동일한 강물이라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자후(獅子吼 사자의 포효)를 우암은 '나를 포기한 자는 묶이지 않는다! (sīhanāda!)'로 번역한 적이 있었습니다. (http://blog.daum.net/jinkyungsung/139)
우암은 같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백척간두 진일보 (百尺竿頭進一步) 백척의 높은 절벽에서 허공으로 한걸음 내 딛는 것입니다.
죽을 것을 걱정하십니다. 그렇지요?
이 가르침의 내용은 '지키려 하는 것'이 오히려 묶임이라는 것입니다.


오지도 않은 것을 포기하는 소극적인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포기하는 삶'이란 또 하나의 묶임입니다. 포기에 묶이는 삶이란 말입니다.
인연따라 오는 강물에 자유롭게 몸을 맡기라는 말입니다.

처음부터 자유롭게는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이 길들여 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팔정도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바른 견해를 갖추고 나서 (이때는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른 마음을 쓰고 바른 말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하며 바른 생활을 하란 말입니다.
이는 묶이는 삶입니다.
도덕 교과서 같은 이야기라고 폄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은 쉽지만 신구의 삼업으로 이렇게 살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길들지 않은 코끼리(우리의 마음)를 길들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비로서 우리는 '바른 견해'를 재확인하게 되고
이때서야 비로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들은 모두 '머무는 바 없이 살라!'는 가르침이십니다.
우암은 이미 오래 전에 이런 글들을 읽었었는데, 그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묶인다는 것은
감각적인 욕망을 따라서 사는 것도 묶임이고
윤회를 믿는다며 미래생을 위해서 포기하면서 사는 것도 묶임입니다.
'묶이지 말아야지!' 하는 것조차 묶임입니다.^^
그래서 육조 스님께서는 무념(無念)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자유는
지금 이 순간을 순간 순간 sati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걸림없이 변해가는 존재입니다.  _()_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