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에 나타나는 내용이 기독교 복음서에도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암이 불교를 공부하면서 기독교와 불교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에 놀란 적이 몇 번 있다.
얼마 전에 우암은 우연히 토마스 가스펠(도마 복음)이란 기독교 문헌을 볼 기회가 있어서 영어를 한글로 번역해 보았었다.
이 도마복음은 로마 기독교에서는 정통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사라졌던 문헌인데
20세기에 이집트에서 발견되어서 주목을 받았던 문서인 모양이다.
이 문서가 특히 주목 받은 이유는
로마의 편집과정을 거치지 않아서 예수님 당시의 원형에 가까이 보존된 문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암이 재미있게 읽은 구절중 하나는 3번으로
진리란 물질적 대상(하늘, 바다)에 있지 않고 한마음(一心)이라는 것이며
더 나아가, 법화경의 궁자의 비유와 동일하게,
우리는 진리의 아들인데, 이를 모르고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가르침이다.
원문과 번역은 아래와 같다
도마복음 (Gospel of Thomas)
3. Jesus said, "If your leaders say to you, 'Look, the (Father's) imperial rule is in the sky,' then the birds of the sky will precede you. If they say to you, 'It is in the sea,' then the fish will precede you. Rather, the (Father's) imperial rule is inside you and outside you. When you know yourselves, then you will be known, and you will understand that you are children of the living Father. But if you do not know yourselves, then you live in poverty, and you are the poverty."
3. 진리가 하늘에 있다면 새들이 먼저 도달할 것이고
진리가 바다에 있다면 물고기들이 먼저 도달할 것입니다.
진리란 당신의 안과 밖에 (모두)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게 되면 너는 알려질 것이고 네가 진리의 아들임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너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가난 안에 살 것이고 네가 바로 가난이다.
우암이 위 글을 읽으며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법화경의 궁자의 비유와 같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새삼스레 다시 눈에 띈 것은
진리가 바다에 있다면 물고기들이 먼저 도달할 것이라고 가르친 부분이다.^^
이 가르침과 유사한 비유가 장노니게에도 나온다.
요즘도 인도에서는 갠지스강에서 목욕을 하면 악업을 닦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은 2500년전에도 동일했던 모양이다.
뿐니까(Puṇṇātherī, 공덕 비구니 스님 Puṇṇīkā)는 출가 전에 아나타빈디까 집안의 하녀였다고 한다.
그 집안은 워낙 불심이 깊은 집이었으니, 하녀라도 부처님의 말씀을 자주 들을 기회가 있었으리라.
어느 추운날 뿐니까는 물을 길으러 강에 갔는데, 추위에 떨면서 목욕을 하는 바라문을 마주친다.
그 바라문은 목욕을 통해 악업을 닦아낼 수 있다고 믿고 있어서 추운 날씨에도 목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니까는 이 바라문에게
악업이 목욕으로 없어진다면 물에 사는 생물(개구리, 거북이, 용, 악어)이 가장 정화되었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
이 부분이 도마복음과 내용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뿐니까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만약 목욕을 통해 악업이 씻겨진다면, 공덕 또한 목욕으로 씻겨 내려갈 것이라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목욕이 아니라 바른 행위를 통해서 청정해지는 것이라는 점을
잡아함경 1185. 손타리경(孫陀利經) 2에서 밝히고 계시다.
Therīgāthā
Soḷasakanipāta
1. Puṇṇātherīgāthā, Thig. 236~251 (전재성 박사 역)
(뿐니까 )
나는 물긷는 하녀였는데
귀부인의 처벌에 두려워하고 떨면서
화내는 말의 공포에 시달리며
추울 때에도 항상 물속에 들어갔다.
존귀한 자여, 무엇이 두려워
항상 물속에 들어가는가?
사지를 떨면서도
그대는 심한 추위를 견뎌낸다.
(바라문)
이보게 뿐니까여
착한고 건전한 행위를 하고
악하고 불건전한 행위를 차단하니
그대는 알면서 질문하고 있다.
노인이건 젊은이건
악한 행위를 하는 자는
목욕재계하면
악한 업에서 벗어난다.
(뿐니까)
무지하면서 무지한 자에게
목욕재계하면 참으로
악한 업에서 벗어난다라고
어떤 자가 그대에게 설했을까요?
일체의 개구리, 거북이,
그리고 용, 악어,
다른 수생동물들도
천상세계로 갈 수 있겠네요?
또한 양도살자, 돼지도살자,
어부, 사슴사냥꾼,
도적, 사형집행인과
다른 악한 자들조차도
목욕재계만으로도
악한 업에서 벗어나겠군요.
이 강물이 예전에 지은
그대의 악업을 씻어낸다면,
공덕도 함께 씻어낼 것이니
그러면 그대에겐 아무것도 안 남게 될 뿐이오.
존귀한 자여, 그대는 떨면서
항상 물속에 들어가는데
존귀한 자여, 그만 두시오,
냉기가 피부를 상하게 하지 마시오.
(바라문)
존귀한 여인이여,
삿된 길을 걷고있는 저를 고귀한 길로 이끌었습니다.
저는 이 목욕재계의 옷을
그대에게 보시하겠습니다.
(뿐니까)
옷은 그대의 것이고
나는 옷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대가 괴로움을 두려워한다면
만약 괴로움을 싫어한다면
공개적으로나 비밀리에나
악한 행위를 하지 마시오
만약에 하려거나 한다면
날아가거나 도주하더라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대가 괴로움을 두려워한다면
만약 괴로움을 싫어한다면
여여한 깨달은 님과
가르침과 참모임에 귀의하시오.
그리고 계행을 지키시오
그대에게 이익이 될 것이오.
(바라문)
깨달은 님과 그 분의
가르침과 참모임에 귀의합니다.
그리고 계행을 지키겠습니다.
저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예전에 혈통이 존귀한 님이였으나
오늘 참된 존귀한 님이 되었으니
세 가지 명지에 정통한 자, 예지를 갖춘 자,
학식있는 자, 목욕재계한 자가 되었다.
잡아함경 1185. 손타리경(孫陀利經) 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코오살라국의 세간에 노닐으시면서 순다리카아강 곁의 숲덤불에 계셨다.
때에 순다리카아강 곁에 사는 어떤 바라문은 부처님께 나아와 서로 문안하고 위로한 뒤에 한 쪽에 물러앉아 사뢰었다.
"순다리카아강에 가셔서 목욕하시렵니까?"
부처님께서는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순다리카아강에 가서 목욕해 무엇하겠느냐?"
"고오타마시여, 순다리카아강은 제도(濟度)하는 강이요, 상서로운 강이며 청정한 강입니다.
만일 누구나 거기서 목욕하면 사람의 모든 악을 다 없앨 수 있나이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곧 게송으로 말씀하였다.
순다리카아강이나
바아후카강이나
가야아강이나 사라사티강이나
그런 여러 강들은
온갖 악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능히 청정하게 할 수 없나니
강가아나 바아후카강이나
순다리카아강들은
어리석은 이 언제나 그 속에 살아도
그 많은 죄악을 없앨 수 없느니라.
그가 청정한 사람이라면
구태여 목욕해 무엇하며
그가 청정한 사람이라면
우파바사타는 하여서 무엇하리.
깨끗한 업(業)으로써 스스로 깨끗이 하는 것
그것은 살생도 도둑질도 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기
받들어 가지는 그것이 되느니라.
믿는 마음으로 보시 행하여
인생의 때를 버려 거기서 목욕하고
일체의 모든 중생들을 대하여
자비스런 마음을 언제나 일으키면
우물물로 목욕해도 그만이거니
구태여 가야아의 강물은 무엇하리.
안으로 그 마음 스스로 청정하면
바깥을 씻을 필요 없나니
천하고 낮은 시골 아이들
그 몸에 더러운 때가 많아서
물로써 먼지를 씻는다 해도
그 마음은 깨끗하게 할 수 없느니.
그 때에 순다리카아강 곁에 사는 바라문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법화경 신해품 궁자(窮子)의 비유
어떤 사람이 나이 어렸을 적에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나가 다른 지방에 살기를 10년, 20년, 50년을 지냈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매우 빈궁하여 사방으로 의식(衣食)을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본국을 향하게 되었나이다. 또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 오랫동안 다녔으나 만나지 못하고, 중도에 어떤 성에 머물러 살게 되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부자가 되어 재물이 한량없었으니, 금·은·유리·산호·호박·파리·진주 같은 보물이 창고마다 가득하였고, 남종·여종·상노·시종·청지기·서기들을 많이 거느렸으며, 코끼리·말·수레와 소와 양이 무수히 많았으며, 재물이나 곡식을 거래하는 이익이 다른 나라에까지 미쳐서 장사꾼과 거간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 때 빈궁한 아들(窮子)은 여러 지방과 여러 마을을 전전하다 마침내 아버지가 살고 있는 도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과 이별한 지가 50여 년이 지난 줄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지만,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일을 말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마음속에 한탄하기를, '이미 늙고 자식은 없으니 이제 죽게 되면, 창고마다 가득한 금·은 등의 재물은 누구에게 전해 줄 것인가?' 하면서 은근히 아들을 기다렸으며, 다시 생각하되, '내가 만일 아들을 만나서 재산을 전해 주게 되면, 한없이 쾌락하여 다시 근심이 없으리라'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한편 빈궁한 아들은 품팔이를 하며 이리저리 다니다가 우연히 아버지가 사는 집의 대문 앞에 이르러 멀리서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사자좌에 걸터앉았는데 보배궤로 발을 받쳤고, 여러 바라문과 찰리(刹利)와 거사들이 모두 공경하여 둘러 모셨으며, 천 냥, 만 냥이나 되는 진주와 영락으로 몸을 장엄하였고, 시종과 하인들이 흰 불자(拂子)를 들고 좌우에서 모셨으며, 보배 안장을 위에 덮고 여러 가지 꽃 번개를 드리우고, 향수를 땅에 뿌리고 훌륭한 꽃들을 흩었으며, 보물들을 벌려 놓고 내고 들이며 주고받는, 이러한 장엄스런 일들이 특별히 위덕이 있게 보였습니다. 빈궁한 아들은 그 아버지가 큰 세력을 가진 줄을 알고는 곧 두려운 생각을 품어 그곳에 온 것을 후회하면서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저 사람은 아마 왕이거나 혹은 왕족이리니, 내가 품팔이 할 곳이 아니로다. 다른 가난한 마을에 찾아가서 마음대로 품을 팔고 의식을 구함만 같지 못하리라. 만일 여기 오래 머물렀다가는 혹 붙들어 강제로 일을 시킬지도 모르리라.'
이렇게 생각한 그는 거기서 빨리 달아났습니다.
이 때 대부호 장자는 사자좌에서 자기 아들을 문득 알아보고 마음에 크게 환희하여 생각하였습니다.
'내 창고마다 가득 찬 재물을 이제 전해 줄 데가 있구나. 내가 항상 이 아들만 생각하였으나 만날 수가 없었는데, 이제 스스로 왔으니 나의 소원을 성취함이로다. 내 비록 늙었으나 그래도 아까운 마음이 있었노라.'
사람을 보내어 데려오도록 하였습니다. 그 때 한 사자가 달려가 붙드니, 그 빈궁한 아들은 놀라 원망스럽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왜 붙들어 갑니까?'
사자는 더욱 단단히 붙들고 강제로 데려오려 하자, 그 때 빈궁한 아들은 '나는 아무 죄도 없이 붙잡혔으니 반드시 죽는 것이로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층 더 놀랍고 무서워 땅에 넘어져 기절해 버렸습니다. 아버지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사자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사람을 억지로 붙들어 올 것은 없다. 그 얼굴에 냉수라도 끼얹고 다시 소생케 하고 더 말하지 말라.'
왜냐 하면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과 뜻이 하열한 줄을 알며, 한편 자기는 호화롭고 부귀하여 그 아들이 어려워하는 줄로 짐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아들인 줄을 알지만, 방편으로써 다른 사람에게는 나의 아들이란 것을 알리지 않고 사자를 시켜 말하였습니다.
'내가 너를 놓아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가거라.'
빈궁한 아들은 매우 기뻐하며, 땅에서 일어나 어느 가난한 마을을 찾아가 의식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장자는 그 아들을 타일러서 데려오려고 방편을 써서 모양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두 사람의 사자를 가만히 보내면서 이렇게 일렀습니다.
'너희는 거기에 가서 그 빈궁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저기 일할 곳이 있는데, 품삯은 다른 데보다 배를 준다고 하고, 만약 그가 허락을 하거든 데리고 와서 일을 시키되, 혹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거든 거름을 치우는 일로 우리 두 사람도 그대와 함께 그 일을 한다고 하여라.'
두 사람은 즉시 빈궁한 사람을 찾아가서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빈궁한 아들은 그들을 따라가 선금을 받고 거름을 치우는데, 아버지는 그를 볼 때마다 가엾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방 안에서 일하는 아들을 바라보니, 그 몸은 야위어 초췌하였고, 흙과 먼지가 온몸에 가득하여 더럽기가 짝이 없는지라, 아버지는 곧 영락과 좋은 의복과 장식품을 벗어 버리고, 허름하고 때가 묻은 옷으로 바꾸어 입고, 또 먼지를 몸에 바르고 오른손에는 거름 치우는 기구를 들고 나가 여러 일꾼들에게 말하였습니다.
'그대들은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일하라.'
그러면서 이러한 방편으로 그 아들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빈궁한 아들에게 말하기를 '너는 다른 데로 가지 말고 항상 여기에서 일을 하여라. 그러면 너의 품삯도 올려 줄 것이요, 또 필요한 물건이 있거든 항아리·쌀·밀가루·소금·장 할 것 없이 무엇이든지 말하여라. 늙은 하인이 있으니 달라는 대로 줄 것이다. 나는 너의 아버지와 같지 않느냐. 그러므로 다시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잘 있거라. 왜냐 하면 나는 이미 늙었고 너는 아직 젊기 때문이다. 너는 일할 적에 항상 속이거나 게으르거나 성내거나 원망하는 말이 없으니, 다른 일꾼들처럼 나쁘지가 않더라. 이제부터는 나의 친자식과 같이 생각하겠노라.'
그러면서 장자는 이름을 다시 지어 주고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빈궁한 아들은 이런 귀여움을 받는 것이 기뻤으나, 전과 같이 머슴살이하는 천한 사람이라 스스로 생각하였으므로, 20년 동안을 항상 거름만 치우고 있었습니다. 그 뒤 얼마쯤 지나더니 마음을 서로 믿고 통하여 안팎을 무난하게 드나들면서도 거처하기는 그전과 같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때 장자는 병이 생겨 죽을 때가 멀지 않은 것을 알고, 빈궁한 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나에게는 지금 금·은 보배가 많아 창고마다 가득하므로, 그 속에 많고 적은 것이라든지 주고받을 것을 네가 다 알아서 처리하라. 내 뜻이 이러하니 너는 그대로 하여라. 왜냐 하면 지금은 너와 내가 다를 것이 없으니, 마땅히 마음을 잘 써서 허비하지 말고 잃지 않도록 하라.'
빈궁한 아들이 명령을 받고 금·은 진보의 여러 재산과 창고를 맡았으면서도 한 가지도 욕심을 내지 않고, 거처하는 곳도 예전 그대로이며, 용렬한 마음 또한 조금도 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또 얼마를 지난 뒤에 아들의 마음이 점점 열리고 커져서 큰 뜻을 이루고, 예전의 비열했던 마음을 스스로 뉘우칠 줄도 알았습니다. 그 아버지가 임종할 때에 이르러, 아들에게 명하여 친족들과 국왕과 대신과 찰제리와 거사들을 모이게 하고, 그들이 다 모인 뒤에는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마땅히 아시라. 그는 나의 아들이오. 내가 그를 낳았으나 어느 성중에서 나를 버리고 도망하여 50여 년 동안 외롭게 떠돌아다니며 고생을 했소. 그의 본래 이름은 아무개였고, 내 이름은 아무개였소. 오래전부터 무척 걱정하며 찾았더니, 홀연히 여기에서 만났소. 이는 내 진실한 아들이며, 나는 그의 아비요. 지금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은 다 이 아들의 것이며, 이미 주고받던 것도 모두 이 아들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오.'
세존이시여, 빈궁한 아들은 아버지의 이 말을 듣고는 크게 기뻐, 미증유함을 얻어서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는 본래부터 바라는 마음이 없었는데 지금 이 보배가 창고에 저절로 이르렀구나'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대부호 장자는 곧 여래이시고 저희들은 다 부처님의 아들 같사오니, 여래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저희들을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