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결과 안에 원인 있고 원인은 결과로서 드러난다.

우암(雨庵) 2015. 7. 23. 12:39

결과 안에 원인이 있으며 원인은 결과로서 드러난다.

 

윤회에서 인과의 문제를 생각해 보려합니다.

양자역학의 실험 결과를 유식 30송 및 중론의 게송과 비교해 보려 합니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자연 현상을 보여줍니다.

이중 슬릿 실험은 과거에 일어난 선택에 대한 관찰이 미래를 확정지어 버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미래가 확정되는 인과란 관찰자가 '과거에 발생한 결과에 영향을 주는 선택'에 대해 관찰을 함으로써 나타나게 된다.

- 그러나 여러 가능성에 대한 선택지에 대해서 관찰자가 없다면, 그 결과는 모든 가능성의 확률로 나타난다.

 

(양자 역학에 대해서 살펴 본 것은 글 말미에 올려 놓았습니다. 내용이 쉽지 않아 읽기가 어려울 수 있어서... 또 저도 아직 갈고 닦아야 할 부분이 많아서...)

 

 

 

이런 결론이 윤회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게송이 용수보살의 중론에서 연기법에 대한 게송에서 나타나는 것 같다.

 

결과가 조건 속에 미리 존재했다거나,                                   果先於緣中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모두 불가능이다.                     有無俱不可
미리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런 조건은 무엇을 위해 있겠으며,   先無爲誰緣
미리 존재했다면 그런 조건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先有何用緣   - MK. 1-8

 

용수 보살의 게송을 좀더 현대적인 말로 바꾸어 보면 다음과 같다.

 

결과는 조건의 한 가능성이라서

과거의 원인에 그 결과가 미리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말이 안된다.

그러나 결과가 미리 존재하지 않는다면 대체 원인이란 왜 있으며

만약에 결과가 먼저 있었다면 대체 조건은 어디에 쓸 것이냐?

 

이 말씀은 양자역학에서 현재의 과거 선택 과정 관찰이 최종 인과를 확정짓는다는 말과 동일하다.

놀랍지 않은가? 이 게송은 현재의 관찰이 인과를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말이다.

 

세친 보살의 유식 삼십송의 15번째 게송에서도 윤회의 모습을 추측해 볼 수 있는 말이 나타난다.

 

依止根本識 五識隨緣現

근본식(아뢰야식)이 멈추는 것에 의지하여

전오식이 연을 따라 드러나니

 

근본식이 멈추는 것이란 표현은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관찰을 통해서 결정되면서

가능성으로서의 업은 사라면서(확률은 붕괴되고) 

현재 새로운 사건이 감각된다 (전오식)는 것을 표현한 것 같다.

그리고 이 전오식에 대응해서 다시 '내가(말라식)' 선택을 하게 되고 그게 다시 아뢰야식에 또 하나의 인으로써 저장이 된다는 것이다.

 

아직은 확정적이지 않지만

이런 생각은 많은 시사점이 있는 것 같다.

전생에 업은 있지만 내가 현재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그 결과가 결정된다는 것은

미래란 정해져 있지 않고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또한 나라는 것의 역할이 어쩌면 '관찰'에 국한 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관찰자가 아니라 플레이어로 간주하지만...

그리고 게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관찰을 멈추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관찰은 내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래서 나라는 생각을 벗어나라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첨부: 양자 역학의 이중 슬릿 실험.

 

1) 관찰은 확률을 인과로 만들어 놓는다!

 

만약 우리가 어떤 현상의 선택 과정을 관찰을 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확률적으로 분포하지만

만약 우리가 어떤 현상의 선택 과정을 관찰을 한다면 앞서의 확률은 붕괴되고 인과가 정연히 나타나는 현상을 보여주었다.

확률적으로 분포한다는 것은 여러 가능한 인과가 중첩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2) '과거 선택'에 대한 관찰이 인과를 결정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만약 사건의 시작이 1억년 전에 선택된 거라 하더라도

현재의 내가 그 과정을 관찰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관찰하지 않으면 확률적으로 나타나고

관찰하면 인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갖고 있는 시간의 흐름이란 관념을 흔들어 버린다.

1억년 전에 선택된 어떤 일이라면 우리는 마치 그것이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 현상은 우리가 그 선택 과정을 관찰하기 전 까지는 그 인과가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선택의 과정을 '관찰'하여야 비로서 인과가 확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자 역학의 실험 결과를 우리 삶과 연결지어서 이해하려면

위 실험에서 나타나는 개념들을 명확하게 이해해야만 한다.

즉 과정 관찰이란 무엇인가? 결과를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확률적으로 분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명확히 이해하여야 한다.

 

과정의 관찰이란 무엇일까? 관찰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그 사건에 개입을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현재 그 사건의 과정을 관찰(개입)하지 않는다면 여러 가능성들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가능성이 중첩된다는 것은 결과가 있다는 것이며 인과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여러 가능성들이 '동시에' 존재해서 서로 상호 영향을 주며 겹쳐지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중첩된 결과를 하나의 인과로 설명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한편 결과라는 것도 사실은 하나의 과정이며 또 하나의 관찰에 불과하다, (세상에 끝이란 없기 때문에)

그렇지만 이 결과의 관찰은 또 하나의 과정의 관찰임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과정 관찰과 이 관찰의 차이는

그 중간에 결과에 영향을 주는 선택이란 것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편 결과가 나타나는 과정에서 선택을 관찰하면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로 나타난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이다.

관찰이란 행위를 통해서 과거의 선택이 명확해지니 결과가 하나로 나타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왜 관찰을 하지 않으면 결과가 확률로 나타나는가라는 문제는 재미 있는 주제거리가 된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관찰자는 무엇이며 관찰이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관찰자는 관찰이란 행위를 통해서 사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데

우리는 물리학자들이 충분히 똑똑하므로 이 문제는 없다고 가정하자.)

 

현재의 관찰자는 과거에 있었던 선택에서 그 선택되는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

그렇다면 현재 선택이 이루어 지더라도 현재란 비록 아주 짧은 과거라도 그대로 과거가 되기 때문에

(관찰과 선택의 선후 관계는 선택이 먼저 관찰이 후이다. 동시적이라 할 수도 있다?)

'현재'의 선택에도 관찰자는 개입할 수 없다.

하지만 실험을 고안한 관찰자는 슬릿 형태 및 위치 그리고 슬릿의 갯 수 등에 개입할 수 있다.

어쨌든 주어진 시스템 안에서 명확하게 관찰자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과거에 선택한 사실을 관찰함으로써 현재 및 미래의 인과를

어떤 하나로 결정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는 물리학자가 아니므로 이런 결과를 보면서 여러 실험을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물리학자들이 이미 했을 터인데 일반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결과일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먼저 삼중 슬릿 실험인데 이건 이미 했더군요.

그런데 제가 제안해 보고 싶은 것은 슬릿에 통과 여부를 확인하는 디텍터를 

세 슬릿 중 한 곳만 적용 시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하는 거였는데

논문에 나와 있는 내용들을 보니 통과 여부의 불확실한 만큼 간섭이 발생한다는 것으로 정리가 되는 것 같더군요.

 

그리고 상보성 문제에 대해서 좀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는데

이건 불교의 능(能)과 소(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능이 파동(에너지)적인 특성이라면 소는 입자적인 특성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입자라고 하면 덩어리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이 입자는 에너지를 갖고 있죠.

따라서 전자란 것은 물질로 보면 '입자'요 에너지로 보면 '파동'같은 두 성질을 모두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상보성'을 갖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아마추어의 가설을 증명하려면

절대온도 0도 부근에서 이중 슬릿 실험을 해 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대 온도 0도 부근이란 전자가 자체에 에너지가 거의 없는 상태일 겁니다.

그렇다면 전자의 에너지적인 특성이 대폭 감소하기 때문에 간섭 특성이 엄청나게 줄어들지 않을까요?

즉 간섭 특성이 온도에 따라서 변화할 거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그와 같은 특성이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몸은 입자적인 특성을 갖고 있고 우리가 자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파동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 파동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것을 식이라 하지요.

그래서 우리가 식에 취착을 하면 몸을 받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삶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