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경의 보현보살장에서는
'환으로 환을 닦는다.'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아는 자와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라는 내용에 대해
보다 선명하게 설명을 해 보려고 하는데 문득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이미 옛 조사님들께서 깊은 지혜로 다 비추어 주신 것을 다시한번 제 나름으로 설명해 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꿈 같이 알라고 한다면
어떻게 꿈 속 닦음으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인가요? 하고 보현보살님께서 부처님께 묻는 것입니다.
즉 우리 현생의 삶이 꿈이라면 꿈 속에서 수행을 한 들 그것 조차 꿈인데
그래서 꿈 속 깨달음이래 봐야 결국 꿈속 아닙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다음과 같은 나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습니다.
나라고 하는 것이 만약 나의 착각이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한다면
그 허상인 '나'를 근거로 수행을 해서 그 내가 깨닫는다 해도
원래 내가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그 꿈속의 나에게 깨달음이란 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저는 앞의 글에서 아는 자와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우리에게 '아는 자'가 있는 한에는 나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상한 말로 들리시나요?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대상을 인식하고 '생각을 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이비설신이 작동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을까요?
저는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이순간입니다.
감각은 하되 생각은 내지 않는 것입니다. 가면 갈 뿐...
그런데 우리는 마음을 내지 말라고 하면, 마음을 내지 않을 '생각'을 합니다.
그냥 내려 놓지를 못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란 방하착(放下着)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무념(無念)이 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입니다.
'나'라는 것이 하나의 환(幻)이라면 '마음을 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chanda)'도 환입니다.
비록 모두가 환이라 하더라도, 무명 중생인 우리는 환에 의해서 수행을 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환으로써 환을 닦게 되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경지에서 본다면 심지어는 깨달음이란 개념 조차도 환(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닦다가 보면 부동(不動)이라고도 하고 고불(古佛)이라고도 하는 자리가 드러나지 않을까요?
본각(本覺)이 불각(不覺)임을 '알게'되지 않을까요?
먼저 앙굿따라 니까야에 나오는 세존의 가르침입니다.
A3:32 아난다 경(Ānanda-sutta)
“사리뿟따여, 그러면 이와 같이 수행하여야 한다.
‘의식을 이 몸에 대해서 ‘나’라는 생각과 (ahaṅkāra) ‘내 것’이라는 생각(mamaṅkāra)과 자만의 잠재성향(mānānusayā)이 일어나지 않고 밖의 모든 개념들에 대해서도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이 일어나지 않으며, ‘나’라는 생각과 ‘내 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이 일어나지 않는 그런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에 들어 머물리라.’라고. 사리뿟따여, 이와 같이 수행하여야 한다.
‘imasmiñca saviññāṇake kāye ahaṅkāramamaṅkāramānānusayā na bhavissanti, bahiddhā ca sabbanimittesu ahaṅkāramamaṅkāramānānusayā na bhavissanti, yañca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upasampajja viharato ahaṅkāramamaṅkāramānānusayā na honti tañca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upasampajja viharissāmā’ti. Evañhi kho, sāriputta, sikkhitabbaṃ.
kāra , (m.), deed; service; act of homage
bhavissanti :The future tense, vibhatti is understood
vibhatti : [f.] division; classification
원각경 한글 번역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원각경은 저도 언젠가 인터넷에서 찾아서 정리한 것입니다.
사경을 해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_()_
원각경 제2. 普賢菩薩章 (보현보살장)
수행의 실제
그때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며 오른 쪽으로 세 번 돌고 두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말씀 드렸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원하옵니다.
이 모임의 여러 보살들을 위하시며, 또 말세의 모든 중생들로서 대승을 닦는 이들을 위하소서.
이 원각의 청정한 경계를 듣고 어떻게 수행하여야 합니까?
세존이시여, 만일 저 중생이 환(幻)과 같은 줄 아는 자이면 몸과 마음도 또한 환이거늘 어떻게 환으로서 환을 닦습니까?
만일 모든 환성(幻性)이 일체가 다 멸했다면 곧 마음이 없으니 누가 수행함이 되며, 어찌하여 또 수행함이 환과 같다고 하겠습니까?
만일 중생들이 본래 수행하지 않는다면 생사 가운데 항상 환화(幻化)에 머물러 있어 일찍이 환 같은 경계를 요지(了知)하지 못하리니, 망상심으로 하여금 어떻게 해탈케 하겠습니까?
원하오니, 말세의 일체 중생들을 위하소서. 무슨 방편을 지어서 점차 닦아 익혀야 중생들로 하여금 온갖 환을 영원히 여의게 하겠습니까?"
이렇게 말씀 드리고 오체를 땅에 대어 절하며, 이같이 세 번 거듭 청하였다.
이때 세존께서 보현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재선재로다, 선남자여.
그대들이 능히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들을 위하여 보살의 환 같은 삼매를 닦아 익힐 방편과 점차를 물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환을 여의게 하는구나.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그때 보현보살이 가르침을 받들어 기뻐하며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들었다.
"선남자여,
일체 중생의 갖가지 환화가 모두 여래의 원각묘심(圓覺妙心)에서 남이, 마치 허공 꽃이 허공에서 생긴 것과 같다.
환화는 멸할지라도 허공의 본성은 멸하지 않나니, 중생의 환(幻)과 같은 마음도 환에 의해 사라지나 모든 환이 다 사라졌다 하더라도 본각(本覺)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느니라.
환에 의해 각(覺)을 말함도 또한 환이며, 만일 각이 있다고 말할지라도 오히려 아직 환을 여의지 못한 것이며, 각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또한 그러하다. 이 까닭에 환이 멸함을 이름하여 부동(不動)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보살과 말세 중생들이 응당 일체 환화인 허망한 경계를 멀리 여의어야 하나니,
멀리 여의려는 마음을 굳게 집착하는 까닭에
마음이 환 같은 것도 또한 멀리 여의며,
멀리 여읜 것이 환이 된 것도 또한 멀리 여의며,
멀리 여읨을 여의었다는 환까지도 또한 멀리 여의어서,
더 여읠 것이 없게 되면 곧 모든 환을 제(除)하리라.
비유하면 불을 피울 때 나무를 서로 비벼 불이 붙어 나무가 타서 없어지면 재는 날아가고 연기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과 같다.
환으로써 환을 닦는 것도 이와 같아서 모든 환이 비록 다하나 단멸에 들지 않느니라.
선남자여,
환인 줄 알면 곧 여읜지라 방편을 짓지 아니하고,
환을 여의면 곧 깨달음이라 점차도 없느니라.
知幻即離 不作方便
離幻即覺 亦無漸次
일체 보살과 말세의 중생들이 이에 의해 수행할지니, 그리하여야 모든 환을 영원히 여의리라."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普賢汝當知 보현아, 그대는 마땅히 알아라.
一切諸衆生 일체 중생들의
無始幻無明 비롯함이 없는 환인 무명이
皆縱諸如來 다 모든 여래의
圓覺心建立 원각심에서 생겼느니라.
猶如虛空華 마치 허공꽃이
依空而有相 허공에 의해 모양이 있다가
空華若復滅 허공 꽃이 만일 사라져도
虛空本不動 허공은 본래로 요동치 않음과 같아서
幻縱諸覺生 환이 원각에서 생겨났다가
幻滅覺圓滿 환이 멸하면 각이 원만하나니
覺心不動故 본각의 마음은 요동치 않는 까닭이니라.
若彼諸菩薩 만일 모든 보살과
及末世衆生 말세 중생이
常應遠離幻 항상 응당 환을 멀리 여의면
諸幻悉皆離 모든 환을 다 여의리니
如木中生火 나무에서 불이 일어남에
木盡火還滅 나무가 다하면 불도 멸함과 같으니라.
覺則無漸次 깨달음은 점차가 없으며
方便亦如是 방편도 또한 그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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