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S12:63 아들의 고기 경에서 사식을 공부해 보면서 건진 가장 큰 수확은 촉(phassa)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실하게 인식한 것입니다.
특히 삼사화합(三事和合 tiṇṇaṁ saṅgati phasso)이 발생하는 촉에서 근-경-식이 만날 때
식(識 viññāṇa)이란 것이 바로 견해를 기반으로 한다는 중요한 실마리이자 어찌보면 당연한 실마리를 잡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 몸이 나라는 유신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 몸을 근거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즐거워하고 괴로워합니다 (느낍니다).'
이번 공부를 통해서 A6:61 중간 경(Majjha-sutta)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에는 바느질하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바느질하는 여인은 갈애에서 일어나는 극단이라는 재료로 바느질을 해서 윤회를 있게하는 존재입니다.
이 경에서는 6명의 장로가 『숫따니빠따』 「도피안 품」의 「멧떼야의 질문」에 나타나는 게송에 대해서 의견을 피력합니다.
먼저 게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빨리어 원문 및 우암의 번역)
‘Yo ubhonte viditvāna, 두 극단을 보는 자는
majjhe mantā na lippati; 중이며 극단이 아니어서 오염되지 않네
Taṃ brūmi mahāpurisoti, 그를 대인이라 부르노니
sodha sibbini maccagā’ti. 잘 내려 놓았다네 바느질하는 것을 극복하여
각묵스님 번역
“지혜로운 자는 양극단을 알고서
중간을 더럽히지 않네.
나는 그를 대인이라 부르노니
그는 여기서 바느질하는 여인을 넘어섰노라.”
이 게송에서 어떤 것이 첫 번째 극단이고 어떤 것이 두 번째 극단이며, 어떤 것이 중간이고 어떤 것이 바느질하는 여인인가에 대해서 여섯명이 각자 의견을 피력한다.
각 장로가 제시한 두 가지 극단 및 중간(중도) 그리고 바느질하는 여인은 아래와 같습니다.
1.감각접촉(觸 phasso), 감각접촉이 일어남(phassasamudayo), 감각접촉의 소멸 (phassanirodho), 갈애 (taṇhā)
2. 과거(atīta), 미래(anāgata), 지금 이 순간(paccuppanna), 갈애 (taṇhā)
3.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adukkhamasukhā), 갈애 (taṇhā)
4. 정신(名 nāma), 물질(色 rūpa), 알음알이(識 viññāṇa), 갈애 (taṇhā)
5. 여섯 안의 감각장소(cha ajjhattikāni āyatanāni), 여섯 밖의 감각장소(cha bāhirāni āyatanāni), 알음알이(識 viññāṇa), 갈애 (taṇhā)
6. 자기 존재가 있음(有身, sakkāyo), 자기 존재가 있음의 일어남(sakkāyasamudayo), 자기 존재가 있음의 소멸(sakkāyanirodho), 갈애 (taṇhā)
모두 공통적인 것은 바느질하는 여인이 갈애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극단 및 중도는 서로 견해가 다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여쭤보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첫번째 장로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십니다.
10.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觸]이 첫 번째 극단이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이 두 번째 극단이며 감각접촉의 소멸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이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된다.”
Bhagavā etadavoca: “phasso kho, bhikkhave, eko anto, phassasamudayo dutiyo anto, phassanirodho majjhe, taṇhā sibbinī; taṇhā hi naṃ sibbati tassa tasseva bhavassa abhinibbattiyā. Ettāvatā kho, bhikkhave, bhikkhu abhiññeyyaṃ abhijānāti, pariññeyyaṃ parijānāti, abhiññeyyaṃ abhijānanto pariññeyyaṃ parijānanto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hotī”ti.
저는 이 지점에서 왜 감각접촉이 다른 것들에 비해서 가장 궁극적일 수 밖에 없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아들 고기의 경 공부를 통해서 감각접촉이 가장 궁극적일 수 밖에는 없겠구나하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phassa를 감각접촉이라고 번역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감각접촉이라 하면 왠지 근과 경의 접촉이란 느낌이 들지 식의 중요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파악한 촉이 중요한 이유는 주어진 근-경에 대해서 가치판단 기준이 작동하는 곳 (식 viññāṇa)이기 때문입니다.
A6:61 중간 경(Majjh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많은 장로 비구들이 탁발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원형 천막에 함께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을 『숫따니빠따』 「도피안 품」의 「멧떼야의 질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양극단을 알고서
중간을 더럽히지 않네.
나는 그를 대인이라 부르노니
그는 여기서 바느질하는 여인을 넘어섰노라.”
‘Yo ubhonte viditvāna, 두 극단을 보는 자는
majjhe mantā na lippati; 중으로 극단이 아니어서 오염되지 않네
Taṃ brūmi mahāpurisoti, 그를 대인이라 부르노니
sodha sibbini maccagā’ti. 잘 내려 놓았다네 바느질하는 것을 극복하여
yo: [nom. sin. of ya] any person; whoever
ubho : both
viditvā : [vindati の ger.] 知りて
mantā :Wisdom
lippati :see limpati, limpati: [lip + ṃ-a] smears; stains; anoints
lip , (梵lip / limp)﹐【字根II.】涂(칠할 도 더럽히다 to smear)。
Brūmeti ,[possible Caus. fr. brūti, but as Geiger, P.Gr. 1412, rightly remarks “not critically sound”] to say
brūti : [brū + e] says; speaks
brū , =say=说
Sodhaka ,[fr. sodheti] one who cleanses, , corrects, or purifies, 净化者,纠正者,洁净者
sodheti : [sudh + e] makes clean; purifies; corrects; clears a debt
sujjhati : [sudh + ya] becomes clean or pure 浄まる, 清まる
suddha : [pp. of sujjhati] become clean or pure
dhā , (梵dhā, dadh)﹐【字根I.】放(to put),忍受(to bear)
sibbinī :f., sibba n., sibbana-magga m. [<sīv] 두개골의 봉합선.
sibbana : [nt.] sewing 재봉, 刺縫. -magga 봉합선
Sibba ,(nt.) [fr. sīv] a suture of the skull (두개골)
sibbati : [siv + ya] stitches; sews
si :[=asi] atthi の 2sg, 黏附於、坚持(to cling to),依赖(to depend upon),绑(to bind)
vati: [f.] a fence.。 籬
vāti, (vā + a) blows; emits some smell.。 吹く, 香る
Vati,2 (f.) [fr. vṛ, cp. Sk. vṛti] a choice, boon, 围墙,栅栏
macca :a. m. [marati の grd. cf. Sk. martya] 死ぬベき; 人, 人間
accagā : [pret. of ati-gacchati] he surpassed, overcame
acceti : [(1. ati + i + a); ( 2. acc + e)] 1. passes time; gets over. 2. honours; trespects.
mā :Not, do not。
mā :The moon
sibbinimaccagā 두개골이 넘어서지 못하는 것 아래 있다!
영어
He who knows both ends and has no secret plans in the middle,
Is a Great Man. He has gone beyond the seamstress
도반들이여, 여기서 어떤 것이 첫 번째 극단이고 어떤 것이 두 번째 극단이며, 어떤 것이 중간이고 어떤 것이 바느질하는 여인입니까?”
Katamo nu kho, āvuso, eko anto, katamo dutiyo anto, kiṃ majjhe, kā sibbinī”ti?
2. 이렇게 말하자 어떤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Evaṃ vutte, aññataro bhikkhu there bhikkhū etadavoca:
“도반들이여, 감각접촉[觸]이 첫 번째 극단이고 감각접촉이 일어남이 두 번째 극단이며 감각접촉의 소멸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phasso kho, āvuso, eko anto, phassasamudayo dutiyo anto, phassanirodho majjhe, taṇhā sibbinī; taṇhā hi naṃ sibbati tassa tasseva bhavassa abhinibbattiyā. Ettāvatā kho, āvuso, bhikkhu abhiññeyyaṃ abhijānāti, pariññeyyaṃ parijānāti, abhiññeyyaṃ abhijānanto pariññeyyaṃ parijānanto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hotī”ti.
nibbattiya = ( nibbattiyati + a ) 字尾: ati<>a 主动态(act.),中间态(mid.)%单数(s.)%祈使/命令(imp.),过去式(aor.)%人称(2),人称(1) [ni+vattu=vatu+ṇe+ya+te] 윤회에 들게하다.
nibbatti [ni+vattu=vatu+ī] [aor. of nibbattati] was born; resulted; arose.
nibbattati : [ni + vat + a] is born; results; arises, 生, 發生, 生起
vattati : [vat + a] exists; happens; takes place; goes on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것으로 꼽으시는 것 같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부처님께 이 질문을 드리자 바로 이 대답을 해 주시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내 이해로는 이 촉에서 처음으로 ‘나’를 중심으로 계교를 하기 때문이다. 촉이란 과거 전생의 경험이 축적된 sanna가 작용해서 그 가치판단 기준으로 주어진 육외입처 중에서 그것에 부합하는 대상을 찾아서 주목을 하고 그 주목된 대상을 내 현생의 몸이 나라는 생각하는 가운데에서 유불리를 따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접촉이 첫째 극단이 된다. 이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두 번째 극단이 접촉의 일어남이라고 하셨다. 왜 이렇게 이야기 하셨을까? 감각접촉이 극단인데 왜 감각접촉의 일어남이 극단인가? 극단이란 무엇인가? 나라는 존재가 생기게 되는 원인?
접촉은 있지만 접촉의 일어남이 없을 수도 있는가? 촉은 삼사화합이다. 근-경-식의 만남이다. 그래서 근-경-식이 모두 있지만 촉의 발생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삼매에 드는 것이 아닐까?
anta : [m.] the end; goal; top. nt. intestine, 終極, 目的, 極限, 辺, 極端, 腸, 小腸
3. 이렇게 말하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과거(atīta)가 첫 번째 극단이고 미래(anāgata)가 두 번째 극단이며 지금 이 순간(paccuppanna)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atīta : [adj.] past; gone by. (m.), the past
anāgata : [na+āgata] not come yet. (m.), the future
āgata : [(pp. of āgacchati), nt.] coming
gata : [pp. of gacchati] gone; moved; walked; passed; arrived at; having come to a condition
paccuppanna: [pp. of paṭi+uppajjati] [adj.] existing; present, 已現起的, 已現前的
uppajjati : [u + pad + ya] to be born; arises
paṭi , (adj.) prefix having the meanings; against; opposite, towards, in opposition to
4. “이렇게 말하자 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즐거운 느낌이 첫 번째 극단이고 괴로운 느낌이 두 번째 극단이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adukkhamasukhā)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5. “이렇게 말하자 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정신[名 nāma]이 첫 번째 극단이고 물질[色 rūpa]이 두 번째 극단이며 알음알이[識 viññāṇa]가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Evaṃ vutte, aññataro bhikkhu there bhikkhū etadavoca: “nāmaṃ kho, āvuso, eko anto, rūpaṃ dutiyo anto, viññāṇaṃ majjhe, taṇhā sibbinī; taṇhā hi naṃ sibbati tassa tasseva bhavassa abhinibbattiyā. Ettāvatā kho, āvuso, bhikkhu abhiññeyyaṃ abhijānāti, pariññeyyaṃ parijānāti, abhiññeyyaṃ abhijānanto pariññeyyaṃ parijānanto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hotī”ti.
이 말은 모든 것이 정신적인 인식작용이라는 생각이 한 극단이라면 모든 것은 물질에 불과하다는 것 또한 극단이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우리가 극단으로 인식하는 대상들이다. 정신에 대한 견해 혹은 물질에 대한 견해가 바로 극단인 것이다. 그 극단의 견해는 사실은 식이다. 그렇게 때문에 식은 극단이기도 하지만 또한 중도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식이 중도라 할 수 있다???
이 두 극단 모두 현생의 현상에 집중하고 있다. 이 다음에는 현생과 전생으로 비교하고 있다.
6. 이렇게 말하자 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cha ajjhattikāni āyatanāni 현생)가 첫 번째 극단이고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가 (cha bāhirāni āyatanāni 과거생)가 두 번째 극단이며 알음알이가[viññāṇa]가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Evaṃ vutte aññataro bhikkhu there bhikkhū etadavoca: “cha kho, āvuso, ajjhattikāni āyatanāni eko anto, cha bāhirāni āyatanāni dutiyo anto, viññāṇaṃ majjhe, taṇhā sibbinī; taṇhā hi naṃ sibbati tassa tasseva bhavassa abhinibbattiyā. Ettāvatā kho, āvuso, bhikkhu abhiññeyyaṃ abhijānāti, pariññeyyaṃ parijānāti, abhiññeyyaṃ abhijānanto pariññeyyaṃ parijānanto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hotī”ti.
이 번역에서는 ajjhattikāni āyatanāni를 내입처로 bāhirāni āyatanāni를 외입처로 풀었다. 그러나 내 이해로는 이건 현생과 전생이다. 극단은 그 내입처 외입처로 혹은 현생과 전생으로 인식된 것에 대한 항상함 혹은 허무함 등이 극단이다. 식이 중도라 하신 것은 중도는 식에 있음 (있지 않음?) 즉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해 주신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식이란 세세생생 연결되어 온 것이다. 그래서 중도라 하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7. 이렇게 말하자 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有身, sakkāyo)이 첫 번째 극단이고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의 일어남(sakkāyasamudayo)이 두 번째 극단이며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의 소멸(sakkāyanirodho)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합니다. 도반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압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됩니다.”
현재 몸이 있음이 첫 번째 극단이요 또 몸이 일어남이 두 번째 극단이다. 즉 몸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첫 번째 극단이고, 이런 견해를 갖고 있는 자에게 몸으로 드러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 두 번째 극단이다.
8. 이렇게 말하자 또 다른 비구가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우리 모두는 각자의 영감에 따라 설명을 하였습니다. 오십시오, 도반들이여, 우리는 세존께 갑시다. 가서 세존께 이러한 뜻을 아뢰어 세존께서 저희들에게 설명해주시는 대로 호지합시다.”
“그렇게 합시다, 도반이여.”라고 장로 비구들은 그 비구에게 응답했다.
9. 그때 장로 비구들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장로 비구들은 이제까지 있었던 대화를 빠짐없이 모두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누구의 말이 잘 말한 것[金言]입니까?”
“비구들이여, 그대들 모두가 방편적으로 잘 말하였다. 나는 『숫따니빠따』 「도피안 품」의 「멧떼야의 질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했다.
“지혜로운 자는 양극단을 알고서
중간을 더럽히지 않네.
나는 그를 대인이라 부르노니
그는 여기서 바느질하는 여인을 넘어섰노라.”
이제 그대들은 그것을 들어라. 듣고 잘 마음에 잡도리하라. 나는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장로 비구들이 세존께 대답했다.
10.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감각접촉[觸]이 첫 번째 극단이고 감각접촉의 일어남이 두 번째 극단이며 감각접촉의 소멸이 중간이고 갈애가 바느질하는 여인이다. 왜냐하면 갈애가 그것을 기워서 이런저런 존재로 태어나게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렇게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고 철저하게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알 때 지금 여기에서 괴로움을 끝내게 된다.”
Bhagavā etadavoca: “phasso kho, bhikkhave, eko anto, phassasamudayo dutiyo anto, phassanirodho majjhe, taṇhā sibbinī; taṇhā hi naṃ sibbati tassa tasseva bhavassa abhinibbattiyā. Ettāvatā kho, bhikkhave, bhikkhu abhiññeyyaṃ abhijānāti, pariññeyyaṃ parijānāti, abhiññeyyaṃ abhijānanto pariññeyyaṃ parijānanto diṭṭheva dhamme dukkhassantakaro hotī”ti.
'부처님의 가르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존재를 있게하는 간답바란 무엇일까? (0) | 2016.03.10 |
---|---|
S47:8 요리사 경 - 보았다면 내려 놓고 가라! (0) | 2016.03.09 |
식식(識食)의 비유 - S12:63 아들의 고기 경 (0) | 2016.03.03 |
의도식의 비유 - S12:63 아들의 고기 경 (2) | 2016.03.02 |
촉식의 비유 - S12:63 아들의 고기 경 (0) | 2016.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