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S47:8 요리사 경 - 보았다면 내려 놓고 가라!

우암(雨庵) 2016. 3. 9. 22:25

암이 이해한 요리사 경의 가르침은

우리가 현생에서 행한 신구의 삼업이 내 전체 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 지를 잘 알아야(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생에서 행동한 신구의 삼업이란 사식(四食 ahara) 입니다. 그래서 경의 이름이 요리사 경입니다. 이 가르침은 아직 중도의 삶에 들어가기 전에 세속의 삶이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라는 말씀으로 우암은 이해합니다.


우암이 이해한 육근 수호의 가르침은

우리가 현생에서 행한 신구의 삼업이 내 전체 업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었다면 (요리사 경의 내용),

nimitta(표상)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개념에 물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가르침은 팔정도(중도; 물들지 않음)의 삶을 살라는 말씀이라고 우암은 이해합니다.


이 두 가르침의 내용을 합쳐보면 "보았다면 내려놓고 가라! "입니다.


우암이 요리사 경에 주목한 이유는 bhattu nimittaṃ na uggaṇhāti라는 문장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한글로 번역된 경에서 '자기 주인의 표정(nimitta)을 살피지(uggaṇhāti) 못한다(na)'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의 내용상 'nimittaṃ na uggaṇhāti'라는 행위는 요리사가 잘못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근 수호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는 정 반대의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cakkhunā rūpaṃ disvā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이 의미는 nimitta(표상)를 지니는 자 (gāhī; gaṇhāti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말씀이십니다.


즉 요리사 경에서는 nimitta를 uggaṇhāti (배우다 , 간수하다)하라고 하시고

단속 경에서는

nimitt(표상)을 배우고 간수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가르쳐주신 것 같다는 말입니다.


이 두개의 모순되어 보이는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가 제가 갖고 있던 의문이었습니다.


두 경에서는 표상이란 단어는 nimitta로 똑 같고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단어 역시 gaṇhāti에 기반하는 단어들입니다.

uggaṇhāti와 gāhī는 gaṇhāti에서 파생한 단어들입니다.

uggaṇhāti는  gaṇhāti를 일으키고로 볼 수 있도

gāhī는 gaṇhāti를 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동일한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정 반대되는 가르침을 주신 것일까요?

아니면 두 가르침이 펼쳐지는 경지가 다르기 때문에 (대기설법이라서)

듣는 자의 수준에 맞게 설해주시다 보니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하신 것을까요?


이런 상황을 명확하게 짚어내기 위해서는 요리사 경의 비유에서

요리사(sūda), 주인(bhattu), 표정(nimitta), 왕(rājānaṃ), 대신(rājamahāmattaṃ), 음식의 맛 등이 갖는 의미가 명확해야 합니다.


우암이 주목한 부분은 요리사 경의 내용에서는  경계(음식의 맛)에 대해서 (업의) 주인과 요리사(현생의 나)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리사는 요리를 하는 자로서 어떤 맛을 만들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주인에게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든 요리가 주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국면에서 요리사가 '맛을 안다!'는 것은 표상(nimitta)을 uggaṇhāti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uggaṇhāti의 의미는 주인이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먼저 요리사라는 단어인 sūda란 '묶임을 만들어 내는 자'라고 우암은 읽었습니다

sū , / su, =generate=产生;=enliven=使有朝气;=impel=催促

dā , 1.(=dad),(= 巴dad, dā)给,惠施(give);2./ di, =divide=划分;=share=分配,共用3./ di, =bind=束缚;4.=clear=清澈


요리사란 단어는 빨리어에 매우 많습니다. rasaka, sūpika, āḷārika, odanika, pācaka, sūda 등입니다

이 중에서  sūda를 사용하셨을 때는 그 의미를 고려하셨을 것이라고 우암은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리사는 경의 의미상 우리 중생을 뜻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sūda를 '묶임을 만들어 내는 자'라고 풀었습니다.


한편 주인이라고 나타나는 단어인 bhattu를 우암은 업의 주인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렇게 읽은 근거는 bhattu의 발음이 vattu와 유사하고 vattu의 의미는 말을 하는 자이니 '마음에게 판단을 내려주는 역할을 하는 자' 라고 읽은 것입니다. 또한 윤회하는(vatta) 자라고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주인은 식식에서 나타나는 왕(raññā
)라고 생각됩니다.


bhattu : [m.] a husband; one who support or brings up, 丈夫,支援者,培养者

vattu: [m.] one who speaks or says; sayer


nimitta의 의미는

'측정하는 것을(mitta) 아래에 놓다(ni)'이니 계교에서 풀려나다란 뜻이라고 봅니다.

아미타에서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mitta란 측정하다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ni는 아래에 놓여 있어서 지배를 받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반대로 내려 놓은 이란 뜻으로 풀려남도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이해한 바로는 ni 다음에 오는 단어가 결과라면 그 결과 아래에 있는 것이고

과정이라면 그 과정에서 풀려난다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우암의 '감'입니다. 아직 확인이 더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분리를 나타내는 vi에도 적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즉 vi 다음에 결과가 오는가 아니면 과정을 나타내는 동사가 오느냐에 따라서 번역이 정 반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mitta란 (손익을) 측정한다는 과정의 문제이므로 측량하는 것에서 풀려났다는 것이죠.

즉 nimitta란 나에게 이익인지 손해인지 판단내린 것에서 풀려난 형상입니다.

그래서 한문 번역자 분들은 형상(相)으로 번역한 것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해 생각(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물건 자체의 형상이란 말입니다.

한글로는 표상이라고 흔히 번역됩니다.


nimitta [ni+mā+ta]
mā , (梵mā)﹐【字根I.】测量(to measure)


nimitta를 이렇게 본 이유는 nimitta는 uggaṇhāti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nimitta가 (제가 상상한 것과 달리) 이미 손익의 문제를 계교한 것이라면 그건 이미 uggaṇhāti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nimitta는 판단이 작동하기 전의 상태입니다.


왕(rājānaṃ)이란 단어는 말 그대로 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오염된으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rajanaṃ: Colouring, dye
raj , 1.(= rj)指导(direct);2.(=rañj)(巴raj), =color=著色, 粉饰
raja : [m.; nt.] (mano-group), dust; dirt; pollen; defilement; impurity, [Sk. rajaḥ] 塵, 塵垢, 不浄


(왕이란 단어에서 주목할 점은 raññā를 사용하지 않고 rājā를 사용하셨다는 점입니다.)


또한 rājamahāmattaṃ을 대신으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 오염된 자아로 (rajam + aham + atta)로 볼 수 있습니다.

또는 나에게 오염되어 취한 (rajam + aham + matta)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nānaccayehi를 ‘갖가지 맛있는’으로 볼 수 있겠지만 각각 쌓여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우암은 cayehi를 쌓여있는 것으로 읽었고 그래서 오온의 khandha로 읽었습니다. 즉 cayehi란 쌓여있는 것이란 의미이니 온(蕴)과 같은 의미 입니다. 그래서 각각의 색수상행식 오온에게로 읽었습니다. 이런 음식을 먹는 것이 ahara를 khāda(삼키는; 이해해서 묶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음식을 만들고 삼키는 행위는 전생의 업연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음식은 전생의 인연과 관계된 사람들이 먹는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주어진 업의 묶임에서 풀려나는 것이겠지요.


한편 음식의 맛은 여덟가지로 나타납니다.

ambilaggehipi, tittakaggehipi (덩어리진 음식)

kaṭukaggehipi, madhuraggehipi (촉식)

khārikehipi, akhārikehipi (의도식)

loṇikehipi, aloṇikehipi (식식)


이 부분의 각묵스님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 것, 쓴 것, 자극이 있는 것, 단 것, 얼얼하게 매운 것, 맵지 않은 것, 짠 것, 싱거운 것


우암의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덩어리진 음식:  상해(죽음)가 붙어서 오는 것, 머무는 것으로 오는 것 (몸?)
촉식:               아픔(허망한 것으로)으로 오는 것, 멍에가 아닌 것으로 오는 것
의도식:            행위자가 있는 것, 행위자가 없는 것 – 의도에 따라서
식식:               짠 것, 짜지 않은 것 – 판단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짐.


이 여덟가지 음식의 맛은 앞서 아들의 고기 경에서 살펴본 사식(四食)에 대해서 각각 부정적- 긍정적(?) 으로 비유하신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이렇게 보는데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 의도식 부분입니다.

'소금기 혹은 alkali (알카리)적 특성이 있는'이란 단어인 khārika를 발음이 거의 같은 Kārikā로 찾아보니

Kārikā는 kāraka로도 사용되는데 그 뜻이 행위자란 뜻이었습니다.

즉 맛의 5 및 6번째 특성이 행위자가 있고 없고의 뜻이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의도와 명백하게 관련이 있을 수 밖에는 없어 보입니다. 즉 의도식과 관계된 것이란 말입니다.


khārika : [adj.] alkaline, 鹼 (소금기 감)

Kārikā ,see kāraka. kāraka (m.), the doer, -- f. kārikā


또한 7 및 8 번째 맛인 소금기에 관련된 맛에서는

한 웅큼의 소금을 컵에 담으면 짜지만 갠지스강에 담으면 짜지 않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떠오르더군요.

이는 내 눈 앞의 경계를 이번 생의 문제로만 본다면 괴롭지만

세세생생의 결과로 본다면 괴롭지 않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라고 우암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는 명백히 판단(識 viññāṇa)의 문제입니다. 즉 식식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촉식에 해당하는 kaṭukaggehipi, madhuraggehipi 는

kaṭuka는 말 그대로 고통스러운 느낌을 주는도 될 수 있고 허망하다는 것 (ka + tuccha)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madhuraggehipi는 달콤한 것도 될 수 있지만 멍에가 아닌 것 (ma + dhura)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앞서 아들의 고기경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촉에서 나타나는 식은 견해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허망하다 혹은 멍에가 아니다라는 견해에 대한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앞서 살펴본 식식, 의도식에서는 두 맛이 서로 대비를 이루고 있어서 이 비유 역시 그러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고통스러움과 달콤함으로 맛에서 대비를 이루고 있고, 허망함과 멍에가 아님으로 대비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도 될 듯?


kaṭuka : [adj.] sharp; severe, painful; pungent
ātura : [adj.] affected with; sick; deceased
tuccha: [adj.] empty; vain; deserted 공한 것

tuc, =impel=催促;=genrate=产生
kaṭu :Harsh, sharp, sever; wrong [karoti の inf.]
madhura : [adj.] sweet. (nt.) sweet thing
dhura : [nt.] 1. an office; responsibility; a charge; 2. a yoke
mā : [a prohibitive particle] do not. (m.) the moon, not, do not, let us hope not


덩어리진 음식에 해당하는 부분은 ambilaggehipi, tittakaggehipi 입니다.

ambilaggehipi는 신 맛도 되지만 am + vilagga '손상이 붙어오는'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tittakaggehipi는 쓴 맛도 되지만 머무른다고(ṭhā) 하는(ti) 것(ka)으로 번역하여 보았습니다. 그 의미는 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ambila : [adj.] sour. (m.), sour taste; acid, 酸的
am , 伤害 상해,损伤 손상(injure)
vilagga : [pp.] stuck; attached
lagga : [adj.] stuck; attached to, [laggati の pp.] 固着せる, 障碍ある
laggati : [lag + a] sticks; attaches; adheres to; hangs from
ambā , (f.), mother
bila : [nt.] a den; a hole; a portion
ambha : [abhi+a]
ambilagga = am(상처를 주다) + vilagga (固着, 已附着,已执着)
titta : [pp. of tappati] contented; satisfied. (adj.), bitter. (nt.), bitter taste
Tiṭṭha ,(adj.) [pp. of tasati1] dry, hard, rough, 堅固的(hard), 乾涸的

ṭhā , (梵sthā)﹐【字根I.】停留(to stay),站著(to stand)
titthakara 派祖, 外道師, 教祖
ākāra , (m.), manner; condition; state; appearance, 行相, 相, 相貌, 様相
tappati :see tapati:To burn, blaze; to shine, be brilliant, to scorch, torment





우암은 이 경에서 nimittaṃ uggaṇhāti가 핵심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uggaṇhāti의 의미가 명확해야 합니다.


uggaṇhāti: [u + gah + ṇhā] learns; takes up, 拿起(取得), 學習(學得),
gaṇhāti : [gah + ṇhā] takes; holds of; seizes, 取, 拿起, 捕捉, 緊捉住, 抓住

Uggahaṇa ,(nt.) [fr. uggaṇhāti] learning, taking up, studying

gah【字根V.】拿(붙잡을 나, to take)

gāh, etc, =plunge= 使投入(던져 넣다), 埋首(to dive into)

hā ﹐【字根I.】放弃(to give up) cp.(梵hā) 1.离开(leave);2.向前(go forth),



앞서 말씀드린대로 우암은 nimitta란 가치 중립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uggaṇhāti란 그런 가치 중립적인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受持하다)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uggaṇhāti의 사전적인 의미는 배우다 혹은 간수하다입니다. (learns; takes up, 学习,着手进行)

우암은 uggaṇhāti의 의미가 ‘일어나서(u) 가고(ga 물들고) 내려 놓는(ha)다(ti)’를 내포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nimmita, nimmita samudayaṃ, nimmita nirodhaṃ를 하라는 뜻이란 말입니다.

이는 아직 팔정도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팔정도 삶의 구체적인 실천은 육근수호일것입니다.

경계에서 무상함을 보아서 삶이 nimmitanirodhagāminiṃ paṭipada (팔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So taṃ nimittaṃ uggaṇhāti는 팔정도의 길을 가기 전에 경계가 무엇인지를 잘 이해하는 단계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게 된 근거는 맛지마 니까야의 올바른 견해의 경 때문입니다.

M9 올바른 견해의 경 (Sammādiṭṭhisutta)

§13 고귀한 제자가
자양분(āhara; 음식)을 알고
자양분의 발생을 알고
자양분의 소멸을 알고
자양분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잘 알면,
그 만큼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견해가 바르게 되어,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고, 올바른 가르침을 성취합니다.

요리사 경에서 nimmita란 음식의 맛(āhara: 취착하지 말아야 할 것)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경계를 대하는 것을 모두 음식으로 섭취하는 것으로 비유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든 요리사는 현생의 나이고 그  맛을 보는 것은 업의 상속자(kammadāyādā)라는 것으로 우암은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업의 상속자를 현대 개념의 '영혼'이라고 볼 여지가 있군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음식을 먹는 (변치 않는) 자는 없다고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조건 지워진 것이지 그 행위의 주인(고정된 실체)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업의 상속자라는 것은 당연히 불변의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계속 신구의로 업을 쌓아가고 있기 때문에 업의 상속자는 계속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정된 실체는 아니지만 (계속 변해가지만)  그런 현상을 업의 상속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가르침이 있는 경이 몰리야팍쿠나 경입니다.


S12:12 몰리야팍구나 경


4. 이렇게 말씀하시자 몰리야팍구나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의식의 자양분을 먹습니까?"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의식의 자양분을 먹습니까?'라는 그대의 이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세존이시여, 그러면 의식의 자양분은 어떤 [법의 조건이] 됩니까?'라고 물어야 그것이 타당한 질문이다.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의식의 자양분은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의 발생이라 [불리는 정신, 물질]의 조건이 된다. 그러한 [정신, 물질이라는] 존재가 있을 때 여섯 감각장소가 있고,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있다.'라고."


위 경의 내용은 금강경 13의 여법수지분과 일치하는 표현이라고 우암은 생각합니다.

세상은 조건지워져 변화해 갈 뿐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그 변화에 대한 고정된 실체란 없다는 말입니다.

심지어는 법이라는 것 조차도 조건지워져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변치않는 실체는 없다고까지 가르침을 주십니다.

즉 형성된 것은 모두 사라지기 마련이란 것입니다.


金剛經(금강경) 第十三 如法受持分


佛說般若波羅密 卽非般若波羅密 是名般若波羅密
불설반야바라밀 즉비반야바라밀 시명반야바라밀


여래는 반야바라밀을 반야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하였으므로 반야바라밀이라 말한 까닭이다.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 有所說 法不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 유소설 법부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여래가 설한 법이 있는가?


須菩提百佛言 世尊 如來 無所說
수보리백불언 세존 여래 무소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설하신 법이 없습니다.


須菩提 於意云何 三千大千世界 所有微塵 是爲多不
수보리 어의운하 삼천대천세계 소유미진 시위다부


수보리여 삼천대천세계를 이루고 있는 티끌이 많다고 하겠는가?


須菩提言 甚多 世尊
수보리언 심다 세존


수보리가 대답하였습니다.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須菩提 諸微塵 如來說 非微塵 是名微塵
수보리 제미진 여래설 비미진 시명미진


수보리여! 여래는 티끌들을 티끌이 아니라고 설하였으므로 티끌이라 말한다.


如來 說世界 非世界 是名世界
여래 설세계 비세계 시명세계


여래는 세계를 세계가 아니라고 설하였으므로 세계라고 말한다.



요리사와 그 주인은 사실은 우리가 나라고 믿는 것입니다. 요리사는 현생의 나이고 주인이란 전체의 윤회를 겪는 계속 변화하는 윤회하는 나입니다. 그래서 요리사가 현생에서 요리를 할 때는 그것이 업의 상속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잘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암이 번역해 본 부분


Seyyathāpi, bhikkhave, bālo abyatto akusalo sūdo rājānaṃ vā rājamahāmattaṃ vā nānaccayehi sūpehi paccupaṭṭhito assa


각묵스님

예를 들면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요리사가 왕이나 대신에게 갖가지 맛있는 국을 받들어 올렸다고 하자.


우암
예를 들어 어리석고, 내가 분명하고, 불선하며, 잘 묶인자가 오염되어 있고 물들어서 내가 자아(atta)라고 물들어있고, 그래서 각각이(오온이) 잘 쌓여있어서 괴로움이 일어난 곳으로 간다고 하자.


rajanaṃ: Colouring, dye
raj , 1.(= rj)指导(direct);2.(=rañj)(巴raj), =color=著色, 粉饰
raja : [m.; nt.] (mano-group), dust; dirt; pollen; defilement; impurity, [Sk. rajaḥ] 塵, 塵垢, 不浄
rājamahāmatta: [m.] the prime minister
mahāmatta : [m.] a chief minister
matta : [pp. of majjati] was intoxicated; full of joy; proud of; conceited; polished

nānaccaya: [nānā+caya (=ci+a). nānā+accaya (=ati+i+a)]
caya : [<cināti ci] [m.] piling; heaping; a mass, 積土, 層, 集積
nānaccayehi는 오온으로 볼 수도 있다.
cināti : [ci + nā] heaps up; collects; accumulates
ci ,1.=gather=使聚集;2.=note=纪录;=observe=看到,观察, 收集(to collect)。
accaya : [m.] 1. fault; 2. lapse; 3. passing away

paccupaṭṭhito 괴로움이(pacci) 일어난(upa) 곳(ṭṭhito)

pacci: [aor. of paccati] was cooked; to be boiled suffered
paccati : [pass. of pacati] is cooked; to be boiled, suffers, 괴로움을 받는
pacati : [pac + a] cooks.

patthita: [pp. of patthayati] wished for; desired; aspired
ṭhita : [pp. of tiṭṭhati] stood; stayed; stationary; immovable; one who stays
paṭṭhito : 머무는 곳으로 가다.
paccupaṭṭhito 요리되기를 바라다, 혹은 고통을 받아서 머무는 곳으로 가다.

sūpa: [m.] curry, 湯, 湯汁, 肉汁
pehi : [pa-i の imper.] 行け



idaṃ vā me ajja bhattu sūpeyyaṃ ruccati, imassa vā abhiharati, imassa vā bahuṃ gaṇhāti, imassa vā vaṇṇaṃ bhāsati.


각묵스님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우암

오늘 나의 주인(말하는 자, 판단하는 자, 업의 상속자?)은 잘 일으켜 가서 좋아한다. 이걸 가져가는구나. 이걸 많이 가져가려 하는구나. 이런 형상을 말하는구나. (이런 형상의 빛을 기억하는구나.)


vattu : [m.] one who speaks or says; sayer
sūpeyya: [adj.] suitable for curry ; su (잘) + upe(일으켜) + ya (갔다)
yā , (巴yā), =go=去
yam , / yach, 抵达(reach)。 【字根I.】检查(to check)
supe :supati の opt.。자다
yam, / yach, 抵达(reach)。
sūpeyyaṃ 잠에 도달함? 무명에 도달???
ruccati : [ruc + ya] finds delight in; likes
harati : [har + a] carries; takes away; plunders; steals, to remove; to take, to seize
abhiharati : [abhi + har + a] To bring to; to acquire, to gain; to attack physically, 持來, 運
gaṇhāti : [gah + ṇhā] takes; holds of; seizes, 拿,持,抓,取
vaṇṇa: [m.] colour; appearance; colour of the skin; sort; caste; a letter; quality
bhāsati : [bhās + a] says; speaks; shines


Sa kho so, bhikkhave, bālo abyatto akusalo sūdo na ceva lābhī hoti acchādanassa, na lābhī vetanassa, na lābhī abhihārānaṃ. Taṃ kissa hetu? Tathā hi so, bhikkhave, bālo abyatto akusalo sūdo sakassa bhattu nimittaṃ na uggaṇhāti.


각묵스님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요리사는 옷가지를 타지 못하고, 급료를 받지 못하고, 선물을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이유인가? 비구들이여, 그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요리사는 이와 같이 자기 주인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암
비구여, 이 어리석고 명백한 나이고 능숙하지 못한 요리사는 6개의 주어진 것이 아닌 것을 얻지 못한다. 보호를 받지 못한다. 투쟁을 포기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어떤 이유에서인가? 비구여 저 어리석고 명백한 나이고 능숙하지 못한 요리사는 자기의 빛의 나(주인)의 nimitta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abyatto의 nimitta를 취했다.)


acchādana: [nt.] clothing.
Acchādeti ,[ā + chādeti1, Caus. of chad, cp. BSk. ācchādayati jīvitena to keep alive Av. Ś, I.300; Divy 136, 137] to cover, to clothe, to put on
acchādanā, (f.), concealment 覆蔽 덮여 가리워진 것 혹은 (6개의 주어진 것이 아닌 것)
dāna: [nt.] gift; charity; alms; alms-giving
vetana: [nt.] wages; hire; payment; fee [=vettana, vedana]
tāṇa: [nt.] protection; refuge; shelter, 救護所, 避難處, 救護, 庇護. -gāmi-magga 使到達庇護所的道路, 引導人至庇護所的道路
Haraṇa ,(nt.) [fr. hṛ] taking, seizing, removing 任持, 除去
rana(싸움, 투쟁)를 hana (죽임 포기함)






A4:14 단속 경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단속하는 노력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감각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Katamañca, bhikkhave, saṃvarappadhānaṃ?
Idha, bhikkhave, bhikkhu cakkhunā rūpaṃ disvā na nimittaggāhī hoti nānubyañjanaggāhī. Yatvādhikaraṇamenaṃ cakkhu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i, rakkhati cakkhundriyaṃ, cakkhundriye saṃvaraṃ āpajjati.


gāhī : [adj.] a holder; taker; bearer
gāyati : [ge + a] sings; recites; is known, 歌唱, 唱誦, 背誦
gaṇhāti : [gah + ṇhā] takes; holds of; seizes.




S47:8 요리사 경(Sūd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밧티의 젯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계셨다.


2.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은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ⅰ) 능숙하지 못한 요리사
3.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요리사가 왕이나 대신에게 신 것, 쓴 것, 자극이 있는 것, 단 것, 얼얼하게 매운 것, 맵지 않은 것, 짠 것, 싱거운 것으로 된 갖가지 맛있는 국을 받들어 올렸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그런데 이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요리사는 다음과 같이 자기 주인의 표정을 살피지 못한다 하자.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신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신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신 것을 많이 집었다. 신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쓴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쓴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쓴 것을 많이 집었다. 쓴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자극이 있는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자극이 있는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자극이 있는 것을 많이 집었다. 자극이 있는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단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단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단 것을 많이 집었다. 단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얼얼하게 매운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얼얼하게 매운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얼얼하게 매운 것을 많이 집었다. 얼얼하게 매운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맵지 않은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맵지 않은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맵지 않은 것을 많이 집었다. 맵지 않은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짠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짠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짠 것을 많이 집었다. 짠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싱거운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싱거운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싱거운 것을 많이 집었다. 싱거운 것을 칭찬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요리사는 옷가지를 타지 못하고, 급료를 받지 못하고, 선물을 얻지 못할 것이다. 무슨 이유인가? 비구들이여, 그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요리사는 이와 같이 자기 주인의 표정을 살피지 못했기 때문이다.”


4.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그는 이처럼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지만 마음은 삼매에 들지 못하고 오염원들은 제거되지 않는다. 그는 그 표상을 취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그는 이처럼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물지만 마음은 삼매에 들지 못하고 오염원들은 제거되지 않는다. 그는 그 표상을 취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그는 이처럼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물지만 마음은 삼매에 들지 못하고 오염원들은 제거되지 않는다. 그는 그 표상을 취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그는 이처럼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물지만 마음은 삼매에 들지 못하고 오염원들은 제거되지 않는다. 그는 그 표상을 취하지 못한다.”


5. “비구들이여, 이러한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묾을 얻지 못하고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을 얻지 못한다. 무슨 이유인가? 비구들이여, 그 어리석고 슬기롭지 못하고 능숙하지 못한 비구는 이와 같이 자기 마음의 표상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ⅱ) 능숙한 요리사
6.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현명하고 슬기롭고 능숙한 요리사가 왕이나 대신에게 신 것, 쓴 것, 자극이 있는 것, 단 것, 얼얼하게 매운 것, 맵지 않은 것, 짠 것, 싱거운 것으로 된 갖가지 맛있는 국을 받들어 올렸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그런데 이 현명하고 슬기롭고 능숙한 요리사는 다음과 같이 자기 주인의 표정을 살핀다 하자.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격찬했다. 오늘은 신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신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신 것을 많이 집었다. 신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쓴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쓴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쓴 것을 많이 집었다. 쓴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자극이 있는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자극이 있는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자극이 있는 것을 많이 집었다. 자극이 있는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단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단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단 것을 많이 집었다. 단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얼얼하게 매운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얼얼하게 매운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얼얼하게 매운 것을 많이 집었다. 얼얼하게 매운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맵지 않은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맵지 않은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맵지 않은 것을 많이 집었다. 맵지 않은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짠 것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짠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짠 것을 많이 집었다. 짠 것을 칭찬했다. 오늘은 이 국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이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많이 집었다. 이것을 격찬했다. 오늘은 싱거운 내 주인의 구미에 맞았다. 싱거운 것을 집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싱거운 것을 많이 집었다. 싱거운 것을 칭찬했다.’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 현명하고 슬기롭고 능숙한 요리사는 옷가지를 타고 급료를 받고, 선물을 얻을 것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그 현명하고 슬기롭고 능숙한 요리사가 이와 같이 자기 주인의 표정을 살폈기 때문이다.”


7.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현명하고 슬기롭고 능숙한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그가 이처럼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물 때 마음은 삼매에 들고 오염원들은 제거된다. 그는 표상을 취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현명하고 슬기롭고 능숙한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그가 이처럼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물 때 마음은 삼매에 들고 오염원들은 제거된다. 그는 표상을 취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현명하고 슬기롭고 능숙한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그가 이처럼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물 때 마음은 삼매에 들고 오염원들은 제거된다. 그는 표상을 취한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현명하고 슬기롭고 능숙한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 챙기면서 머문다. 그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물 때 마음은 삼매에 들고 오염원들은 제거된다. 그는 표상을 취한다.”


8. “비구들이여, 이러한 현명하고 슬기롭고 능숙한 비구는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묾을 얻고 마음 챙김과 알아차림을 얻는다. 무슨 이유인가? 그것은 그 현명하고 슬기롭고 능숙한 비구가 이와 같이 자기 마음의 표상을 취하기 때문이다.”


몰리야팍구나 경(S12:12)
4. 이렇게 말씀하시자 몰리야팍구나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의식의 자양분을 먹습니까?"
"그것은 타당한 질문이 아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중생이나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중생이나 사람이] 음식을 먹는다.'고 한다면, '세존이시여, 그러면 누가 의식의 자양분을 먹습니까?'라는 그대의 이 질문은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나에게 '세존이시여, 그러면 의식의 자양분은 어떤 [법의 조건이] 됩니까?'라고 물어야 그것이 타당한 질문이다.
[만일 그대가 이렇게 묻는다면] 여기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타당한 설명을 할 것이다. '의식의 자양분은 내생에 다시 태어남[再生]의 발생이라 [불리는 정신•물질]의 조건이 된다. 그러한 [정신•물질이라는] 존재가 있을 때 여섯 감각장소가 있고,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있다.'라고."
Evaṃ vutte, āyasmā moḷiyaphagguno bhagavantaṃ etadavoca—  “ko nu kho, bhante, viññāṇāhāraṃ āhāretī”ti? “No kallo pañho”ti bhagavā avoca—  “‘āhāretī’ti ahaṃ na vadāmi. ‘Āhāretī’ti cāhaṃ vadeyyaṃ, tatrassa kallo pañho—  ‘ko nu kho, bhante, āhāretī’ti? Evañcāhaṃ na vadāmi. Evaṃ maṃ avadantaṃ yo evaṃ puccheyya—  ‘kissa nu kho, bhante, viññāṇāhāro’ti, esa kallo pañho. Tatra kallaṃ veyyākaraṇaṃ—  ‘viññāṇāhāro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yā paccayo, tasmiṃ bhūte sati saḷāyatanaṃ, saḷāyatanapaccayā phasso’”ti.』
ko nu kho, bhante, viññāṇāhāraṃ āhāretī
ko ; pron.[ka의 m] 누가
nu ; ind. ①참으로. ②대개. ③아마. ④~인지 아닌지.
kho ; ind. ①참으로. 확실히. ②정말로.
āhāretī ; ①음식을 가져오다. ②먹다.
누가 의식의 자양분을 먹습니까?
kissa nu kho, bhante, viññāṇāhāro’
kissa ,疑问代名词 ka / ki(who?what?which?
viññāṇāhāro āyatiṃ punabbhavābhinibbattiyā paccayo,'
'의식의 자양분은 미래에 다시할 존재의 태어남에 조건이 된다.
āyatiṃ ; adv. 미래에.
puna ; ind. conj. ①다시. 또. ②다음에. punābhinivatti 다시 태어남. 재생.
bhava ; m.["<bhū] ①존재. 유(有). 존재의 상태. ②생성. 윤회. 다시 태어남. bhavābhava 존재의 종류. 존재와 비존재.
abhinibbatti ; f. ①생성. 출생. 생기(生起). ②다시 태어남. 재생. 윤회(輪廻). abhinibbattibhava 다시 태어남.
paccaya : Hetu is a synonym of paccaya, cause; votive; requisite; means, 緣, 助緣, 動機
ya(yā) ; 지말 접미사의 일종[명사나 형용사에 첨가하여 형용사를 만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