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수보살의 중론

제9 관본주품(觀本住品)

우암(雨庵) 2017. 7. 4. 08:42

9 觀本住品(12) 근본주체에 대한 관찰

 

pūrvaparīkā nāma navama prakaraam 先行者 고찰이라고 이름하는 제9(12)


본주(本住)란 우리가 주체(나)라고 생각하는 그것을 의미합니다. 

금강경에서는 이 주체를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라 불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왜 무아(無我)라고 하셨을 까요?

그건 현상(실재 모습)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현실과 부처님이 보시는 현실은 다른 것일 까요?

우암이 이해한 바로는 아마도 이 차이 때문에 부처님께선 여실지견(yathābhūtañāṇadassana)을 말씀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앞뒤가 뒤집힌(전도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그 뒤집힌 생각을 근거로 세상을 분석할 때 그 주체인 '나'와 행동 그리고 대상이 나타납니다.

용수보살께선 관본주품에서 과연 나란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논리를 펴십니다.




인생은 단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뿐....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인생은 단지 걸어다니는 그림자가련한 배우라네.
주어진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뽐내고 으시대지만
그리곤 더 이상 들려지지 않는다네.

인생은 바보가 지껄인 이야기,

소음과 분노가 가득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다네.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9-1) 眼耳等諸根 苦樂等諸法 誰有如是事 是則名本住

 

눈과 귀 따위의 모든 감각기관과 , 따위의 모든 존재는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있는 바 그것을 바로 本住(근본주체)라고 부른다.


눈과 귀 등 모든 감각기관과

괴로움과 즐거움등 모든 사건에는

무엇이 있어서 일이 그러한가?

이를 자아라고 부른다.


誰 [누구 수] 1. 누구 2. 무엇 3. 옛날 4. 발어사(發語辭) 5. 묻다


darśanaśravaādīni vedanādīni cāpyatha

bhavanti yasya prāgebhya so ’stītyeke vadantyuta

무릇 보는 작용, 듣는 작용 등과 감수 작용등이 속하여 존재하는 것,

그것은 先行하여 존재한다고 어떤 사람들은 한다.

 

9-2) 若無有本住 誰有眼等法 以是故當知 先已有本住

만일 本住(근본주체)가 없다면 눈 따위의 소유한 놈은 누구이겠는가?

그러므로 미리 本住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자아가 있지 않다면

무엇이 눈 등 사건을 있게 하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먼저 자아가 있어야 한다.


katha hyavidyamānasya darśanādi bhaviyati

bhāvasya tasmātprāgebhya so ’sti bhāvo vyavasthita

왜냐하면 지금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있어서 <보는 작용>등이 도대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확립되어 있는 그 존재가 그것들에 先行하여 존재한다.

 

9-3) 若離眼等法 及苦樂等法 先有本住者 以何而可知

만일 눈 따위의 존재와 , 따위의 존재를 떠나서

미리 本住(근본주체)가 존재한다면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겠느냐?


만약 눈 등 사건을 떠나고

또한 괴로움과 즐거움등의 사건을 떠나서

자아가 미리 있었다면

어찌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darśanaśravaādibhyo vedanādibhya eva ca

ya prāgvyavasthito bhāva kena prajñapyate ’tha sa

보는 작용 듣는 작용 등, 感受 작용 등에

先行하여 확립되어 있는 존재, 그것은 그러면 어떻게 認知되겠는가?

 

9-4) 若離眼耳等 而有本住者 亦應離本住 而有眼耳等

만일 눈이나 귀 등을 떠나서 本住 존재한다면

응당 本住 떠나서 눈이나 귀 등도 존재하리라.


만약 눈과 귀 등을 떠나서

자아가 있다면

마땅히 자아를 나서

눈과 귀 등이 있는 것이다. 


vināpi darśanādīni yadi cāsau vyavasthita

amūnyapi bhaviyanti vinā tena na saśaya

만일 보는 작용 따위 없이도 그것(=本住)이 확립되어 있다면

그것들(=보는 작용 따위) 역시 그것(=本住) 없이 존재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다.

 

9-5) 以法知有人 以人知有法 離法何有人 離人何有法

(=사람의 구성요소)이 있음으로 인하여 사람이 있음을 안다. 사람이 있음으로 인하여 법이 있음을 안다.

법을 떠나서 어찌 사람이 있겠으며 사람을 떠나서 어찌 법이 있겠는가?


이 사건으로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이 사람으로 사건이 있음을 알게 되니

어찌 사건을 떠난 사람이 있으며

어찌 사람을 떠나 사건이 있겠는가?


ajyate kena cit kaścit ki citkena cidajyate

kuta ki cidvinā kaścitki citka cidvinā kuta

무엇인가에 의해 누구인가가 표시되며 누구인가에 의해 무엇인가가 표시된다.

어떻게 무엇인가가 없이 누구인가가 있겠으며 어떻게 누구인가가 없이 무엇인가가 있겠는가?

 

9-6) 一切眼等根 實無有本住 眼耳等諸根 異相而分別

눈 따위의 모든 감각기관에 실로 그 本住 없다.

눈이나 귀 따위의 모든 감각기관은 그 모습을 달리하여 분별된다.


모든 눈 등의 감각기관에는

실로 자아가 있음이란 없다.

눈과 귀등의 모든 감각 기관은

다른 대상을 분별할 뿐이다.


sarvebhyo darśanādibhya kaścitpūrvo na vidyate

ajyate darśanādīnāmanyena punaranyadā

보는 작용등 일체의 것 배후에 그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더우기 보는 작용 등은 (그 각각이) 다르다는 점에 의해, (그 작용하는 시기가) 다른 때라는 점에 의해 (그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다.

 

9-7) 若眼等諸根 無有本住者 眼等一一根 云何能知塵

만일 눈 따위의 감각기관 모두가 本住 갖지 않는다면

눈 따위의 감각기관 각각이 어떻게 능히 대상을 지각하겠는가?


만약 눈 등의 모든 감각기관에

자아가 있지 않다면

눈 등 하나 하나의 감각기관이

어찌 능히 티끌을 알 수 있겠는가?


塵 [티끌 진] 1. 티끌 2. 때, 시간(時間) 3. 유업 4. 소수의 이름 5. 더럽히다


sarvebhyo darśanādibhyo yadi pūrvo na vidyate

ekaikasmātkatha pūrvo darśanāde sa vidyate

만일 보는 작용 따위 모두에 선행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는 작용 따위의 각각에 선행하는 것, 그것이 존재하겠는가?

 

9-8) 見者卽聞者 聞者卽受者 如是等諸根 則應有本住

보는 자가 듣는 자이고 듣는 자가 감수하는 자라면

이런 여러 감각기관은 응당 本住 가지리라.


보는 자가 듣는 자이고

듣는자가 느끼는 자이니

이와 같이 모든 감각기관은

당연히 자아가 있으리라.


draṣṭā sa eva sa śrotā sa eva yadi vedaka

ekaikasmādbhavetpūrvam eva caitanna yujyate

만일 그가 바로 보는 자이고 그가 바로 듣는 자이고 그가 바로 감수하는 자이라면

각각의 것보다 이전의 그 무엇이 존재하리라. 그러나 그것은 그런 식으로 타당하지 않다.

 

9-9) 若見聞各異 受者亦各異 見時亦應聞 如是則神多

만일 보는 것과 듣는 것이 서로 다르고 감수자도 역시 다르다면

볼 때도 응당 들어야 하리라. 이렇다면 神我 여러개가 된다.


만약 봄과 들음이 다르고

느끼는 자도 다르다면

볼 때 또한 당연히 들으리라.

이와 같다면 의식(정신)은 여럿이어야 한다.


神 [귀신 신] 1. 귀신(鬼神) 2. 신령(神靈) 3. 정신(精神), 혼(魂) 4. 마음


draṣṭānya eva śrotānyo vedako ’nya punaryadi

sati syāddraṣṭari śrotā bahutva cātmanā bhavet

그런데 만일 보는 자도 따로 있고 듣는 자도 따로 있고 감수하는 자도 따로 있다면

보는 자가 있을 때 듣는 자가 있겠는가? 또 아뜨만이 여러 개가 되리라.

 

9-10) 眼耳等諸根 苦樂等諸法 所從生諸大 彼大亦無神

눈과 귀 따위의 모든 지각기관과 , ,

그것들이 비롯하는 여러 (=四大) 에도 역시 神我 없다.


눈과 귀 등 감각기관과

괴로움과 즐거움 등의 모든 사건은

장소를 따라 나타난 모든 사대(지수화풍; 물질의 순환)이니

그 사대에는 또한 의식(정신)이 없다.


darśanaśravaādīni vedanādīni cāpyatha

bhavanti yebhyastevea bhūtevapi na vidyate

그런데 보는 작용, 듣는 작용과 感受 작용 등이 비롯되어 존재하는

大種 (=四大)들에도 역시 이것(=아뜨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9-11) 若眼耳等根 苦樂等諸法 無有本住者 眼等亦應無

만일 눈이나 귀 등의 감각기관과 , 등의 모든 법이

本住 갖지 않는다면 눈 역시 응당 없으리라.


만약 눈과 귀등의 감각기관과

괴로움과 즐거움등의 모든 사건에서

자아가 있음이 없어진다면

눈 등도 당연히 없는 것이다.


darśanaśravaādīni vedanādīni cāpyatha

na vidyate cedyasya sa na vidyanta imānyapi

그런데 보는 작용이나 듣는 작용 따위 그리고 감수 작용 등이 속해 있는 그것(=본주)이 만일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것들(=보는 작용) 역시 존재하지 않으리라.

 

9-12) 眼等無本住 今後亦復無 以三世無故 無有無分別

눈 따위에는 本住 없다. 지금이나 나중에도 역시 다시 없다.

三世 없으므로 있다거나 없다는 분별도 없다.


눈 등에는 자아가 없으며

지금이나 나중에도 또한 여전히 없으리니

과거 현재 미래에 없으므로

있거나 없다는 분별이 없어진다.


prāk ca yo darśanādibhya sāprata cordhvameva ca

na vidyate ’sti nāstīti nivttāstatra kalpanā

보는 작용 따위 以前 동시도 나중도 존재하지 않는 그것(=本住)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분별들은 여기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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