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은 세존의 가르침에서 비유 부분이
세존께서 언어를 절묘하게 사용하신다고 보고
그 숨은 그림 찾기를 즐겨합니다.
우암이 부처님 단어 사용에 주목한 이유는
빨리어에 같은 것을 지칭하는 단어가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코끼리: hatthin, Dvipa, gaja, Karī, kuñjara, Nāga, Kaṇeru, Iva, Mātaṅga, khantar, Vāraṇa, Ibha, Viya
이런 경우 대체 어떤 근거로 어떤 단어를 사용하셨을까요?
그리고 또 하나는 비슷한 발음의 단어로 비유하신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해 보려면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 될 가능성이 많아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이해도 깊어야 할텐데
그렇지도 못한 우암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비록 우암이 수준은 낮지만
이런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보여드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암이 예를 드는 비유는 Udāna 6.4 다양한 종파교도들(1) Paṭhamanānātitthiyasutta에 나오는
그 유명한 코끼리 비유인데
한번 공부를 해보니 제법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내용을 보여드리려 합니다.
각묵스님 번역에는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
코끼리 머리를 더듬어 본 눈 먼 사람들은 ‘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물 항아리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코끼리 귀를 더듬어 본 눈 먼 사람들은 ‘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곡식을 까부르는 키와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코끼리 긴 이빨을 더듬어 본 눈 먼 사람들은 ‘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쟁기 날과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코끼리 코를 더듬어 본 눈 먼 사람들은 ‘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쟁기 막대와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코끼리 몸을 더듬어 본 눈 먼 사람들은 ‘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창고와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코끼리 다리를 더듬어 본 눈 먼 사람들은 ‘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기둥과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코끼리 후반신을 더듬어 본 눈 먼 사람들은 ‘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막자 사발과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코끼리 꼬리를 더듬어 본 눈 먼 사람들은 ‘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절굿공이와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코끼리 꼬리 끝을 더듬어 본 눈 먼 사람들은 ‘왕이시여, 코끼리는 마치 빗자루와 같습니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번역을 우암의 이해를 바탕으로 의역해 본 것이 아래 내용입니다.
유신견은 몸이 빛을 담는 그릇이라 하는 것이다. |
단멸론은 잠꼬대 같은 소리다. |
극단(있다 혹은 없다)은 고집에 불과하다 |
(대상에) 빠진 것은 (나를) 불 태우는 것이다. (괴로움이다) |
윤회를 본 자는 그것이 쌓여있음(아뢰야식)을 본다 |
윤회의 흐름을 본 자는 몸(머무는 것)이 내가 아님을 알게 한다. |
마음 챙김(기억, 나라는 것)을 본 자는 괴로움의 발생을 본다. |
(자아를) 부분으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
(자아를) 얻었다고 말한다면, 완전히 술취한 소리다. |
각묵스님 번역 (문자 그대로 번역)
빨리어 | 각묵 번역 | 세존의 비유 | 통상적 이해 |
sīsaṃ | 머리 | kumbho | 물항아리 |
kaṇṇo | 귀 | suppo | 키 |
danto | 이빨(상아) | khīlo | 쟁기 날 |
soṇḍo | 코 | naṅgalīsā | 쟁기 막대 |
kāyo | 몸 | koṭṭho | 창고 |
pādo | 다리 | thūṇo | 기둥 |
satthi | 후반신 | udukkhalo | 막자 사발 |
naṅguṭṭhaṃ | 꼬리 | musalo | 절굿공이 |
vāladhi | 꼬리 끝 | sammajjanī | 빗자루 |
제가 이해한 의미
빨리어 | 제 이해 | 세존의 비유 | 제 이해 |
sīsaṃ | 내 몸이 나다 | kumbho | 몸이 빚을 담는 그릇 |
kaṇṇo | 있는 게 아니다 | suppo | 잠꼬대 |
danto | 극단에 집착하는 자 | khīlo | 고집쟁이 |
soṇḍo | (육입처에 빠진) 술주정꾼 | naṅgalīsā | 숯불(불에 태워지는 괴로움) |
kāyo | 누적되어 있음(윤회, 생이 여러 번 있음) | koṭṭho | 그 것에 머무는 것 |
pādo | 생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 thūṇo | 머무는 것이 아님 |
satthi | 마음을 챙기는 것 (기억) | udukkhalo | 괴로움이 일어남 |
naṅguṭṭhaṃ | 부분을 세워서 말한다면 | musalo | 거짓말쟁이 |
vāladhi | 얻었다고 말하면 | sammajjanī | 완전한 술취함 |
이런 식 번역을 처음 보시면 너무 심하게 갖다 붙인 것 아냐?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부족하겠지만 우암 나름대로 이리 저리 찾아봐서 의역을 한 것입니다.
먼저 '코끼리를 만져본다'란 '나라는 것에 대한 견해를 갖는다'와 상응한다 하겠습니다.
코끼리를 보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코끼리란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이것! 혹은 '이 뭣고'의 답이겠지요.
사용하신 단어는 hatthī입니다.
우암은 hatthī의 유사발음으로 봐서 그냥 '나라는 것(aṭṭi)'으로 보았습니다.
aṭṭi: aṭṭi(thī) အ႗ိ(ထီ) [aṭṭa+i. pārā, gaṇṭhi,2.337,.]
처음에 우암은 이 단어(코끼리)를 '머물면 죽는다.'로 다소 강하게 의역했었습니다.
즉 hatthī를 파자해서 ha+thī로 보았었습니다.
hā, ﹐【字根III.】减少(to decrease)。
hā, ﹐【字根I.】放弃(to give up)。cp.(梵hā) 1.离开(leave);2.向前(go forth)
han, (梵han)﹐【字根I.】杀(to kill),打(to beat)。
ṭhā, (梵sthā)﹐【字根I.】停留(to stay),站著(to stand)
또 한가지는 태어나면서 부터 장님(jaccandha)입니다.
쉽게 이해하자면 그냥 중생이라 해도 되겠지만 ja+candha로 파자를 했습니다.
ja는 jāti: [f.] birth; rebirth; race; nation
candha는 원래 뜻인 장님(andha)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 경우 c는 사이 시옷에 해당)
유사발음인 canda 혹은 chanda로 그 뜻을 살펴보았습니다.
canda:m. [Sk. candra] 月. -gāha, -ggāha月蝕. -maṇḍala 月輪, 月. -suriyā 月跟日
chanda: intention, desire, will 欲, 志欲, 意欲
만약 달(진리)에서 태어남이라 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진리에서 나온 것)과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고
또한 '(나의 견해라는) 의도를 갖고 태어난’으로 해석도 가능합니다.
어찌 보면 이런 해석은 정 반대의 해석이지만, 이게 우리 중생의 모습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래서 우암은 둘 다 가능하다고 봅니다.
‘무엇과 같이 생겼나?’란 단어는 diṭṭho를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견해를 뜻한다 하겠습니다.
diṭṭha: [pp. of passati] seen; found; understood. (nt.), vision :① a. [Sk. dṛṣṭa. dassati 的 pp.] 已被見的, 見, 所見 a. n. [Sk. dviṣṭa. dessati 的 pp.] 加毒的, 毒害的(poisoned), 敵(an enemy)
diṭṭhi: [f.] dogma; theory; belief 見, 見解, 意見, sammādiṭṭhi 正見
따라서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본다'란 '무명중생이 나라는 것에 대한 견해를 갖는다'와 상응한다 하겠습니다.
naṅgalīsā, naṅguṭṭhaṃ에서 낭은 앙과 발음이 비슷해서 같다고 보고 aṅgalīsā, aṅguṭṭha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aṅgalīsā는 사식 중 의도식 비유에 나오는 aṅgārakāsu와 같이 보았는데 그 이유는 aṅgāra (charcoal; embers 숯)와 aṅgalīsā가 유사 발음이라 그렇게 보았습니다.
satthi(후반신)의 경우 sati로 볼 수도 있고 atthi로도 볼 수 있다고 봤습니다.
sati는 마음챙김 혹은 기억인데 기억이라면 숙명통까지 확대해 볼 수도 있다고 우암은 봅니다.
atthi로 본다면 이건 hatthī와 마찬가지로 '나라는 것'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경우에는 hatthī를 satthi한다는 것이 나를 나로 안다가 되어서 번역이 좀 이상한가요?
그래서 기억 쪽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나라는 것은 사실 기억이 쌓여서(集 caya) 이루어진 것이란 점이네요.
그래서 satthi는 나라는 것을 보는 것이라 해석합니다.
vāladhi(꼬리 끝)의 경우 vā+ladhi로 봤고
vā는 vaca로 ladhi는 유사 발음인 laddhā로 보았습니다.
vaca: [m.; nt.] (mano-group), word; saying
laddhā, (abs. of labhati) having got, received, or attained 얻었다고 하는
그래서 vāladhi는 (자아를) 얻었다고 주장하는이 됩니다.
sammajjanī(빗자루)는 sam+majjanī로 보았는데
majja: [nt.] an intoxicant 술, 취하게 하는
majjana: [nt.] an intoxicant, negligence
그래서 sammajjanī는 완전히 취하게 하는으로 읽어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아를 hatthī) 얻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히 술취한 소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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