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심청전(沈淸傳)과 법화경의 장자궁자 비유

우암(雨庵) 2015. 8. 12. 10:45

심청전은 법화경 신해품(信解品)의 장자궁자(長子窮子)의 비유와 유사한 점이 있어보입니다.

그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심청전 이야기
가난하고 눈 먼 심봉사가 눈 떠 보겠다고 공양미 300석을 덥석 몽은사 화주승(夢恩寺 化主僧)에게 약속을 한다. 이 내용을 딸인 심청이에게 말하자 청이는 정한수를 떠 놓고 정성스럽게 빌기 시작한다.
“아비 허물 내 몸으로 대신 하옵고 아비 눈을 밝게 하여 주옵소서. 내 몸을 팔아서라도 아버지 눈을 뜰 공양미 삼백석을 마련하겠습니다.”

마침 용왕님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청순한 처녀가 필요했던 뱃사람들에게 공양미 300석을 받기로 하게되고

그래서 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집니다.

그러나 물에 빠진 심청이는 죽지 않고 용궁에서 있게되며 연꽃으로 인당수에 드러나서 왕비가 된다.

그래서 심봉사와 재회하여 심봉사가 눈을 뜨게 된다.

 

 

 

심봉사: 마음에 눈이 먼 사람. 혹은 숨겨진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 원래는 눈이 멀지 않았었지만 신체적으로 눈이 멀었다는 것은 결핍을 뜻한다. 그 결핍을 해결해 보겠다고 공양미 300석을 몽은사 화주승에게 약속한다.
심청: 마음이 맑은 심봉사의 딸. 심은 마음 심(心)이어도 말이 되고 가라앉을 심(沈)이어도 말이 된다. 沈淸이라면 숨겨져 있는 청정한 마음이란 뜻이다. 心淸이라면 청정한 마음이란 뜻이다.

인당수(印塘水): 인당(印堂)미간 사이에 있는 차크라로 보아도 되고 못 당(塘)으로 본다면 印塘이란 해인삼매 자리로 보아도 된다. 해인 삼매란 번뇌의 파도가 멎은 곳으로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그래서 청이는 인당수에 빠진 후에 바닷속 수정궁에서 살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투명하게 모든 식이 다 비추는 곳이다. 즉 자성청정 자리이다.
바다: 탐진치 번뇌의 파도 치는 심봉사들이 사는 세상
몽은사 화주승(夢恩寺 化主僧): 꿈 같이 보아야 할 부처님의 세상에서 한 생각이 현실로 나타나는 화신불. 몽은사는 몽운사(夢雲寺)로도 나타난다. 어느 것이 되었든 세상이 꿈과 같이 무상하다는 말씀인 듯하다.
공양미 300석: 세상을 잘 살아보겠다는 욕심의 표현이다. 심봉사에게는 눈을 떠 보겠다는 마음이고 뱃사람들에게는 무사히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마음이다.

 

이렇게 해석을 해 보니 심청전은 깨달음의 여정을 그린 이야기로 다시 다가왔다.

“우리에게는 심봉사가 항상 드러나 있는데 세상을 잘 살아야 한다면서 청정한 마음(심청, 우리 본래 마음)을 버린다. 그리고는 청정한 마음은 죽었다고 생각하고 내 욕심을 채워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심청이는 죽지 않았고 우리(심봉사)를 눈 뜨게 하려고 연민의 마음으로 항상 왕궁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리석은 심봉사는 욕심을 낸 만큼 세상 일에서 고생을 하고(뺑덕 어멈의 악행), 그러고 나서야 심봉사는 그 연꽃 송이 맑은 마음을 만나면서 (심청이와 재회) 비로서 세상에 대해 깨달음의 눈을 뜨게 된다. 이로서 부처님의 꿈 속 은혜(夢恩)가 현실로 드러나게 된다.”

 

몽은사 화주승은 공양미 300석으로 심봉사의 눈이 뜨게 해 주겠다고 했지만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진 후에도 심봉사의 눈은 떠 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내용은 그 당시 불교의 스님들을 비난하는 것이란 글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러나 이는 오해이다. 몽은사 화주승이 약속한 것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육체의 눈(육안)이 떠지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다. 깨달음의 약속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심봉사는 이미 내게 있던 부동의 자성 청정자리를 고생고생해서 겨우 찾게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법화경 신해품(信解品)의 장자궁자(長子窮子)의 비유와 유사한 점이 있다.

 

장자궁자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한 부호에게 아들이 있었는데 어릴 때 멀리 타국으로 도망을 칩니다.

그 아들은 나이도 많고 곤궁하기가 막심해서 구걸을 하며 사방을 헤매면서 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집 떠난지 50년 만에 자식이 걸인이 되어서 우연히 아버지의 집으로 구걸을 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첫 눈에 걸인 아이가 자기 자식임을 알아보고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자식은 자신이 도둑으로 몰리는 줄로 착각하고 놀라서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그 아들은 오랜 기간동안 곤궁함에 시달려 마음이 용렬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방편을 사용해서 아들을 안심시키면서 곁에 두어 온갖 재화를 물려주려합니다.

처음에는 하인을 시켜서 그를 데려다가 허드렛일을 시키며 아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거름을 치는 일부터 시작해서 머슴살이를 시켰습니다.

이리하여 그 용렬했던 마음이 점점 사라지게 되고

20년이 지나 아들이 집안의 재물을 모두 감독하는 자리에 오르게 되는데 

이때, 임종을 맞이하게 된 아버지는 친척, 국왕, 대신, 거사들을 모아놓고 그간의 사정을 들려줍니다.

이때야 비로서 아들은 모든 재산을 상속받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본래 이 재산에 대해서는 아무런 바램이 없었는데 이제 이 엄청난 보배 창고가 저절로 돌아왔구나.'

 

여기서 거부 장자는 여래이시고, 걸인 아들은 바로 우리 중생임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부처님은 이렇게 미묘한 방편으로써 중생들을 최고 깨달음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려 주는 내용입니다.

이 비유는 '너희들에게도 여래의 지견인 보배의 창고가 있느니라.'라고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심봉사는 감추어진 보배창고를 모르는 궁자입니다. 심청이는 거부장자입니다.

심봉사는 자신의 지견이 열리는 만큼 용렬하면 용렬한 일을 하고 그렇게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즐거움인 줄 알았던 것이 괴로움임을 겪습니다. 심봉사는 인생의 최악의 상황에서 다시 심청이를 만납니다. 뺑덕어멈에게 배신과 사기를 당해 재산도 말아먹고 행색이 형편없는 상태입니다. 이는 아들이 인생의 최악의 상황에서 아버지인 거부장자를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두 이야기의 차이점은 심봉사는 청이를 만나자 바로 눈을 뜨지만 법화경에서는 걸인은 거름을 치는 일 부터 시작해서 재산을 관리하는 일까지의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용렬한 마음이 사라지게 한다는 점입니다.

 

심청이는 거부장자이자 여래입니다. 짐짓 공양미 300석에 임당수에 몸을 던지며 또한 나중에는 심봉사를 다시 만나 눈을 뜨게 해 줍니다. 심봉사가 하자고 했던 것들을 다 하게 해 줍니다. 그 인과응보를 심봉사는 다 겪고 비로서 심청이를 만나게 됩니다. 거부장자는 자신의 행색을 감추고 걸인 아들에게 접근해서 허드렛일을 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걸인 아들은 이미 세파는 겪을 대로 겪었습니다. 하지만 소견이 용렬합니다. 그 지견을 키워주기 위해서 향상시키기 위해서 가장 하찮은 일부터 차츰 중요한 일로 다양한 일을 겪게 합니다. 그래서 지견의 보배 창고를 열게 해 줍니다. 이 부분이 제가 보기에는 심청전과 법화경이 다른 점입니다. 심봉사는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지지만 걸인 아들은 상황이 점점 좋아집니다. 심봉사의 상황이 어려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지견이 열린다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상황이 더 좋아진다???

 

 

심청전의 상세한 내용

경판 24장본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명나라 성화연간에 남군땅의 명유() 심현이 부인 정씨와 살았다. 혈육이 없어 걱정하였는데 신기한 꿈을 꾸고 딸 심청을 낳는다. 청이 3세가 되는 해에 정씨가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나고, 심현도 질병에 걸려 안질을 앓아 맹인이 된다.

맹인 심현의 사랑을 받고 자란 심청은 7, 8세부터 효성으로 아버지를 봉양한다. 13세 된 심청이 장자집의 방아를 찧어주고 늦어지자 심공이 혼자 나가다가 구렁에 빠진다. 이때 명월산 운심동 개법당의 화주승이 그를 구해주고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면 장래에 부녀 영화를 보리라 한다.

이 말을 들은 심공은 전후사를 생각하지 않고 신심을 발하여 시주를 서약한다. 남몰래 고민하는 아버지의 사정을 들은 심청은 천지신명께 지성으로 빈다.

그날 밤 꿈에 나타난 노승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청은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과연 남경상고가 유리국 인단소에 산 사람으로 제사하려고 티없는 처녀를 사러 다닌다. 심청은 수중고혼( :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외로운 넋)이 되기로 결심하고 기꺼이 몸을 팔아 백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친다.

행선날에 아버지에게 사실을 알리고 떠나려 하자 심공은 통곡하며 만류한다. 이 광경을 본 상고들은 수일을 연기하여주고 백미 50석을 더 주고 떠난다.

인단소에 빠진 심청은 동해용왕의 시녀들에게 구조되어 용궁으로 인도된다. 심청은 회생약을 먹고 깨어나 자신이 전생에 초간왕의 귀녀 규성(동해용녀)이었고, 아버지는 노군성이었음을 알게 된다. 또 그동안 모든 괴로움이 석가세존의 시험이었음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비로운 세존의 덕으로 부녀가 유리국에 나아가 지체가 높고 귀하게 되리라는 것도 듣게 된다. 큰 꽃송이 속에 들어 인단소에 떠 있던 심청은 남경상고들에 의하여 유리국 왕궁으로 가게 된다. 꽃 속에서 나온 심청은 마침내 왕후가 되어 자비와 선정을 베풀도록 왕을 돕고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맹인잔치를 열게 한다.

맹인잔치 마지막날 말석에 앉았던 심공은 죽었던 딸을 만나고 그 딸이 왕후가 되었다는 말에 눈을 뜬다. 심공은 좌승상 임한의 딸을 맞아 재혼하니 신부의 현숙함과 심공의 희열이 비할 데 없었다.

 

경판본에서는 출천대효() 심청과 그의 아버지 심학규가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심청은 오직 눈먼 아버지에게 지극한 효성을 다하다가 인단소에 투신한다.

투신 이후에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일념만을 보인다. 심봉사 역시 딸만을 위하여 살 뿐이며, 심청의 투신 이후에도 심청만을 생각하며 초라하게 살아간다.

경판본의 작자는 작품 전체에 지극한 효성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전력하고 있으며, 심청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제시된다. 따라서 경판본은 유교적 엄숙성과 숙명론적 운명관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한편 완판본은 경판본보다 훨씬 더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을 담고 있다. 완판본에는 무릉촌 장승상 부인, 뺑덕어미, 귀덕어미, 무릉촌 태수, 방아찧는 아낙네들, 황봉사, 안씨 맹인 등의 인물들이 더 등장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여 심봉사를 희화화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 장승상 부인은 심청에게 양녀 되기를 제안하고 또 심청의 죽음을 통한 효의 실현에 반대한다. 즉, 장승상 부인은 심청이 추구하는 유교적 관념에 이의를 제기하고 현실적 해결방법을 내놓는 인물로서 기능한다.

뺑덕어미는 심청과는 정반대로 현실적이고 물질지향적인 인물로서 심봉사를 현실적이고 비속한 인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다.

 

심청은 경판본이나 완판본이나 성격이 크게 다르게 나타나지 않으나, 심봉사는 두 본에서 성격이 아주 다른 인물로 나타난다.

경판본의 심봉사는 한결같이 유교적 이념에 충실한 인물인 데 반하여, 완판본의 심봉사는 훨씬 세속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완판본의 심봉사는 “누세 잠영지족으로 문명이 자자”한 양반집 후예였으나 화주승에게 공양미를 시주하겠다고 할 때는 “여보시오. 어느 쇠아들놈이 부처님께 적어놓고 빈말 하겠소. 눈 뜰라다가 안진백이 되게요, 사람만 업수이 여기난고 염려말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는 위인이다.

그는 또 천하의 잡녀()인 뺑덕어미와 놀아나다가 “여러 해 주린 판이라 그 중의 실낙은 있어 아모란 줄을 모르고 가산이 점점 퇴패”하는 치졸한 인물이다.

심청의 투신 이후의 심봉사에게는 투신 이전에 지녔던 위엄은 사라지고, 태수 앞에서 허풍과 억지를 부리는 못난이며, 방아찧는 여인네와 음담()을 즐기는 비속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들로 인하여 완판본은 유교적 엄숙성이나 숙명론적 운명관에 지배되지 않는다.

완판본은 유교적 효를 지켜야 할 규범으로 받아들이고는 있으나, 한편으로 당대 현실에 대해서 회의적이며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완판본에는 관념적 가치와 현실적 가치가 서로 갈등하며 대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다른 판소리계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공통된 특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심청전 [沈淸傳]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완판본 내용

〈심청전〉은 조선시대의 소설로 작가와 연대는 미상이며, 일명 〈심청왕후전()〉이라고도 하는 판소리계 소설이다. 2권 1책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전래해 오던 민담()과 불교적 설화가 숙종 이후 한글 평민 문학이 한창일 때 소설화된 듯하다.

<줄거리>황주 도화동()에 심학규()라는 봉사가 있으니, 대대로 내려오며 벼슬하던 거족()으로 명망()이 자자하더니 가운이 기울어 가난하여지고 어려서 눈을 못 보게 되니 시골에서 곤궁하게 지내었다. 하지만 본래 양반의 후손으로 행실이 청렴하고 정직하며 지조와 기개가 고상하므로 동네 사람은 모두 칭찬을 마지아니하였다.

아내 곽씨()부인 또한 현철하여 덕과 아름다움과 절개를 갖추었고, 예서()와 시경() 중에 본받을 대목은 모르는 것이 없고 제사 받드는 법이나 동네 사람과 화목하고 가장()을 공경하고 살림하는 솜씨며 무슨 일이고 못하는 것 없이 다 잘 하였다. 그러나 가세가 빈한하니 곽씨 부인은 몸을 아끼지 않고 품팔이를 했다.

심학규의 가슴에는 한 가지 한이 있으니, 슬하에 혈육()이 하나도 없음이었다. 하루는 심봉사가 부인에게 말한다. "우리 양주 이미 나이 사십이나 슬하에 혈육이 하나도 없어 조상의 향화()를 끊게 되니 죽어 저승에 가 무슨 면목으로 조상을 대할 것이며, 우리 기제사는 뉘 있어 밥 한 그릇 물 한 모금 떠 놓겠소? 명산 대천에 치성이나 들여보오.""지성껏 하오리다."

부인은 그날부터 온갖 치성을 다 지내니 어찌 공든 탑이 무너지며 힘든 나무 부러지랴. 갑자년 사월 초파일에 꿈을 꾸었는데 천지가 명랑하고 서기()가 허공에 서리며 오색 꽃구름이 피더니 선인 옥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부인 앞에 재배하고,"소녀는 서왕모(西)의 딸인데 상제()께 죄를 받아 인간계로 정배되어 갈 바를 모르던 중 태상 노군()과 후토 부인(), 제불 보살 석가님이 댁으로 지시하기로 지금 찾아왔사오니 어여삐 여기소서." 곽씨 부인 놀라서 잠을 깬다.

심봉사 내외의 꿈이 똑같았다. 태몽이라 여겨 기다리니 과연 그 달 태기가 있더니 선녀 같은 딸을 낳았다. 심학규는 너무 좋아 딸을 안고 놓을줄 모른다. "금을 준들 너를 사며 옥을 준들 너를 사랴? 어둥둥 내 딸이야!"그러나 슬프게도 부인이 산후 탈이 일어나 죽는다. 딸 이름을 청이라 지어놓고.

심봉사 부인을 공산 야월 쓸쓸한 곳에 묻고 돌아와 빈방에서 슬픔을 씹고 있을 때 이웃집 귀덕 어미가 아기를 데려다 주고 간다. 아기가 배고파하니 심봉사 한 손에 아기 안고 한 손에 지팡이 잡고 더듬더듬 걸어 젖먹이 있는 집을 찾아 애걸한다. "어미 잃은 우리 아기 불쌍히 여겨 댁의 아기 먹이고 남은 젖 좀 먹여 주오."근방의 부인들 심봉사 사정을 알므로 측은히 여겨 아기 젖을 먹이고 돌려주며 말한다. "봉사님, 어렵게 생각 말고 내일도 오고 모레도 오시오."

아기가 노는 사이에 심봉사는 또 동냥을 다닌다. 이렇게 구걸하면서도 매월 초하루 보름 부인의 삭망과 소상을 빠뜨리지 아니한다. 심청이는 천지 신명이 도와서인지 잔병 없이 자라 육칠 세에 소경 아비를 손잡고 인도하고 십여 세가 되니 얼굴은 일색이요 효행이 지극하였다. 소견도 능통하고 재주도 빼어나다. 부친께 바치는 조석 반찬과 모친의 기제사()에 지극한 정성을 기울이므로 아니 칭찬하는 이 없다.

덧없는 게 세월이요 무정한 건 가난이라. 가세도 군색하고 늙은 부친 병으로 시달리니, 하루는 심청이 부친께 여쭙는다. "눈 어두우신 아버지가 험한 길 다니시면 다치기 쉬우며, 병환 나실까 염려되오니, 오늘부터는 소녀 혼자 밥을 얻어 조석 걱정 덜겠습니다."

심청이 열다섯 되니 얼굴은 나라에서 첫손꼽는 국색()이요 효행이 극진한데, 재질마저 비범하고 문필도 넉넉하니 여자 중에 군자()요, 새 무리 중에 봉황()이요, 꽃 중에서는 모란[]에 비길 만했다.

원근에 소문이 퍼지자 건넛마을 무릉촌 장승상 부인이 심청이 만나기를 청한다. "네가 심청이냐? 과연 아름답구나. 승상은 세상을 떠나시고 아들들은 황성()에 가 살고 있어 내 주위에 아무도 없구나. 너를 내 집 수양딸 삼고 싶은데 뜻이 어떠하냐?"

"이 몸을 딸 삼자 하시니 어미를 다시 본 듯 반갑고 황송합니다. 부인 은혜 입으면 이 몸 부귀 영화 누리려니와, 그러나 앞 못 보는 우리 부친 공양 뉘 있어 하오리까? 부모 은덕 사람마다 있겠으나 이 몸 더욱 부모 은혜 견줄 바 없으니 잠시도 슬하를 떠날 수 없습니다. "심청이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며 사양하니 부인이 가상히 듣고 이른다. "과연 하늘이 낸 효녀로다. 망령된 이 늙은이 미처 그 일을 생각지 못하였구나."부인은 비단과 양식을 후히 주어 시비를 딸려 보낸다.

무릉촌에 간 딸을 기다리던 심봉사는 지팡이 거머잡고 마중을 나간다. 사립문 앞 비탈에 발이 밀려 개천 물에 풍덩 떨어지니, 얼굴에는 진흙이요 의복이 다 젖는다. 사방 물이 출렁출렁하니, 심봉사 겁먹고 외친다. "아무도 거기 없소? 사람 살리오!"

몽운사()의 화주승()이 지나가다 심봉사를 구해준다. 중은 심봉사를 방안으로 인도한 뒤 물에 빠진 내력을 들어본다. 심봉사 전후 사정을 털어놓으니 중이 말한다. "우리 절 부처님은 영험이 많은지라, 빌어서 아니 되는 일없소.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로 올리고 지성으로 빌면 살아 생전 눈을 떠 성한 사람됩니다."

그 말을 들은 심봉사는 처지는 생각지 않고, "여보 대사! 공양미 삼백 석을 권선문()에 적어 가소."중은 '심학규 미 삼백 석( )'을 적으며 웃는다. "적기는 하겠으나 댁의 가세가 삼백석을 주선할 길 없을 듯합니다."

심봉사, 중을 보내고 곰곰 생각하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격이다. "공을 드리려다 죄가 되면 이를 장차 어찌 하잔 말인고?"심청이 돌아와 부친을 보고 깜짝 놀란다. 밥상도 사양한다. ."무슨 근심이라도 계시오?""네 알 일 아니로다. ""아버지 무슨 말씀이오? 소녀 비록 불효이나 말씀을 속이시니 마음이 서럽습니다."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면 눈뜬다는 말에 그만 약속했다고 고백한다. 형편은 생각 않고 홧김에 적었으니 후회 막심이라고 한다. 심청이 말한다. "후회하시면 정성이 못 되니 공양미 삼백석을 마련하여 보겠습니다. "심청이는 그날부터 뒤뜰에 정화수 받쳐 놓고 호반()에 향 피우고 두 손 모아 빈다.

"어떤 사람이 값은 고하간에 15세 처녀를 사겠다고 다니니 그런 미친놈들이 있소?"귀덕 어미가 전하는 말을 듣자 심청이는 반겨 듣는다. "그 말 진정이면 조용히 불러 주오." 하여 만나보니, 뱃사람들이다. "우리는 배를 타고 만 리를 다니는데, 뱃길에 인당수라는 곳이 있어 변화 불측하여 자칫하면 몰사를 당합니다. 15세 처녀를 제수로 제사를 지내면, 수로 만리()를 무사히 왕래하고, 장사도 흥왕하옵기로 몸 팔 처녀 있으면 값은 관계치 않겠나이다."

심청이 나선다. "우리 부친 안맹하여 세상을 분별 못하기로 평생의 한입니다. 몽운사 화주승이 공양미 삼백석을 불전에 시주하면 눈을 뜬다 하시니, 내 몸 방매하여 발원하기 바랍니다. 나를 삼이 어떠하오? 내 나이 15세요" 하니 그들 매우 감동한다. "낭자 말씀 듣자오니, 거룩하고 장한 효성 비할 데 없삽내다. 그럼 그리 정합시다."

행선 날은 내월 17일이었다. 공양미 삼백 석은 몽운사에 보내지니 심봉사 깜짝 놀라 삼백석의 출처를 묻는다. 심청은 효성으로 잠깐 속여 여쭙는다. "일전에 만나뵈온 무릉촌 장승상 댁 부인께 사세 부득하여 말씀 사뢰었더니 부인이 쌀 삼백 석 주시기로, 몽운사로 보내옵고 수양딸로 팔렸습니다. "심봉사는 웃으며 "그 일 잘 되었구나. 언제 데려간다더냐?" 한다. "내월 15일에 데려간다 하옵데다."

심청이 그 날부터 선인()을 따라갈 일을 생각하니, 사람이 세상에 생겨나서, 한 때를 못 보고 이팔 청춘에 죽을 일과 안맹하신 부친 영결하고 죽을 일이, 정신이 아득하다. 의복 만들어 농에 넣고, 갓망건 새로 사 걸어 두고 부친 위해 준비하다보니 내일이 행선 날이다. "닭아, 닭아, 우지 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란 설지 않으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가잔 말가?"

밤새 섧게 울다 아침을 지으려고 문을 여니 벌써 선인()들이 사립문 밖에 와있다,"오늘이 행선 날이오, 수이 가게 하옵소서.""여보시오 선인네들, 오늘 행선하는 줄 나는 알거니와 부친이 모르오니 잠깐 지체하옵시면, 불쌍하신 우리 부친 진지상이나 올려 잡순 후 떠나리다"

"아버지, 진지 많이 잡수시오." 심청은 한없이 속으로 흐느낀다. "오늘은 각별하게 반찬이 좋구나. 뉘집 제사 지냈느냐?"심청의 흐느낌이 느껴지는지 심봉사 귀 밝은 체를 한다. "아가, 감기가 들었나 보구나. 오늘이 며칠이냐? 오늘이 열닷새지?"심봉사는 간밤 꿈 이야기를 한다. 간밤 꿈에 네가 큰 수레를 타고 가더라. 수레는 귀한 사람 타는 것이라. 아마도 오늘 무릉촌 승상 댁에서 너를 가마에 태워가려나 보다."

심청이 들어보니 자기 죽는 꿈이다. 슬픈 더욱 복받히나 겉으로는 내색 않고 진짓상 물려내고 담배 피워 물려드린 후, 사당에 들려 하직 인사한다. "불효 여식 심청이 부친 눈뜨게 하오려고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로 떠나오니, 아비 눈뜨게 하고 착한 부인 얻어 조상 향화 전하게 하소서."

이상함을 느낀 심봉사가 이윽고 심청이를 다그친다. 심청이 털어놓지 않을 수 없다. "제가 불효 여식으로 아버지를 속였소. 공양미 삼백 석을 누가 저를 주오리까? 남경 장사 선인에게 몸을 팔아 인당수 제수로 가기로 하와, 오늘이 행선 날입니다"슬픔이 극진하면 가슴이 막히는 법이라, 심봉사 기가 막혀 실성을 하는데,"애고, 이게 웬말이냐, 눈을 팔아 너를 살지언정 너를 팔아 눈을 사라니, 그 눈 해서 무엇하랴? 나 눈 뜨지 않으련다. 독한 상놈들아! 생사람 죽이면 법()에 걸리렷다!"심봉사 죽기로 기를 쓰니 심청이 서서 부친을 붙잡는다. "아버지! 이 일은 남의 탓이 아니오니 그리 마소서."

이렇듯 하직할 때 하느님이 아셨던지 검은 구름 자욱하다. 배타고 한가운데 떠서 흘러가니 망망한 창해 중에 가없는 물결이다. 한 곳에 당도하여 닻을 주고 돛 내리니 이 곳이 인당수다. 고기와 용이 싸우는 듯 큰 바다 한 가운데 돛도 잃고 닻도 끊기며, 노도 잃고 키도 빠지며, 안개 자욱한데 산 같은 파도가 뱃전을 땅땅 치니 당장에 위태로운지라, 사공 이하 모두 겁을 먹고 어쩔 바를 몰라 고사 절차를 서두른다.

"우리 동무 스물네 명 오늘 인당수에 제물을 바치오니 이 제물 드시고 굽어살피시어 우리 소망 이루어주소서. 고시레! 둥둥… 빌기를 마친 선인들은 심청이에게 물에 들라 한다. 심청이 뱃머리에 서서 두 손 합장하고 하느님께 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심청이 죽는 것은 서럽지 않습니다. 앞 못 보는 우리 부친 어두운 눈 밝게 하시어 광명천지를 보게 하소서." 하고 바다에 뛰어 들었다.

무릉촌 장승상 부인은 심청이를 잊지 못해 화상 족자를 벽에 걸고 날마다 보는데 하루는 족자 빛이 검어지며 화상에서 물이 흐르므로 부인이 놀란다. 죽었구나! 하고 슬퍼하는데 족자 빛이 다시 새로워지니 마음에 괴이쩍었다. "누가 건져내어 목숨을 부지하였는가? 푸른 바다 만리 밖 소식 어찌 알리?"부인은 그날 밤 제물을 갖추어 강가에 나가 몸소 축문을 읽어 심소저의 넋을 위로하며 그지없이 서러워한다. .

심청이는 인당수 물에 떨어졌다. 그러나 그곳은 물 속이 아니라 상계()였으니, 하느님의 능력이 한없이 큰 세상이다. 인당수 물귀신이 어찌 심청이를 알아보지 못하리요. 옥황 상제는 사해 용왕에게 분부를 내렸다. "하늘이 낸 큰 효 심청이가 인당수에 떨어질 터이니, 그대들 등대 하였다가 수정궁에 영접하고, 영을 기다려 도로 인간계로 보내도록 하라"사해 용왕들은 백옥 교자를 채비하고 시간을 기다렸다. 이윽고 한 소저가 바다 위로 떨어지매 여러 선녀들이 옹위하여 교자에 앉히니, 심소저 정신을 가다듬고 사양한다. "속세의 천한 몸이 어찌 용궁의 교자를 탈 수 있습니까?""옥황 상제의 분부십니다. 지체하면 사해 수궁에 탈이나니 어서 타십시오."

옥황 상제의 명을 누가 거역하랴. 사해 용왕들이 각기 선녀를 보내어 조석으로 문안하고 번갈아가며 시위한다. 하루는 하늘에서 옥진 부인이 오신다 하여 기다리니 어머니다. "애고 어머니!" 심소저는 달려가 품에 안긴다. 모녀는 여러 날 수정궁에 머루는데 하루는 옥진부인이 말한다. "반가운 마음 한량없건마는 오래 지체를 못하겠구나. 후일에 서로 반길 때가 있으리라."옥진 부인은 공중을 향하여 삽시간에 사라졌다. 옥황 상제는 심청의 대효()를 가상히 여겨 사해 용왕에게 다시 전교를 내리셨다. "대효 심낭자를 연화() 꽃봉오리에 고이 모셔 인당수로 도로 내보내라."

남경()으로 장사 갔던 선인들은 심낭자를 제수로 바친 덕에 이()를 남겨 돛대 끝에 큰 기 꽂고 큰 소 잡고 동이 술에 각종 과실 차려놓고 북을 치며 제를 지내던 참이다. 인당수에 이르러 해상을 바라보니 꽃 한 송이 물위로 떠내려온다. 학을 날며 외쳐 이른다. "선인들아, 천상의 귀한 꽃이니 각별 조심하여 고이 모셔다가 천자께 진상하라."

천자()는 황후의 상사를 당하여 슬픔에 잠겨있었다. 하루 잠자리에 드니 비몽사몽간 봉래산 선관()이 학을 타고 날아와 천자 앞에 아뢴다. "상제께서 새 인연을 보내셨으니 폐하께서는 어서 살피소서."천자는 잠에서 깨어 천천히 거닐다가 옥쟁반의 꽃을 살피니, 보던 꽃이 없고 한 낭자가 앉아 있다. 이튿날 아침 만조 백관 문무 제신이 모인 자리에서 천자는 말한다. "간밤 꿈이 기이하기로, 어제 선인들이 진상한 꽃을 보니 꽃은 간 곳 없고 한 낭자가 앉았는데 황후의 기상이라. 짐은 이를 하늘이 정한 연분으로 여기는데 경들의 뜻은 어떻소"

문무 제신이 일제히 아뢴다. "황후께서 승하하셨음을 상천()이 아시고 인연을 보내셨으니 국운이 무궁하여 하늘이 보호하심입니다. 국가의 경사 이에 더함이 없는 줄로 아뢰오."이리하여 대례를 마친 다음 심낭자를 고이 모셔 황후전에 들게 한다. 이로부터 심황후의 어진 덕이 천하에 고루 퍼지니, 만백성이 엎드려 축원한다. "우리 황후 어진 성덕 만수 무강하소서."

심봉사는 딸을 잃고 실성하여 눈물로 허송 세월한다. 심황후는 귀한 몸이 되었으나 앞 못 보는 부친 생각이 무시로 솟아올라 근심과 탄식하는 날이 많았다. 천자께서 내전에 들어와 황후를 보시니, 눈물이 서려있다. "황후 미간에 수심이 가득하니 어인 일이오?"이에 심청은 자초지종을 아뢰니 황제 즉시 근신을 불러 연유를 하교하시며 금월 만일 황성에서 맹인 잔치를 베푼다는 칙지를 선포하여 모든 맹인들을 상경토록 하였다.

심학규는 몽운사 부처가 영험이 없었는지 딸 잃고, 쌀 잃고, 눈도 뜨지 못해 고생만 더욱 깊어간다. 도화동 사람들은 심봉사를 위하여 마음 극진히 도왔다. 선인들이 맡긴 전곡을 착실히 이삭을 늘여 심봉사 의식을 넉넉케 하니 형세는 괜찮았다.

이때 본촌에 뺑덕 어미라 하는 계집이 있어 행실이 괴악한데, 심봉사의 가세 넉넉한 줄 알고 자원하고 첩이 되더니 순식간에 가세를 결단낸다. 그럴 즈음 관에서 심봉사를 불러 황성에서 맹인잔치를 하니 어서 올라가라 이른다. 관에서도 처지를 아는지라 노자 주고 옷 일습 주며 바삐 올라가라 하니, 심봉사 집에 와 마누라를 부른다.

"여보게, 황성서 맹인 잔치를 한다고 노자까지 주며 나를 가라 하니 그 동안 집안 잘 살피고 기다리시오.""여필종부라니 낭군 가는데 이 몸 아니 갈까? 나도 같이 가겠소." 뺑덕이 따라 나선다. 뺑덕 어미 같이 가는 척 하며 노자돈 마저 훔처 도망간다.

갖은 고생 끝에 심봉사 황성에 이르르니 행색이 말이 아니다. 한쪽 끝에 앉아있는데 심황후가 달려온다. "애고 불쌍한 아버지! 어찌 이제 오셨오. 어서 눈을 떠서 나를 보소서.""으흐흐! 출천 대효 내 딸 청이 살았다니… 정말 내 딸이면 어디 보자!"하는데 심봉사의 머리 위로 안개가 서리며,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이게 웬일인고. 감았던 눈 번쩍 뜨니 천지 일월 반갑도다!"

심학규가 딸을 보니 칠보 화관이 황홀하여 뚜렷하고 어여쁘다. "고진감래() 흥진비래() 나를 두고 한 말일세. 어둡던 두 눈뜨니 황성 대궐이 웬말이며, 내 딸 청이 황후라니 천만 뜻밖일세! 얼씨구 좋을씨구 지화자 좋을씨구!"

심황후도 기뻐하며 부친 손을 이끌고 삼천 궁녀 옹위하여 내전으로 들어가니 황제 또한 기꺼움을 못 이기며 소경 아닌 심학규를 부원군()에 봉하시고 저택이며 전답이며 남녀 종을 내리셨다. 심부원군은 선영()과 곽씨 부인 산소에 영분()부터 차린다.

이후 심황후의 어진 성덕이 천하에 가득하니 만백성들 천세 만세를 부른다. 만백성이 심황후를 본받으니 효자 열녀가 곳곳에서 나왔다.

[네이버 지식백과] 심청전 [沈淸傳] (한국문예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