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가르침

색온이 몸뚱이가 아닌 것은 당연한 것!

우암(雨庵) 2015. 12. 4. 11:33

진흙 속의 연꽃 블로그를 보다보니

색온의 개념이 몸뚱이가 아니라는 글을 (http://blog.daum.net/bolee591/16155653)

어느 스님의 니까야 강의를 듣고서 알았다고 씌여 있어서 놀랐다.

어떻게 색온을 색과 동일시 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고백'은 오온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나타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진흙 속에 연꽃님은 불교공부를 많이 하신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참으로 의외의 내용을 다룬 글이었다.


먼저 제 견해를 밝혀본다면
색온이란 몸뚱이가 아니라 '물질(지수화풍 사대)이라는 것으로 축적된 경험'을 뜻한다.

제가 이해한 오온(khandha) 혹은 오취온 (upādānakkhandha)이란
의식, 무의식적으로 우리들이 '나'를 규정하는 것이다.
(오온은 경험 자체, 오취온은 나라는 생각이 더해진 모습)
오온이 있어서 내가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 내리나 봤더니
그 내용이 오온 즉 색수상행식의 경험체로 스스로를 정의 내리더란 것이다.

우리는 나를 과거의 경험으로 규정한다.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떤 환경에서 양육되었으며
어떤 학교를 다니고, 어떤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들은 어떠했고,
그런 와중에 사회적으로는 어떤 경험을 했고....
이 경험을 다섯가지로 분석적으로 구분한 것이 오온(五蘊)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인 것이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것을 분석적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색이란 물질적인 대상이고,
수란 그에 대한 느낌이며,
상이란 인식이라고도 번역되는데 인식이라기 보다는 전생의 판단 기준이 작용하는 것 (무의식적 판단 기준의 작동; 예를 들어서 '예쁘다'는 기준),
그리고 행이란 그 판단에 따라 경계에 대해서 하는 신구의의 행동이며
식이란 이러한 대상에 대한 경험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뜻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색수상행식은 무엇을 통해서 경험을 하게 되는가?
당연히 바로 우리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의식이다. 즉 눈, 귀, 코, 혀, 몸, 정신 (안이비설신의)이다.
그리고 그 감각의 대상이 되는 것이 색성향미촉법 (빛, 소리, 향기, 미각, 촉각, 판단의 대상) 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무엇을 경험한다는 것은 12처 즉 육내입처(안이비설신의)로 육외입처(색성향미촉법)를 인지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세상이란 모두 12처의 일인 것이다. 그 외의 것이 우리에게 무엇이 있겠는가?
그리고 온(蘊 khandha)이란 무더기를 뜻한다. 즉 이런 경험들이 쌓여 있는 것이다.
이 생에서 경험한 것은 우리의 의식 속에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했을 것이고
전생의 경험이란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으며, 불교적으로는 아뢰야 식에 저장되어 있다.

따라서 색온이란 몸둥이가 아니라 몸뚱이라는 것으로 축적된 색에 대한 경험을 뜻한다.
오해하시지 말 것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색(rūpa)은 색온(rūpa-kkhandha)의 일부가 되지만
색온이 정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색 자체도 정신적이다.'라고 주장하면 이상해 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개념에 빠지게 되면 공병(空病)에 걸리게 되어
물질 세계를 부정하게 된다.
물질 세계라는 것도 시간의 흐름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 눈 앞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실체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그래서 변치 않는 실체가 있다고 하기도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실재하는 것으로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유와 무의 상보성을 불교에서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표현한다.
비어있는 것 같지만 있고, 있지만 비어있는 것 같다는 말이다.
공병에 걸린다는 것은 모든 게 비어있다는 주장이다.
세상이란 꿈 같은 거라는 주장이다. (이 말은 반 만 맞는 말이다.)

부처님께서는 생겨나는 것(集 samudaya)만을 보는 자는 '있다'에 걸리고
사라지는 것(滅 nirodha)만을 보는 자는 '없다.'에 걸린다고 알려주셨다.
중도란 '있다'에도 걸리지 않고 '없다'에도 걸리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둘을 모두 내려 놓았기 때문이다.




자아의 출현에 대한 세존의 가르침은 S22:47 관찰 경에 나타난다.

관찰 경에서 주목할 것은 오온이 나라는 생각이 나타나면
‘나’라는 것 때문에 다섯 가지 감각기능이 출현하는 것을 여의지 못하게(avigate) 된다.'는 설명이시다.
(‘ Asmī ’ ti kho pana, bhikkhave, avigate pañcannaṃ indriyānaṃ avakkanti hoti – cakkhundriyassa sotindriyassa ghānindriyassa jivhindriyassa kāyindriyassa.)

제가 이해한 바로는 이러한 가르침의 내용이란
다섯 감각이 출현하기 전에는 감각이 사라져 있다는 말이 아니라
감각한 것에 대해서 마노(意)가 주목하여 끌려가지 않음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마노와 다섯 감각이 분리되지(vi) 않고(a) 가기(gata) 때문이다. (avigate)
다시 말해 다섯 감각이 작동한다는 것은 '내가 있고'(vi) 그래서 감각한 것에 마노(意)가 끌려가게 된다(gata)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중생이 이 표현을 물질의 존재 문제로 이해하여 끌려들어가면
'물질이란 사실은 정신 작용이 만든 환(幻)에 불과하다.'라는 엉뚱한 말을 하게도 된다.
이게 제가 이해한 공병이다.
'물질이란 정신 작용이 만든 환(幻)에 불과하다.'라는 견해도 하나의 생각에 불과하다.
제가 '이해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해를 떠나 있다.
만법귀일(萬法歸一)에 대해서 '하나'라고 해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S22:47 관찰 경 (Samanupassanā-sutta)
samanupassanā : Consideration 観察 고려
anupassati : [anu + dis + a] observes; contemplates, 사념처의 생각하고가 anupassati다!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사밧띠의 제따바나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계셨다.


2. 그때 세존께서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은 '세존이시여'라고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아를 관찰하는 자들은 모두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를 자아로 관찰하는 것이지 그 외 다른 것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보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을 모르고 성스러운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을 보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을 모르고 참된 사람의 가르침에 인도되지 못하여,


그는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인식(지각)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형성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형성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형성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의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이와 같이 하여 사견을 통한 관찰과 ‘나는 있다.’는 사량분별(집착하고 헤아리고 추론한다)이 그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Iti ayañceva samanupassanā ‘ asmī ’ ti cassa avigataṃ hoti.

색수상행식을 관찰하면 ‘나는 있다.’가 사라지지 않게 된다. (나란 생각을 여의지 못한다.)


iti : [ind.] thusavigata : vigata가 아닌. 분리시키지 못한, 여의지 못한

ayañceva: 들어온 것 뿐을

aya : [m.] income 收入, 入口, 入江

Cassa, (ca+assa)﹐和…可能是,和…给这个的,和…给他

vigata : [pp. of vigacchati] gone away; ceased; deprived of; being without, 去れる, 離去の, 消失せる
gata : [pp. of gacchati] gone; moved; walked; passed; arrived at; having come to a condition, 已行去的, 已(到)達的, 已有関係的(已來到(進入)某種狀態或情況, 行ける,達せる, 関係せる; 様子, 姿


4. “비구들이여, ‘나는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생기면 눈의 감각기능, 귀의 감각기능, 코의 감각기능, 혀의 감각기능, 몸의 감각기능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기능들이 출현한다.

‘ Asmī ’ ti kho pana, bhikkhave, avigate pañcannaṃ indriyānaṃ avakkanti hoti – cakkhundriyassa sotindriyassa ghānindriyassa jivhindriyassa kāyindriyassa.


avakkanti : [f.] entry, appearance, coming down into 下來(進入~), 下生, 顯現
avakkamati : [va + kam + a] enters; overwhelms
okkamati : [ava + kam + a] enters; falls into; comes on okkamana
kamati : [kam + a] goes; enters into (kam行+a)
kāma , (m.), pleasure; lust; enjoyment; an object of sexual enjoyment; subjective sensuality, 'sense-desire', objective sensuality, the five sense-objects, 欲, 愛欲, 欲念, 欲情, 欲樂
kama :m. [Sk. BSk. krama] order; manner; proceeding 順序, 次第, 階段
pañca kāmaguṇā; cakkhu-viññeyyā rūpā , etc.


비구들이여, 거기에는 마노[意]가 있고 [마노의 대상인] 법들이 있고 무명의 요소가 있다.

무명의 요소(avijjādhātu)란 '이것을 인지하는 내가 있다.'고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오감으로 감각된 대상에 대해서 mano(의)가 작용을 해서 그것을 체계적으로 이해를 하는데, 이때 그 판단 기준이 '나를 중심으로 하는' 무명의 요소가 들어간다는 말씀이시다.

나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탐욕이 생기고, 성냄이 생기며 그래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된다. 즉 삼독심인 탐진치는 나라는 '가설'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무명과 함께 하는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닿은 배우지 못한 범부는 ‘나는 있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이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있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물질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물질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인식을 가질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인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인식을 가지지도 않고 인식을 가지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한다.”


아래의 것들은 모두 '나라는 가설위에 세워진' 한생각 들이다.

'나는 있다.’                                                                                 ‘asmī’tipissa

‘나는 이것이다.’                                                                          ‘ayamahamasmī’tipissa

‘나는 있을 것이다.’                                                                      ‘bhavissan’tipissa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                                                              ‘na bhavissan’tipissa

‘나는 물질을 가지게 될 것이다.’                                                    ‘rūpī bhavissan’tipissa

‘나는 물질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arūpī bhavissan’tipissa

‘나는 인식을 가질 것이다.’                                                           ‘saññī bhavissan’tipissa

‘나는 인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asaññī bhavissan’tipissa

‘나는 인식을 가지지도 않고 인식을 가지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      ‘nevasaññī­nāsaññī bhavissan’tipissa


pissa :Pi'ssa that is pi assa
pi: [ind.] (the enclitic form of api.) also: and also; even so; but; however; probably; perhaps
assa : [3rd sing. potential] may be


이러한 생각의 중심에는 내가 있고 그래서 '내'가 감각을 한다고 판단한다.

즉 '있다'가 생각에 걸린 것이라면 '있지 않다'도 생각에 걸린 것이다.

그 둘을 내려 놓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 기관은 있어도 그 감각의 주체가 없어진다.

오직 가면 갈 뿐, 보면 볼 뿐이다.


5. “비구들이여, 비록 다섯 가지 감각기능들이 바로 거기에 남아있지만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이들에 대한 무명을 제거하고 명지(明知)가 일어난다. (Tiṭṭhanteva kho, bhikkhave, tattheva pañcindriyāni. Athettha sutavato ariyasāvakassa avijjā pahīyati, vijjā uppajjati.) 그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기 때문에 ‘나는 있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이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있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물질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물질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인식을 가질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인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나는 인식을 가지지도 않고 인식을 가지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Tiṭṭhanteva kho, bhikkhave, tattheva pañcindriyāni.
정말로 견고할 뿐, 비구여, 거기에 있을 뿐이다 다섯 감각 기능은.
 
tiṭṭha :a. [tasati ① 的 pp. ] 堅固的(hard), 乾涸的(dry), (語氣)粗暴(盛氣凌人)的(rough)
eva : [ind.] (emphatic particle), onlyc
tattha : [adv.] there; in that place


Athettha sutavato ariyasāvakassa avijjā pahīyati, vijjā uppajjati.
그리고 여기에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무명이 버려지고 명지가 일어난다.


Athettha: atha + ettha
atha : [ind.] then; and also
ettha : [adv.] here
sutavato = (sutava + ato) 字尾: a<>ato 陽性%单数,复数%離格
sutavā:Learned in religious literature, mighty in the scriptures
sāvaka: [m.] a hearer; a disciple 声聞, 弟子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잘 배운 제자는 '견고한 다섯 감각 기능은 있지만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알려 주신 부분이다.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노(意)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