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 세계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많은 불교를 공부하신 분들이 시간도 없고 공간도 없다고 한다.
어떤 분들은 더 나아가 식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유식론?)
그것을 깨닫고 나면 식의 한계를 쉽게 넘나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육신통을 부릴 수 있다고 한다.
자연 과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난감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혹은 아직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 이다.
용수의 중론을 설명하면서 동국대 경주 캠퍼스의 김성철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시간이 없음을 주장한다.
과거는 지나갔으니 대면할 수 없고 그래서 없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역시 대면할 수 없고 그래서 없고
현재란 흐름의 연속이므로 잡을 수 없어서 없다.
그렇다면 과연 과거는 어디 있으며 미래도 어디있고 현재는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시간이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을 과연 제대로 된 논증이라 할 수 있을까?
일단 '대면할 수 없다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세상에서는 내가 내 감각기관으로 지금 이 순간 보는 것 만이 존재한단 말인가?
내가 내 감각기관으로 보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며
대부분은 내 감각기관이 알지 못하는 일이다.
그럼 그런 일들은 없는 일이란 말인가?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들이 내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인가?
예를 들어 보자.
우린 대부분 반도체가 뭔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기기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사용할 뿐이다.
더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 기기의 사용자는 산골에서 사는 자연과학이라곤 알지 못하는 시인이라고 하자.
그런데 과학자들이 반도체를 이용해서 논리를 회로를 구성해서
핸드폰, 컴퓨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어느날 그 시인은 그것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감각하지 못한 것이 없는 것이라면
그 시인에게는 없던 어떤 현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전자기기가
갑자기 시인 앞에 뿅 나타난 것이다.
시인의 감각 기관에서는 전혀 감지되지 않았던 그래서 없었던
어떤 물건이 갑자기 나타난 게 된 것이다.
이런 생각이야말로 정말 비 연기적이라고 저는 바라봅니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논리는 엉터리!'라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물리 현상을 수학적으로 풀어 본 것입니다.
수학이란 하나의 개념이고 언어입니다. 또한 당연히 논리입니다.
만약 논리가 엉터리라면 어떻게 관찰하지도 않은 원자 세계를
가정을 통해서 계산해 내서 반도체를 만들고 할까요?
지금 현재 원자 및 아원자의 형태는 다 수학을 통해서 푼 것들입니다.
(간접적으로 관찰한 현상을 수학으로 풀어서 전체 구조를 만든 것입니다.)
외부에 나타난 현상을 수학적으로 풀었다면 그래서 그 결과에서 추론을 해서
다양한 전자 기기들이 나타난 것이라면,
정말 객관세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과연 금강경의 말씀이 시간이 없다는 말일까요?
과거심, 현재심, 미래심을 불가득 즉 얻을 수 없다고 한 것이지
과거 현재 미래가 없다고 한 것일까요?
혹시 이런 주장은
깨달음에 세계에 대한 엉퉁한 잘못된 해석 때문에 나타난 희론은 아닐까요?
초기 경전에서는 시간이 없다거나 공간이 없다거나 하시는 말씀은 없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유식 중관으로 가면서 이런 개념들이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김성철 교수님의 중론을 읽어 보니
유식 중관 시대의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너무 사변적으로 이해해서
논리로 풀려고 하기 때문에 희론으로 흘렀던 것으로 보이고,
용수보살이 그 각 개념의 문제점을 언어로 풀다가 보니
후대의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가 없어서 엉뚱한 상상을 해서 '이상한' 개념들이 유입된 것이 아닐까요?
저는 이런 시각을 무척 거친 시각으로 비판을 하게 됩니다.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는 시간을 초월한다는 말씀이 아닐 겁니다.
이런 표현은 '사성제가 없다.'는 말과 동일한 맥락입니다.
모두 한 '상태'를 지칭합니다.
저는 그 자리를 삼매의 상태라고 심일경성의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추가 질문:
대상은 밖에 없는가? 그렇다면 안에 있는가?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는가? 안에도 있는 것이 아니고 밖에도 있는 것이 아닌가?
일체가 유심조이다!
만약 일체유심조를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를)
식의 작용으로 모든 것이 만들어 졌다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렇다면 수많은 서양 중세 연금술사는 여러 금속들을 금으로 만들려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 많은 사람들의 '소원'은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일체유심조가 성립 되나요?
거의 모든 사람(유정)들이 유사이래로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해 왔습니다.
엄청난 식이 쌓여 있는 것이죠. 그렇게 마음을 썼는데 과연 결과가 그렇게 되었나요?
소의 뿔을 짜면서 '우유야 나와라!' 해 봐야 우유는 나오지 않습니다.
젖을 짜야 우유가 나옵니다.
이것이 제가 이해한 연기법입니다.
일체 유심조란 우리 바램이 세상을 조작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란 뜻이 아닐 겁니다.
(우리의 바램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항상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또한 요즘 물리학에서 유명한 M이론을 생각해 봅시다.
M이론이란 기존에 나와있던 달라보이던 여러 이론들을
수학으로 풀어서 하나의 통일된 수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여러 현상들을 일관된 하나의 수학적인 표현으로 풀려다 보니 M 이론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런 M이론이 표현하는 세계가 과연 마음의 조작으로 된 것입니까?
우리는 M 이론에 대해 거의 대부분이 알지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즉 M 이론이란 이미 나타나 있는 현상을 분석한 것입니다.
우리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세상을 알아내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코끼리를 '생각해서'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일체 유심조란 우리가 코끼리를 '생각으로' 만들어 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일체유심조란
우리가 세상의 이치에 어리석어서(치심) 생각(욕망과 성냄)을 일으켰으며
그 생각때문에 윤회를 하게 된다는 가르침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우주의 발생 물질의 근원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이런 방향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부처님은 언제나 눈 앞의 현실의 괴로움에 대해서 말씀하셨지
세상(시간 및 공간)의 근원을 설명해서 괴로움을 없애는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전생이라는 생명체의 관계에서 현재의 모습을 말씀해 주셨지
자연 과학적인 근원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저의 이해입니다.
우리가 죽는다 해도 '객관'세계는 계속 진행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나 하나만으로 이루어 진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세계는 나 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생들이 살아가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내 몸뚱이가 '죽는다고' 세상이 어찌 될 거라는 생각은 좀 이상한 것 아닌가요?
몸뚱이가 죽는다고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대승에서는 사후 49일간 중음계를 떠돈다고 하는데
그럼 그 존재는 49일간 없어지는 건가요? 아니죠?
시간의 흐름 속에 있죠?
그리고는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는데
그 전생과 현생이 연기로 연결되어 있다면
어떻게 객관 세계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깨닫지 못한 중생들은 이런 윤회의 세계를 '객관세계'라 하는 것 아닌가요?
만약 깨달은 분의 입장이라면 '객관'이란 말 조차 붙을 구석이라곤 없습니다.
그 자리의 입장이라면 그걸 궂이 말로 표현한다면
객관은 없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가 끊어진 자리이기 때문에
관찰자와 대상이라는 '개념'이 나오기 전이므로
둘이 아니고 객관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자리를 경험하지 않아서 알지 못하는 분들이
과거 조사들의 말들을 그대로 가져다가 그 분들의 권위에 기대어
'대상은 없다.', '시간은 없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앵무새와 같이 뜻 도 모르고 말을 따라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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